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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32조 적자 나자 산업계도 이례적으로 "전기요금 현실화" 제안 내놓은 까닭은

입력
2023.02.27 07:0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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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적자에 정부 "산업용 전기 사용은 수익 활동"
에너지 요금 인상 속도 조절에 '산업용'은 선 그어
산업계 "요금 올리되 부대 비용은 줄여달라"

26일 서울 중구 한국전력공사 서울본부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뉴스1

26일 서울 중구 한국전력공사 서울본부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뉴스1


지난해 한국전력공사가 천문학적 적자를 기록하면서 산업계에서조차 이례적으로 전기요금을 현실화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산업계는 다만 전기요금에 추가로 붙는 세금 성격의 전력산업기반기금(전력기금)을 줄이자고 정부에 요청했다.

자동차산업협회, 중견기업연합회 등 16개 산업단체 모임인 한국산업연합포럼(KIAF)은 제32회 산업발전포럼에서 이런 내용의 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다고 26일 밝혔다. 한전의 경영공시(24일) 사흘 전 열린 이 포럼에서 KIAF 회장을 맡고 있는 정만기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은 "앞으로라도 시장 원리에 입각한 전력 시장 운영으로 한전 경영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당시 산업계는 증권사 분석 등을 토대로 한전의 적자 규모를 31조 원대로 추정했다. 정 회장은 다만 "이 과정에서 기업 경쟁력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며 전기요금에 붙는 전력기금 요율 인하를 정부에 요청했다. 한전 민영화 후 산간벽지 송배전망 시설 구축 등 공익 기능을 하기 위해 마련된 기금은 2005년부터 전기요금(기본요금+전력량요금)에서 3.7%를 추가로 부과한다. 신재생에너지 보급 사업과 한국에너지공과대(한전공대) 운영비 일부에도 쓰인다.



산업계가 "전기 요금 올리자"고 제안한 이유


윤석열(왼쪽에서 세 번째) 대통령이 15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2분기 공공요금 동결을 시사하며 에너지 요금 인상 '속도 조절'을 주문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왼쪽에서 세 번째) 대통령이 15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2분기 공공요금 동결을 시사하며 에너지 요금 인상 '속도 조절'을 주문했다. 대통령실 제공


요금 상승이 비용을 늘려 기업에 부담을 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 반응이다. 강내영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박사는 이 포럼에서 "국제유가 10% 상승은 수출단가 0.23% 상승, 수출물량 0.06% 감소로 이어진다"고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기업 경쟁력 약화를 우려했다.

그럼에도 산업계가 전기요금 현실화를 제안한 건 몇 가지 이유가 있다. ①우리나라가 주로 수입하는 액화천연가스(LNG)가 장기적 상승 국면에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이상열 에너지연구원 연구위원은 이 포럼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연합이 '에너지 탈(脫)러시아'를 추진하면서 국제 LNG 수요가 20% 이상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천연가스 액화시설은 각 국가가 이제 증축 논의를 시작해 2026년 이후에야 가동된다. 이 연구위원은 "에너지 수입 원가를 전기요금에 단계적으로 반영"해 국민들이 스스로 아껴 쓰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②대통령의 에너지 요금 인상 '속도 조절' 주문이 주택용에 한정됐다는 현실론이다. 민심과 크게 상관없는 산업용 요금을 어차피 올릴 거라면, 대신 전기요금에 덧붙인 부대 비용이라도 줄여달라고 정부에 먼저 제안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0일 "주택용(전기)은 생활필수품으로 값이 오르면 상당히 국민에게 부담이 돼 인상 폭을 고려해야 하지만 산업용은 원가에 해당하고 수익활동으로 쓰이는 것"이라며 2분기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을 예고했다.



국회서도 "전력기금 깎자" 목소리 나와

정광하 한국산업연합포럼 미래산업연구소 소장이 한국전력의 국회 제출 자료를 토대로 산출한 올해 전력기금 추정액. 정부 예산보다 4,660억원이 더 걷힐 것으로 보인다. 한국산업연합포럼 제공

정광하 한국산업연합포럼 미래산업연구소 소장이 한국전력의 국회 제출 자료를 토대로 산출한 올해 전력기금 추정액. 정부 예산보다 4,660억원이 더 걷힐 것으로 보인다. 한국산업연합포럼 제공


③전력기금 자체의 쓰임새에 대한 문제제기도 나온다. 정광하 KIAF 미래산업연구소 소장은 한전이 국회에 낸 '2023년 전기판매수익 편성 방법'을 바탕으로 "올해 전기요금에 부과되는 전력기금은 3조1,000억원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지난 해 보다 6,000억원 늘어난 규모다. 정 소장은 "전력기금을 너무 많이 걷는다는 목소리가 감사원, 국회예산정책처,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책 연구기관 등에서 꾸준히 나왔다"며 "공익사업을 위해 만들어진 기금을 원자력문화재단 지원금을 비롯한 각종 홍보사업 등 징수 목적과 동떨어진 사업에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전력기금 부과요율을 3.7%에서 3%(구자근 국민의힘 의원), 2%(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로 줄이는 전기사업법 일부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 정 소장은 "전력기금 요율을 2% 내리면 전기요금 1조6,500억원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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