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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닫은 문화재청...고양이는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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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면적의 작은 섬, 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에 사는 고양이를 둘러싼 논란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뿔쇠오리를 보호한다며 마라도 고양이들을 일괄 포획하겠다고 밝히자, 48개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철새와 고양이 보호 대책 촉구 전국행동'(전국행동)은 고양이 보호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반발하고 있다.
논란의 시작은 문화재청이 충분한 준비 없이 고양이를 획일적으로 포획(본보 1월 21일 자)하려고 한 데서 비롯됐다. 문화재청은 당초 고양이로 인한 뿔쇠오리 피해 근거를 포함해 고양이 포획 기준, 포획 후 방안 등을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 고양이를 돌보는 주민들의 의견도 묻지 않았다.
문화재청은 본지 지적 이후 전문가, 동물단체,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출범시키고, 이를 통해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기상악화로 2차 협의체가 열리지 못한 가운데 문화재청은 관련 연구용역을 맡긴 제주대 연구팀과 긴급 치료를 명목으로 마라도 고양이 네 마리를 섬 밖으로 빼냈다. 나중에 이를 알게 된 협의체 참가자들이 반발하자 문화재청은 "아픈 고양이 치료는 협의체와 합의할 내용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천연기념물을 관리하는 문화재청이 왜 아픈 고양이 치료에 나서는지 의문이지만, 그럼에도 고양이 치료는 고마운 일이니 받아들인다고 치자. 하지만 막상 잡힌 고양이들은 검진 결과 피부병, 발바닥 상처 등으로 긴급치료가 필요한 상황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전국행동은 '구조'를 핑계로 한 '감금'이라며 네 마리를 다시 마라도로 돌려보낸 후 포획할 고양이 보호 방안 마련을 요구하는 민원 캠페인에 돌입했지만 문화재청은 묵묵부답이다.
이후로도 문화재청의 협의체 '패싱'은 계속됐다. 연기된 2차 협의체 일정 역시 문화재청의 일방통보였다. 일부 참가자들은 비행기표를 구하지 못했거나 일정 조정 문제로 참석하지 못했고, 문화재청 측에 화상회의를 열 것을 요구했지만 이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기자가 대변인실에 "비행기표가 매진이라 참석할 수 없다"고 하자 "문화재청은 표를 끊었다"는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협의체는 결국 대부분 정부 쪽 인사로 채워진 채 열렸다. 이후 문화재청은 협의체에서 고양이 일괄 반출을 결정했다고 발표했지만 반대 의견이 있었다는 사실은 쏙 뺐다. 더구나 이는 '보호시설 마련이 우선'이라는 조건 아래 고양이 반출을 동의한 주민들의 의견도 무시한 처사였다.
"협의체와 주민들의 협의를 거쳤다"고 강조하면서도 정작 이들의 의견은 배제시키는 문화재청의 이 같은 행태는 납득하기 어렵다. 문화재청은 이런 상황에서도 일부 언론만 불러 보호소만 결정되면 바로 마라도에 들어가 고양이를 '구조'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제주세계유산본부는 27일부터 고양이 반출을 시작한다고 24일 발표했다.
'뿔쇠오리 보호=고양이 반출'은 아니다. 뿔쇠오리를 포함해 철새 보호를 위해서는 보다 복합적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형식적 목적만 달성하면 과정은 생략돼도 되는 것인지 문화재청에 묻고 싶다. 충분한 준비와 논의 없는 결정으로 인한 피해는 결국 고스란히 고양이와 주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문화재청은 이제라도 일방통행식 조치를 우려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소통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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