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마스크 정부가 책임진다더니"… 업체들 '곡소리'

입력
2023.03.01 00:1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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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독려에 1600곳 우후죽순
대부분 가동 멈춰, 현재 400곳만
정부 비축분 당초 발표 3분의1
"사업 정리할 출구전략 배려를"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 후 첫 주말인 지난달 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의 한 대형 쇼핑몰에 마스크를 쓴 시민들과 쓰지 않은 시민들이 함께 있다. 뉴스1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 후 첫 주말인 지난달 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의 한 대형 쇼핑몰에 마스크를 쓴 시민들과 쓰지 않은 시민들이 함께 있다. 뉴스1

1일 '노 마스크' 약 한 달로 접어든다. 1월 30일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 직후만 해도 마스크 벗는 걸 어색해하는 사람이 적잖았다. 그러나 요즘은 필수시설을 제외한 실내 곳곳에서도 민얼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일상 회복의 반가운 신호다. 그러나 마스크를 벗은 사람들을 보며 오히려 심난해하는 이들도 있다. 바로 마스크 생산업체 관계자들이다.

"나중은 걱정 말라" 약속하더니…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20년 3월 6일 경기도 평택 한 마스크 생산업체를 방문해 생산을 독려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20년 3월 6일 경기도 평택 한 마스크 생산업체를 방문해 생산을 독려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나중은 걱정 마시고 충분히 생산량을 늘려 달라."

2020년 3월 6일, 문재인 전 대통령은 경기 평택의 마스크 생산업체를 찾아 이렇게 강조했다. 마스크 생산을 독려하기 위해 전폭 지원을 공언했다. "분명히 약속드린다. 상황이 안정되고 수요가 줄어도 남는 물량을 정부가 전량 구매해 비축할 계획”이라고도 했다.

경기 포천의 마스크 생산업체 대표 김모씨도 이 말을 믿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원래 마스크용 끈을 납품하다가 2020년 6월 8억여 원을 투자해 마스크 공장을 차렸다. 그러나 하루 최대 15만 장의 마스크를 찍어내던 공장은 최근 개점휴업 상태다. 김씨는 "4억 원 이상 들여 마련한 기계 두 대는 고철값만 건지면 다행"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1월 30일 오전 인천 남동구에 위치한 한 마스크 제조업체 공장이 멈춰 있다. 뉴시스

1월 30일 오전 인천 남동구에 위치한 한 마스크 제조업체 공장이 멈춰 있다. 뉴시스

마스크 업계는 남는 물량을 전량 구매하겠다던 정부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하소연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조달청에 따르면 정부가 2020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3년간 구입한 마스크의 총 수량은 2억7,600만 장이다. 생산량이 가장 많았던 2020년 9월 1주일 생산량(2억8,000만 장)에도 미치지 못했다. 정부는 2020년 7월 "또 다른 감염병에 대비해 마스크를 1억5,000만 장까지 비축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결과적으로 '허언'이 됐다. 지난해 12월 기준 정부 비축분은 5,300만 장 안팎으로, 당초 발표의 3분의 1 수준이다.

정부도 비축분을 정하는 나름의 기준이 있다. 마스크 대란 당시 최대 생산량에 도달하기까지 1주일이 걸렸는데, 이 기간을 버틸 수량을 기준으로 삼았다. 사회활동 인구 2,000만 명이 사흘에 한 번씩 마스크를 바꿔 쓴다고 가정해 산출한 것이다. 정부는 이 정도 분량이면 비축분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선 정부가 당초 수요 예측을 제대로 못 했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부 정책 적극 협조... 최소한 배려 필요"

그래픽=김문중 기자

그래픽=김문중 기자

정부가 나몰라라 하는 사이 마스크 업계는 존폐 위기에 놓였다. 식약처에 등록된 마스크 생산업체는 2020년 1월 137곳에서 지난해 1월에는 1,616곳까지 급증했지만, 올해 1월에는 1,505곳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실제로 마스크를 제조하는 업체는 현재 400여 곳에 불과하다. 70% 가까운 업체가 '좀비 기업'으로 변한 것이다. 날씨가 따뜻해지는 4, 5월이 되면 마스크 수요가 더 떨어질 게 자명해 문 닫는 업체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50명이던 직원을 최근 15명까지 줄인 박모씨는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공장을 유지할 방법이 안 보인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마스크 업체들은 각사가 경영 판단에 따라 사업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정부에 모든 책임을 돌릴 수 없다는 점은 알고 있다. 그러나 공적 마스크 공급 등 정부 정책에 충실히 협조해온 만큼 생존과 직결된 정책 결정을 하려면 최소한의 배려는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마스크산업협회 관계자는 "주변에 사업을 정리하고 싶어도 방법을 찾지 못한 업체가 수두룩하다"며 "이들을 위한 정책적 배려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김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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