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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한국의 ‘MZ세대’와 일본의 ‘소셜 네이티브’

입력
2023.02.25 04:40
15면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전통적으로 '세대론'은 개별 국가마다 그 특성이 확연히 구별됐다. 그러나 인터넷, 스마트폰, 소셜미디어 등 정보환경이 통합되면서 최근 한국과 일본은 물론 지구촌 젊은 세대에게 공통점이 확인되고 있다. 일러스트 김일영

전통적으로 '세대론'은 개별 국가마다 그 특성이 확연히 구별됐다. 그러나 인터넷, 스마트폰, 소셜미디어 등 정보환경이 통합되면서 최근 한국과 일본은 물론 지구촌 젊은 세대에게 공통점이 확인되고 있다. 일러스트 김일영

◇‘MZ세대’ 담론이 무성한 한국 사회

여기저기에서 ‘MZ세대’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시사 뉴스 프로그램은 물론이요, 개그 동영상이며 최신 마케팅 서적에 이르기까지 요즘 세태를 이야기할 때 어김없이 튀어나온다. MZ세대의 ‘M’은 1980년대 초반에서 1990년대 중반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 ‘Z’는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Z세대’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계산이라면 막 20대가 된 대학생부터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있는 40대 학부모까지 모두 MZ세대라는 뜻이니, ‘세대론’을 주장하기에는 연령대의 범위가 너무 넓다.

일반적으로 사회과학에서 특정한 경험과 행동 양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을 ‘코호트(cohort)’라고 한다. 세대론은 특정 시기에 태어난 인구 집단이 대체로 유사한 사회적 경험을 한다는 의미에서 코호트 개념을 활용하는 대표적인 담론이다. 한국의 MZ세대론은 사회적 경험이 전혀 다른 연령대를 포괄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코호트 분석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사실 밀레니얼 세대, Z세대도 실용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의 사회과학에서 나온 담론이었던 만큼, 처음부터 한국 사회의 현실과 맞지 않는 구석도 있었다.

세대론은 한 사회의 변화를 설명하는 데에 유용한 담론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에 다니며 정치 참여에 적극적이었던 ‘386세대’, 개성과 취향을 중시하고 매사가 개방적인 ‘신세대’ 담론 등이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이들 세대론이 등장한 시기는 각각 오랜 군사 독재정권이 청산되던 1980년대 정치적 격변기, 빠른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한국이 본격적인 소비사회로 진입하던 1990년대 초입이었다. 즉, 사회가 현저한 변화를 경험하는 시기에 세대론이 등장하고 주목받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보면 내용은 무성의하고 부정확해도 MZ세대론이 자주 회자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의미심장하다. 한국 사회가 눈에 띄는 전환기를 맞이했다는 뜻으로도 읽히기 때문이다.

◇‘단카이 세대’에서 ‘사토리 세대’까지 일본의 세대론

일본에도 실로 다양한 세대론이 있었다. 일본 사회가 그만큼 격동의 시기를 보내왔다는 뜻일 것이다. 예를 들어, 태평양전쟁 패전 직후 1940년대 후반에 출생한 베이비부머(baby boomer·전쟁 직후 출산율이 높은 특정 시기에 태어난 인구)를 뜻하는 ‘단카이(団塊) 세대’는 반세기가 넘도록 일본 사회를 움직이는 주축이다. 무엇보다 덩어리라는 뜻의 ‘단카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이 연령대 인구층이 두껍다. 이제 70대 중후반에 접어든 이들은 젊은 시절에는 학생 운동에 열심이었고, 고도 경제성장의 주역인 샐러리맨 문화를 만들었으며, 지금은 ‘초고령화 사회’의 당면 문제를 체험하고 있다.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고 정치 참여에도 적극적인 이들은 전후 일본 사회 격변기의 주역이자 가장 역동적인 주체였다.

그런데 단카이 세대의 뒤를 이어 1950년~1960년대 중반에 태어난 세대는 이전과는 전혀 다르다. 지금 60대부터 70대 초반 연령대인 이들은, ‘시라케(시큰둥하다, 무관심하다는 뜻) 세대’라고 불리는데, 학생운동이 한풀 꺾이면서 일본 시민 사회에 무기력한 분위기가 팽배하던 시기에 젊은 시절을 맞았다. 정치적으로 무관심하고 개인주의적 경향이 강하다. 사회에 대한 인식과 행동 양식이 단카이 세대와는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에 ‘신인류(新人類)’라는 별칭도 붙었다.

