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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BM 쏘면서 지게·소달구지로 ‘퇴비 전투’ 벌이는 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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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탄도미사일 발사 등 무력 도발을 이어가는 가운데, 들녘에선 주민들의 '퇴비 전투'가 한창이다. 북한 당국이 본격적인 농번기를 앞두고 퇴비를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과 인력을 총동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일과 23일 인천 강화군 양사면 강화평화전망대에서 800㎜ 초망원 렌즈를 통해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유정동 마을을 촬영했다. 영하의 추위 속에서 주민들은 무리를 지어 분주하게 움직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공동작업장으로 보이는 장소에 모아둔 퇴비를 각자 지게에 지고 농지까지 퍼 나르는 중이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소달구지도 동원됐고, 간혹 농로를 따라 퇴비를 운송하는 트랙터와 트럭도 눈에 띄었다. 추위와 노동에 지친 주민들이 한쪽 양지바른 곳에 불을 피워놓고 몸을 녹이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고도로 발달한 무기체계에 비해 한참 뒤떨어진 북한 농촌의 현실이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들이다.
북한 당국이 '전투'라는 공격적인 용어를 들이대며 퇴비 생산에 전력을 기울이는 이면에는 고질적인 식량 부족 사태가 있다. 실제로 통일부는 지난 21일 "북한 일부 지역에서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6일 농업 문제를 집중 논의하기 위해 노동당 전원회의를 소집했다. 통상 매년 1~2차례 개최해 온 당 전원회의를 지난해 말 이후 불과 두 달 만에 다시 연 것은 이례적인데, 식량 부족 문제가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북한 당국으로서는 식량 위기 타개를 위해 농업 생산성을 높여야 하고, 이를 위해 현재로선 퇴비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북한의 토지는 작물 경작에 혹사되면서 산성화가 매우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산성화한 토양에 비료가 필수적이지만, 코로나19 이후 중국산 화학비료 수입이 크게 줄어들면서 비료 부족 사태에 허덕이고 있다. 국내 전력 및 원료 부족으로 비료의 자체 생산마저 원활하지 못한 실정이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북한의 중국산 화학비료 수입액은 총 472만 달러로, 전년 동기에 비해 80.5%나 감소했다.
북한 당국은 비료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더 빨리 또 더 많은 퇴비를 생산하라'는 지시를 각 지역 단위로 내려보내는 등 퇴비 증산을 독려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퇴비를 생산하는 농촌에서는 농기계와 운반 수단 부족으로 작업의 대부분을 맨손으로 감당하면서 작업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작업 기간이 늘어나다 보니, 본격적인 농번기를 한참 앞둔 시점부터 주민들이 퇴비 생산에 동원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농촌에서 생산한 퇴비만으로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만큼, 북한 당국은 국가기관과 공장·기업 같은 모든 사업 단위, 각 지역 인민반에까지 확보해야 할 퇴비의 양을 할당하고 있다. 이 할당량 달성 여부에 따라 개인이나 단체를 평가하다 보니, 주민들은 겨울철이면 퇴비의 주원료인 인분을 서로 사고팔거나 퇴비를 쌓아둔 창고를 습격하기도 한다. 북한에서는 인분과 가축 분뇨, 잿가루와 흙을 버무려 퇴비를 만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렵게 모은 퇴비는 일정량이 채워지면 농촌 현장으로 보내는데, 지난 13일엔 국가적인 행사가 열리는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인분 수송 행사가 열려 눈길을 끌었다. 북한 매체가 보도한 이날 행사 장면을 보면 인분을 싣고 농촌으로 떠나는 화물차에 인분을 확보한 내각 기관의 이름이 적혀 있기도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6차 전원회의 결과 보고에서 경제분야의 '12개 중요 고지 기본 과녁'을 밝히고 이 중 첫 번째를 알곡이라고 규정했다. 북한 매체들 역시 연일 '비료 자급' '거름 증산'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정권이 탄도미사일 도발 등 무력도발에 집중할수록 주민들의 생존이 달린 퇴비 전투는 갈수록 힘겨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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