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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진 약 4,000종의 식물이 자랍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우리나라 풀, 꽃, 나무 이름들에 얽힌 사연과 기록, 연구사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로 엮을 계획입니다.
우리나라는 전국 어디에서나 콩이 잘 자란다. 재배하는 콩뿐만 아니라 전국의 산과 들에서 돌콩, 새팥 같은 콩과식물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제주도는 우리나라 나물용 콩을 가장 많이 심는 곳이고, 두만강(豆滿江)이 '콩이 가득 찬 강'이라는 의미를 지닌 것처럼 북쪽에서도 잘 자란다. 우리나라 콩에 대한 옛 기록이 많고, 전국 수십 곳의 신석기시대 이후 유적지에서 콩이 출토되었다는 점은 선사시대부터 재배되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러시아 식물학자 바빌로프(Nikolai Vavilov) 박사는 1923년부터 약 10년간 탐사대를 이끌고 전 세계의 식물을 조사하여 재배식물의 기원지를 밝혔다. 1929년엔 우리나라에도 입국하여 전국의 식물을 조사한 적이 있다. 그의 탐사기록에 당시 서울에서 미 농무성(USDA)이 파견한 모르스 박사(William J. Morse)와 파이퍼 박사(Charles V. Piper)를 만났다는 내용이 있다. 평생 콩을 연구한 학자들인 그들과 극동지역 콩의 분포와 이용에 대한 다양한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콩의 '기원 중심지(Center of origin)'가 만주 남부와 한국이라는 바빌로프의 분석결과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수집한 식물 표본과 종자들은 지금도 바빌로프연구소에 보관되어 있고, 미국은 수집해 간 종자 자원을 개량하고 재배를 시작하여 이제는 전 세계 콩의 70%를 생산하며 최대 수출국이 되었다.
러일전쟁 직후 러시아로부터 만주 지배권을 승계한 일제는 남만주철도주식회사(만철·滿鐵)를 설립하고 제국운영에 필요한 식량 등 자원 확보를 위한 철저한 조사와 연구를 진행한다. 만철은 당시 일제 재정수익의 약 4분의 1을 벌어들였고, 연 5,000건이 넘는 보고서를 낼 정도로 다양한 조사와 연구를 진행했다. 식물자원은 주로 만철농사시험장에서 연구를 하였는데 콩에 대한 보고서가 가장 많이 확인되고 있다. 일제 역시 식량작물로서 콩을 주목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식물조사는 주로 조선총독부 촉탁인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 박사에 의해 진행됐다. 농업연구기관인 권업모범장에서는 나카이 박사의 조사 결과를 참고하여 다양한 콩과식물을 수집하고 연구를 진행했다. 그중 미스히데오(三須英雄)가 40종의 야생 콩과식물을 분석하여 농학회보에 처음 보고한 7편의 논문은 학계의 큰 관심을 끌었다. 이처럼 일제는 100년 전 이미 한반도와 만주의 콩을 속속들이 연구하고 수집해 갔다.
콩은 세계적으로 단백질과 식물성 지방을 제공하는 매우 중요한 식물이다. 유엔 산하 국제농업연구기구(CGIAR)는 식량으로 재배되는 주요 식물의 연구를 위해 바빌로프가 밝힌 재배식물 기원지역에 연구소를 설치·운영하고 있다. 필리핀의 국제미작연구소(IRRI), 멕시코의 국제밀·옥수수연구소(CYMMIT), 페루 국제감자연구소(CIP) 등이다. 그러나 국제콩연구소는 아직 없다. 만주나 한반도 북부 어느 곳에 있어야 하겠지만 접근이 곤란한 지정학적, 정치적 이유까지 고려하면 우리나라가 최적지이다.
농촌진흥청 농업유전자원센터에 보존 중인 우리나라 토종 콩 자원은 약 2만4,500점으로 보유량과 다양성 면에서 세계 최고다. 지구상 콩 재배의 기원지로 한국을 포함한 바빌로프 박사의 판단은 옳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두부, 된장, 간장, 식용유에 이르기까지 하루라도 콩에서 유래한 음식을 먹지 않는 날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우리의 콩 자급률(식량용)은 30%를 넘지 못한다. 콩의 유구한 재배역사와 재배 기원 중심지로서의 위상에 걸맞지 않는다. 자급률을 높이고, 국제적인 식량문제 해결을 위한 기술개발과 공여를 위해 유엔 산하의 국제콩연구소를 유치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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