이후 분위기가 반짝 달라져서, 1960년대 후반에 태어난 50대 중후반 연령대는 짧게나마 호시절을 경험한 ‘버블 세대’다. 일본 경제 고도 성장기에 태어나 엔화와 일본의 자산 가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았던 ‘버블 경제’ 때에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했다. 호경기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만큼 매사에 적극적이고 의사소통 능력도 높은 편이다.

그러나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는 전혀 다른 젊은 시절을 경험한다. 자산 버블이 붕괴된 이후, 갑작스러운 불황의 직격탄을 받은 이들을 ‘빙하기 세대’ 혹은 ‘로스트 제너레이션’(줄여서 ‘로스제네’라고 부르기도 한다)이라고 부른다. 지금 40대에서 50대 초반에 해당하는 이 연령대는 구직난이 극심하던 1990년대 중반에 대학을 졸업했다. 비정규직으로 취직해도 암담한 장래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이들은 소비보다는 절약을 선택하며, 결혼이나 출산에 대해서도 소극적인 경향이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지금 20대에서 30대 중반 연령대는 ‘유토리(여유, 넉넉함을 뜻함) 세대’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2002년부터 지식 전달보다는 인간성을 키우는 데에 중점을 둔 이른바 ‘유토리 교육’이 실시됐는데, 바로 이 의무 교육을 받은 젊은 세대를 가리킨다. 이 새로운 교육 방침은 여유로운 삶과 창의성을 중시한다는 취지와는 달리 젊은이들의 학력 저하를 낳았다는 비판 여론이 컸다. 그러다 보니 유토리 세대에 대해 주체성이 없고 정신력이 나약해서 스트레스에 잘 견디지 못한다는 부정적인 특징을 거론하는 경우가 많다. 이 연령대는 ‘사토리(깨달음, 득도를 뜻함) 세대’라고도 불리는데, 장기적인 불황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만큼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현실적인 경향이 두드러진다. 사회적 야망이나 꿈이 없이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소비에 있어서도 명품 브랜드보다는 비용 대비 효율을 중시한다고 한다.

◇ ‘디지털 네이티브’에서 ‘소셜 네이티브’로, 디지털 미디어와 세대론

요즘 일본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에 태어나 올해 기준으로 10대에서 20대 중반 정도의 젊은 세대를 일컫는 ‘소셜 네이티브(social native)’라는 말도 자주 거론된다. 2000년대 초반에 미국에서 등장한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이후 세대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어렸을 때부터 스마트폰을 사용해 인터넷 정보 수집에 능하고, 소셜미디어를 매개로 하는 가상 공간의 인간 관계에도 익숙한 젊은이들을 뜻한다.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대한 수용도가 높고,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한술 더 떠서 10대가 되기 전에 태블릿 PC를 조작하고 스마트폰 앱 조작에 능한 ‘알파 세대(alpha generation)’라는 말도 나온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런 특징이 일본의 젊은이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젊은이들은 공통적으로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고 소셜 미디어에서 인간 관계를 맺으며, 동영상 플랫폼을 즐겨 보며, 인공 지능과의 대화에서 이질감을 덜 느끼는 경향이 있다. 그런 점에서 디지털 네이티브에서 소셜 네이티브, 알파 세대로 이어지는 담론은 나라나 지역을 불문하고 적용할 수 있는 글로벌한 세대론이다.

원래 세대론은 특정 사회를 배경으로 성립하는 개념이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신세대’와 일본의 ‘로스트 제너레이션’,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와 일본의 ‘유토리 세대’는 연령대는 비슷하지만 코호트의 특징은 크게 다르다. 각각의 사회에서 전혀 다른 경험을 했기 때문에, 행동 양식이나 세상을 보는 방식이 같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인터넷, 스마트폰, 소셜미디어 등 전 세계를 아우르는 디지털 정보 환경이 세대론의 대전제를 뒤흔들고 있다.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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