"고통 분담"... 스스로 보수 깎는 대기업 경영진

입력
2023.03.02 04:30
수정
2023.03.02 08:25
11면
구독

주주총회에 이사 보수 한도 축소 안건 올려
직원 성과급 축소에 경영진도 동참한다는 뜻
"경기 침체 속 책임경영 의지 긍정적"

한 기업의 주주총회 현장. 게티이미지뱅크

한 기업의 주주총회 현장. 게티이미지뱅크


지난해까지만 해도 성과급 잔치를 벌였던 주요 기업들이 올해는 강력한 비용 절감 카드를 꺼내들었다. 직원들 성과급 규모를 크게 줄이고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이사들의 보수도 큰 폭으로 내릴 전망이다.

1일 업계에 따르면 네이버, 카카오, 기아, LG디스플레이 등 주요 기업들이 이달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이사들의 보수 한도를 줄이는 안건을 올렸다. 이는 경기 침체에 따라 실적이 나빠지고 주가까지 떨어지는 상황에서 기업 경영진도 고통의 짐을 나눠 져야 한다는 의지를 알리기 위해서다.



보수 한도 반으로 깎고, 퇴직금 제도 손보고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22일 주총을 여는 네이버는 올해 7명의 이사에게 지급할 보수의 최고 한도를 지난해 150억 원에서 절반 수준인 80억 원으로 깎았다. 네이버는 2014년 이사의 수를 7명으로 정한 이후 9년째 줄곧 보수 한도가 150억 원이었다.

②LG디스플레이 역시 이번 주총에서 이사 보수 한도를 60억 원에서 45억 원으로 25% 삭감하는 안건을 의결할 예정이다. ③기아는 이사 보수 한도를 종전 100억 원에서 80억 원으로 20% 깎기로 했다. 기아는 지난해 주총에서 보수 한도를 80억 원에서 100억 원으로 올렸는데 이를 1년 만에 되돌리는 셈이다.

④카카오는 이번 주총에서 이사 보수 한도를 종전 120억 원에서 80억 원으로 내리는 동시에 퇴직금 제도를 개편해 이사의 책임경영을 강화하기로 했다. 카카오는 2021년 말 류영준 당시 카카오페이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주요 경영진이 주식매도선택권(스톡옵션)을 매도하면서 '먹튀' 논란에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이에 카카오는 이번 주총을 통해 ①이사가 주주총회 해임 결의로 퇴직하거나 ②재직 중에 회사의 명예에 손상을 입히거나 ③회사에 치명적인 손해를 입혔을 경우 퇴직금을 깎거나 아예 지급하지 않기로 하는 내용을 정관에 새로 넣을 방침이다. 홍은택 카카오 대표도 자신에게 지급될 스톡옵션을 주총 본안건 통과 시 주총일(3월 28일) 주식시장 마감 가격의 두 배 이상이 될 때만 행사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삼성전자는 이미 경영진 보수를 크게 깎았다. 삼성전자가 최근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에 낸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 참고서류'를 보면 지난해 사내이사로 활동한 CEO 다섯 명이 받은 보수 총액은 214억700만 원으로, 2021년 315억 원 대비 32%가량 줄었다.



경력직 채용 중단, 유급 휴직 진행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사실 그동안 기업들이 한도까지 보수를 지급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굳이 한도를 낮추지 않아도 형편에 따라 덜 줘도 된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보수 한도를 줄이는 것은 그만큼 주주를 포함해 대외적으로 회사가 허리띠를 졸라매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보여준 것으로 분석된다. 게다가 올해는 지난해보다도 국가 경제가 어려울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까지 나오면서 기업들의 비용 절감 등 경영 효율화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실제 카카오는 최근 진행 중이던 경력 개발자 수시 채용 절차를 갑자기 중단했다. 지난해 2조 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한 LG디스플레이의 경우 직원들 대상으로 고정급의 50%를 주는 유급 휴직 신청을 받기도 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보수 한도를 낮추면 회복하는 게 힘든 줄 알면서도 주요 기업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그만큼 현재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것"이라며 "주주들에게 주가나 실적 등으로 보답하지 못하기 때문에 보수라도 깎아 책임경영을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

관련 이슈태그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