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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드쇼어링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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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워싱턴DC에서 열린 KF-CSIS 경제안보 콘퍼런스에서 있었던 앨런 에스테베즈(Alan Estevez) 상무부 산업안보 담당 차관의 발언으로 국내 언론이 시끌했다. 한국 기자의 질문에 "중국에서 생산할 수 있는 반도체 수준에 한도(cap)를 설정하겠다"는 발언이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 문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에스테베즈 차관의 발언에 새로울 게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년 10월 7일 산업안보국은 이미 중국에서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 반도체와 메모리 반도체 기술 수준의 한도를 설정한 바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바라는 공급망 재편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한국 기업들도 이미 재빠르게 대응하며 무역과 투자 측면에서 미국의 중요성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우리의 전체 교역에서 한미 간 교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10년 전 대중국 직접투자(FDI)와 비슷했던 대미국 FDI의 규모는 2022년 대중국 FDI의 약 4배 이상으로 격차가 벌어졌다. 그러나 최근 포드(Ford)가 중국 CATL과 함께 미국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짓는다는 소식은 미국의 공급망 재편 정책에 대해 의문을 갖게 만든다. 미국이 생각하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이 앞으로도 원활히 진행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할 것이다.
첫째는 위험 인식의 공유다. 국가마다 무역 및 산업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경제안보 위험에 대한 인식도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가 프렌드쇼어링을 말하기 전에 경제안보 위험에 대한 인식이나 정의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이 문제인지 아니면 특정 국가에 의존하는 것이 문제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중국이 문제라면 포드의 선택은 잘못된 것이고, 특정 국가에 대한 과의존이 문제라면 우리가 미국에 과의존하는 기술은 중국과 함께 개발해도 된다는 얘기가 된다.
두 번째는 장기 목표의 설정이다. 포드-CATL의 파트너십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IRA를 도입하려는 미국 정부의 의도와 배치된다. 또한 우리가 화웨이 4G·5G 네트워크 장비 사례에서 본 것처럼 지금의 기술 선택은 미래의 기술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결국 포드의 선택은 미래 배터리 기술에 있어 중국 기술과 장비에 의존하게 만들 것이다. 이것은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 제이크 설리번(Jake Sullivan)이 지난해 9월에 언급한 미국의 전략과 모순된다. 미국은 미국의 유일한 경쟁자에 핵심 기술을 의존하겠다는 것인가.
셋째는 일관성 있는 정책 설계와 시행이다. IRA와 포드-CATL의 파트너십은 한국뿐 아니라 많은 나라가 미국의 정책 의도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IRA는 정말로 중국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경제안보 목적으로 제정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미국우선주의를 위한 법인지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한미 동맹은 가치, 규범,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이러한 연대의 장점은 예측 가능성에 있다. 세계 질서의 높은 불확실성으로 인해 국가들이 위험 회피적이 되는 상황은 이해할 수 있으나 우리는 더 큰 경제적 이익이 한국과 미국, 나아가 글로벌 공동체에 공유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경제안보 정책을 수립함에 있어서도 이러한 미국의 사례는 반드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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