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집은 ‘사고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을 금요일 격주로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아이를 어떤 집에서 키워야 할까'. 대한민국에서, 특히 아파트 공화국 서울에서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이 질문 앞에 던져지는 날이 온다. 천진무구하기만 한 아이의 발걸음이 아랫집에 피해를 줄까 신경이 곤두서는 일이 잦아지고, 그럴 때마다 아이를 다그치는 자신을 마주하다 보면 '이렇게 사는 게 맞나'라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최은호(42)·조현정(43) 부부도 그랬다. 세 살 터울 형제를 데리고 네 번의 이사를 다니는 동안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과 크고 작은 갈등을 겪은 부부는 셋째 아이의 성별이 남아인 것을 확인한 순간 막연히 꿈꿨던 단독주택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7년 후, 이들은 경기 용인 죽전동에 지훈(12)·동훈(9)·승훈(7), 삼 형제의 이름 첫 글자를 딴 '지동승가'(대지면적 166.10㎡, 연면적 215.85㎡)를 짓고, 주택살이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에너지 넘치는 세 아들과 함께.
지붕 없는 거실과 지붕 아래 다락
'아이들이 주인공인 집'. 층간소음을 피해 선택한 집 짓기였기에 부부는 계획 당시부터 집의 초점을 온전히 세 아들에게 맞췄다. 아내 조씨는 "맞벌이 부부가 서울로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에 아파트 매매가와 비슷한 비용으로 땅을 구입하고 주택을 짓는다는 현실적인 조건을 제외하고는 아이들을 위한 집을 짓는다는 목표만 있었다"며 "디자인 측면에서도 기능적인 측면에서도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집인지가 가장 중요했다"고 말했다.
여러 날 수소문 끝에 인연이 닿은 건축가는 이한 건축사사무소를 이끄는 이호석·한보영 부부 건축가다. 이들도 건축주 부부와 비슷한 또래로 역시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다. 이 소장 부부는 건축주의 마음을 섬세하게 헤아려 삼 형제를 위한 완성도 높은 집을 구현했다. "디테일보다 마당이나 마루 등 가변적인 공간과 독립된 다락방 등 건축적 요소를 활용해 의미를 담으려고 했다"는 건축가의 설명처럼 1층 마당과 3층 다락을 품은 집에는 간결하면서도 실용적인 미감이 넘쳤다.
가장 눈에 띄는 공간은 집 한가운데 들어선 마당. 넓지 않은 면적임에도 집을 'ㄷ'자 형태로 구성해 중정을 만든 것은 오직 가족의 삶이 다양한 경험으로 이어지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 소장은 "하늘과 자연이 담기는 마당 경험은 주택살이의 핵심"이라며 "사방이 주택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외부 시선을 차단하면서 프라이빗한 야외 공간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거실과 복도, 계단 등 집안 곳곳에 따뜻함과 개방감을 불어넣는 효과도 났다. 사방이 건물로 둘러싸여 채광에 불리했지만 방마다 중정을 향한 큰 창을 내 햇살을 풍성하게 끌어들였다.
초기엔 잔디 마당이나 작은 정원을 계획하기도 했지만, 결국엔 정말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노는 마당을 위해 자갈을 깔아 비워두기로 했다. 이미 텃밭, 바비큐장, 수영장으로 마당을 아낌없이 사용 중인 가족들의 만족도는 당초 건축가의 예상을 뛰어넘는 듯했다. 마당의 마루를 가장 애정하는 공간으로 꼽은 최씨는 "언제든 커피 한잔 들고 나가 멍 때릴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좋다"며 "단순하고 작지만 주택의 묘미를 알게 해 준 공간"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주인공인 집답게 3층엔 다락이 숨어 있다. 1층이 마당을 매개로 열려 있다면 2층은 삼 형제 방 사이에 놓인 계단을 통해 은밀한 다락방으로 연결된다. 건축가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만 때로는 혼자 숨어들어 자기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귀중한 공간"이라며 "필요에 따라 수납공간이나 손님방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무로 세우고 채운 건강한 집
집의 구조체를 나무로 세운 것도 아이들을 위한 배려다. 이 소장은 "목구조 집의 가장 큰 장점이 친환경적이라는 것"이라며 "한창 성장하는 아이들이 더욱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는 집을 짓기 위한 선택"이라고 했다. 이 소장에 따르면 목조 주택은 철근 콘크리트 주택에 비해 유리한 점이 많다. 공기가 비교적 짧아 경제적이고, 건조가 잘 된 양질의 나무를 사용하니 썩거나 변색되지 않아 오래간다. 나무를 오차 없이 짜 맞추는 방식이기 때문에 외부 공기의 틈입을 막을 수 있어 단열 성능도 우수한 편이다. 그는 "목조 주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시공인데 시공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한국목조건축협회가 시공 우수성을 인증하는 파이브 스타(five star)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삼 형제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인 다락은 목구조의 면모가 두드러지는 곳이다. 하얀 벽체로 마감해 나무 기둥이 보이지 않는 다른 공간과 달리 나무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삼 형제의 공간인 2층 마루 역시 나무로 꾸며 비슷한 분위기를 냈다. '책마루'라는 별칭이 붙은 삼 형제 전용 공간엔 편안하게 뒹굴뒹굴하며 책을 읽을 수 있는 널찍한 마루를 만들었다.
안방과 자녀방 등 나머지 공간도 나무 특유의 정돈되고 따스한 느낌을 살렸다. 특히 삼 형제를 위한 공간은 성장 주기에 따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세 개가 아닌 두 개의 방으로 구성했다. 학령기 아이가 방 하나를 혼자 쓰고, 나머지 두 명이 공부방과 놀이방을 공유하는 식이다. 이 소장은 "공간을 필요에 따라 언제든 분리하거나 합칠 수 있도록 문의 자리, 창문의 위치 등을 꼼꼼하게 계획했다"며 "아이들의 방은 조건이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공간을 보다 단순하고 유연하게 구성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다섯 가족이 써 내려가는 집의 일기
버리는 공간 하나 없이, 다섯 가족에 맞춰 알뜰하게 쓰이는 집에 더없이 만족하며 살고 있다는 건축주 부부. 밤낮없이 뛰어다니는 삼 형제를 보고만 있어도 행복하다는 아내는 "처음 땅을 보러 다닐 때만 해도 이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지금은 집이 삶에서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 온몸으로 느끼며 살고 있다"며 "집이 그냥 우리 가족의 추억으로 여겨져 너무 소중하다"고 애틋함을 감추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집에는 입주한 날부터 가족의 모든 역사가 충실하게 새겨지고 있다. 부부의 십 주년 결혼기념일에 맞춰 이사 온 첫날의 벅찬 기분과 토끼처럼 뛰며 "아파트보다 만 배 좋다" 외치던 막내를 보고 찡했던 기억, 주차장 한편 작업실에서 아빠가 손수 삼 형제의 자전거를 손봐주는 일상까지, 드라마틱하지는 않지만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지는 소소한 기억들 말이다. "집 자체로 삶이 소중하게 기억되는 거예요. 바로 내 집을 짓고 사는 진짜 목적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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