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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라는 불행

입력
2023.03.01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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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 뉴시스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 뉴시스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의 페이스북에서 흥미로운 논문 2편을 알게 됐다. 지난해 미국 저명 경제학 저널에 실린 한 논문은 페이스북 이용이 심각한 우울증을 24%까지 증가시킬 수 있고, 그렇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비교로 인한 스트레스라고 분석했다. 한국, 미국, 중국 학자가 함께 쓴 다른 논문은 중국 내 인접한 쌀농사 지역과 밀농사 지역의 주민을 상대로 소득, 지위, 직업이 행복감에 미치는 영향력을 비교했더니 쌀농사 지역이 2배 높더라는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 이철승 서강대 교수를 포함한 논문 공저자들은 쌀농사가 밀농사보다 많은 협동 작업을 필요로 하다 보니 주민 간 사회적 연결성이 높고, 이로 인해 남과 비교하는 문화도 강하다고 분석했다. 두 논문 모두 '비교가 불행의 씨앗'이란 함의를 담은 셈이다. 권 교수는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출산율 급락을 겪는 데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한몫하고 있으리란 가설을 제시한다. 동아시아는 벼농사 지대이니, 저 가설이 맞다면 이 지역의 '불행한 비교'는 역사가 유구하다.

□ 지난해 우리나라 출산율은 0.8명 선마저 무너져 0.78명까지 떨어졌다. 만혼과 딩크족(무자녀 맞벌이 부부) 증가도 요인이지만 근본적으론 혼인이 줄어서다. 홍콩, 싱가포르, 대만, 중국 등 동아시아에 유독 저출산 현상이 두드러지다 보니 그 공통 원인을 유교 문화에서 찾는 논의도 활발하다. 혼외 출산이 금기시되는데 젊은이들은 치열한 입신양명 경쟁에 치여 결혼은 뒷전이라는 것이다.

□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해 발표 논문에서 청년(20~34세)들이 연애, 결혼, 출산을 얼마나 실현 가능하다고 여기는지를 분석했다. 그 결과 현재 보유자원이 부족하다고 생각할수록 자신이 누군가의 배우자나 부모가 될 수 없을 거라고 체념하는 집단에 속할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족하다는 생각'이라니, 저울이 아니라 눈높이의 영역이다. 비교를 매개로 저출산과 SNS를 잇대는 저 가설은 아마 틀리지 않을 게다.

이훈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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