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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SK하이닉스 반도체 생산 거점 분산 전략 검토해야"

입력
2023.02.2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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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정부 대중국 반도체 규제 움직임에
전문가 "중국에 둘 것과 밖에 보낼 것 따져봐야"
삼성, SK 중국서 반도체 생산의 40~50%
장비 업그레이드 및 보수 어려울 듯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4월 12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및 공급망 복원 최고경영자 서밋' 화상회의에 참석해 반도체 웨이퍼를 들고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4월 12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및 공급망 복원 최고경영자 서밋' 화상회의에 참석해 반도체 웨이퍼를 들고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중국 말고도 생산 거점을 여러 곳에 두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SK하이닉스 관계자


미국 정부의 강도 높은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가 현실이 될 경우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생산 체계를 재점검하고 전면 개편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두 회사가 생산하는 D램, 낸드플래시의 절반은 중국 공장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중국에서 시안 공장을, SK하이닉스는 우시 D램 공장, 충칭 후공정 공장, 인텔로부터 인수한 다롄 낸드 공장을 각각 운영 중이다. 시안 공장은 삼성전자의 유일한 낸드플래시 해외 거점이다. 삼성전자 전체 낸드 생산량의 40%를 책임진다. SK하이닉스의 우시 공장은 회사 전체 D램 생산의 40~50%를, 다롄 공장에서는 낸드 생산의 20%가량을 담당한다.



中 첨단 반도체 생산 규제 가능성↑…삼성-SK 비상

중국 반도체 생산 현황

중국 반도체 생산 현황



이를 위해 두 회사는 10년 이상 50조 원이 넘는 투자를 단행했다. 삼성전자는 2012년 중국 시안 1공장에 180억 달러(약 12조 원, 당시 환율 기준), 2017년 시안 2공장에 70억 달러(약 8조 원)와 2019년 80억 달러(약 9조6,000억 원)를 추가 투입했다. SK하이닉스의 우시 D램 공장에도 10조 원 이상 투자를 했다.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에도 90억 달러(약 10조7,000억 원)가 들었다.

문제는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반도체 공장에서 첨단 제품을 생산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점이다. 앨런 에스테베스 미국 상무부 차관은 23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경제안보포럼에서 "기업이 (중국에서) 생산할 수 있는 반도체 수준에 한도(cap on level)를 둘 가능성이 크다"며 "지금 기업들이 어떤 '단'의 낸드를 생산하고 있다면 그 범위의 어느 수준에서 멈추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스테베스 차관이 말한 '단'은 낸드 플래시 메모리에 적용되는 기술 수준으로, 단이 높을수록 뛰어난 성능을 구현한다. 낸드에서 단을 말한 것처럼 D램에서는 나노 단위로 기준을 세울 수 있다.

이미 지난해 10월 미국은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를 발표하면서 △128단 이상 낸드 플래시 △18나노 이하 D램 △16나노 이하 시스템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장비와 기술을 중국에 공급할 경우 미 상무부 허가를 받도록 했다.

현재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128단 낸드를, SK하이닉스는 다롄에서 96단과 144단 낸드를 생산한다. 우시 공장에서는 10나노 중후반대 제품이 만들어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이 규제 적용을 1년 유예받았는데, 에스테베스 차관의 발언처럼 올해는 규제 적용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기술 패권 관련 해외 투자 때 더 신중해야"

삼성전자는 신규 미국 반도체 공장 부지를 오스틴 공장에서 48㎞ 떨어진 테일러시로 결정했다. 사진은 삼성전자 미국 오스틴 반도체 공장.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는 신규 미국 반도체 공장 부지를 오스틴 공장에서 48㎞ 떨어진 테일러시로 결정했다. 사진은 삼성전자 미국 오스틴 반도체 공장. 삼성전자 제공


미국의 조치가 현실화하면 두 회사의 중국 공장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그동안 이들은 ①국내에서 최첨단 기술을 테스트하고 ②안정화된 양산 체계를 마련한 뒤 ③1, 2년의 시차를 두고 중국 공장에 기술을 적용해왔다. 이런 구조로 ④중국 샤오미, 오포, 비보 등 고객사에 제품을 팔았다.

지난해 발표된 규제 수준으로 적용될 경우 당장 반도체 생산에는 문제가 없을 수 있지만 앞으로 2, 3년 이후 공정 업그레이드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 두 회사는 미국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램리서치·KLA, 네덜란드 ASML 등으로부터 첨단 반도체 장비를 공급받는데 이들 모두 중국 수출 규제에 뜻을 함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가령 한국에서는 첨단 기술이 적용된 12기가바이트(GB) D램을 생산하는 반면 중국 공장에선 한 세대 이전 기술이 적용된 구형 8GB D램밖에 만들 수 없다는 뜻이다. 반도체 산업은 최신 기술 확보와 시설 투자에 천문학적 비용을 투입하고 수익성이 높은 최신 제품 판매에 집중해 투자 비용을 거둬들인다. 최신 제품을 생산할 수 없는 공장을 보유하는 것 자체가 수익성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두 회사는 아직 미국이 규제할지 여부를 확정하지 않은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기술 패권을 두고 미중 갈등이 길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반도체 생산 체계를 재편하는 것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미국 테일러시에 짓고 있는 신공장에 메모리 생산 시설을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한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코트라) 중국경제관측연구소장은 "미국의 규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한 나라에 생산을 너무 집중한 건 전시나 평시나 위험하다"며 "중국 내수 시장에는 최첨단 수요부터 하위 수요까지 다양한 만큼 생산 라인을 조정해 필요한 건 글로벌로 옮기고 현지화할 것은 집중 배치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계영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선임연구위원은 "잠재적으로 지정학적 갈등이 생길 수 있는 국가와 기존 경제 관계는 유지하되 기술 패권의 최전선에서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감안해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며 "정부는 해외 생산기지 투자 결정 등 중요한 의사결정권자로서 기업의 역할이 커지고 있는 현실을 국가 전략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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