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보는 시각과 시선에 따라서 사물이나 사람은 천태만상으로 달리 보인다. 비즈니스도 그렇다. 있었던 그대로 볼 수도 있고, 통념과 달리 볼 수도 있다. [봄B스쿨 경영산책]은 비즈니스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려는 작은 시도다.
"나는 지금 조용한 사직 중(quiet quitting)이다. 실제로 일을 그만두는 것은 아니고, 다만 주어진 일 이상의 노동과 열정을 바라는 허슬 문화(hustle culture)를 그만두는 것이다. 일은 당신의 삶이 아니다. 당신의 가치는 당신이 하는 일의 결과물로 정의되지 않는다."
2022년 7월 17초 분량의 이 짧은 영상은 매우 빠른 속도로 SNS에서 퍼졌다. 자이들플린(Zaidlepplin)이라는 20대 엔지니어 틱토커(TikToker)가 올린 영상인데, '실제 퇴사를 하지는 않지만, 마음은 일터에서 떠나 최소한의 업무만 처리하는 태도'를 뜻하는 '조용한 사직'이라는 신조어가 회자되기 시작했다. 작년 가을부터는 우리나라에서도 따끈한 주제가 된 것 같다.
그런데 '조용한 사직'의 개념은 한국 직장에서 오래전부터 있어 왔던 '받은 만큼만 일하자'와 유사한 개념인 것 같다. '받은 만큼만 일하자'는 '직장에서 일을 열심히 할 필요가 없고, 잘리지 않고 생존할 만큼만 일한다'는 취지의 태도를 말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받은 만큼만 일하면 된다'는 비율은 나이별로 봤을 때, 20대가 78.9%, 30대 77.1%, 40대 59.2% 그리고 50대는 40.1%로 나타났다. 연령대가 높을수록 '받은 만큼만 일해도 된다'는 비율이 낮아진다. 젊은 시절에 허슬 문화에 크게 영향을 받거나 아니면 나이가 들수록 '삶의 섭리'를 깨닫기 때문일 수 있다. '일'은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매우 중요하고 큰 부분이라는 걸 알게 되는 것일 수 있다.
'받은 만큼만 일하자'나 '조용한 사직'은 보상에 대한 불만이나 섭섭함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인다. 회사 생활이 '열정 페이'처럼 죽도록 일하고는 쥐꼬리만큼 월급을 받는다는 인식이 강하다. 직장에서 하는 일을 통해 받는 월급이 자신들이 일한 것에 비해 덜 받는 구조라는 성과-보상의 불공정성에 대한 인식이다.
반면 열정적으로 일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허슬 문화(hustle culture) 지지자들일 수 있다.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은 청년시절 가출하여 서울의 한 쌀가게에서 배달 점원으로 일했는데, 너무 열정적으로 일을 한 덕분에 쌀가게 주인은 "네가 맡아서 하라"고 좋은 조건으로 쌀가게를 넘겨줬다. 회사 업무에서 배운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이니시스 등을 창업, 코스닥에 상장시키고 수백억 원에 매각한 권도균 대표는 '회사는 돈을 받으며 일을 배울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조용한 퇴사자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상사에게 들키지 않으면서) 일을 열정적으로 하지 않아도 직장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회사와 상사가 그걸 알아차리지 못할 리 만무하다. 영국 BBC방송은 "조용한 퇴사자들을 회사는 '게으른 직원'으로 보고, 게으른 직원에게 업무를 주지 않는 '조용한 해고'를 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실 '조용한 사직'의 사고방식과 태도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인사관리론에서도 이를 조직냉소주의(organizational cynicism)라는 주제로 오래전부터 다뤄 왔다.
'유토피아'에서 꿈꾸었던 이상적 세상은 하루 8시간 일하는 것이다. 인류는 이미 유토피아를 달성하였다. 주 4일 또는 주 3일 근무를 하거나 하루 8시간 근무를 하지 않아도 경제가 유지되고 성장할 수 있는 기술과 시스템이 갖추어진 이상적인 세상이 되었다. 직장에서 받은 월급보다 일을 더 열정적으로 하든, 받은 만큼만 일하거나 덜 하든 그것은 개인의 판단과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열심히 일하지 않거나 열정적으로 일하거나, 책임은 당사자가 질 것이므로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선택할 자유를 누리고 있다. 동일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개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달려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