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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권력에 무너지는 '이수만 신화'...K팝 1세대 기획자들 왜 몰락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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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을 세계에 알린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SM은 K팝의 초석을 닦은 연예기획사라는 화려한 외부 평가와 달리 일부 소비자들에겐 최근 '답답한 기획사'로 불렸다.
SM이 지난달 20일 소속 그룹 에스파의 첫 단독 공연 개최 소식을 발표하고 보름여 뒤부터 온라인에서 팬들의 불만이 터져 나온 게 상징적이다. 가수가 새 앨범을 내야 관객 입장에선 새로운 무대를 즐길 수 있는데 정작 첫 단독 공연에 앞서 신작 발매는 감감무소식이었기 때문이다. 세계 음악시장에서는 신작 공개 뒤 공연을 하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인데 이를 거스른 것이다. 최근 회사를 둘러싼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이 같은 이상한 업무의 배경이 드러났다. 이수만 전 SM 총괄 프로듀서의 '황제 권력'이 이런 잡음을 초래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성수 SM 대표는 유튜브를 통해 이 전 총괄이 에스파 신곡에 '나무심기'를 투영한 가사가 담긴 노래를 부를 것을 지시했다며 이런 '엉뚱한 지시' 때문에 신곡 공개를 취소했다고 주장했다.
양대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인 하이브와 SM 합병을 둘러싼 최근의 이전투구식 폭로전과 논란은 SM 창업자이자 대표적 K팝 1세대 기획자인 이수만 전 총괄의 신화에 금이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가 K팝 시스템 구축의 선도적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폐쇄적 운영과 견제할 수 없는 황제권력이 SM의 위기사태로 이어진 것이다.
3주에 두 번 심겨진 '나무' SM 미스터리
에스파는 인간 멤버 4명과 각 멤버의 아바타를 합쳐 8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현실과 메타버스, 즉 '광야'란 새로운 세상에서 악당 '블랙맘바'와 싸우는 이야기를 '넥스트 레벨', '블랙맘바' 등의 곡에 녹였다. 에스파와 연관성을 찾기 어려운 이 프로젝트를 이 대표는 "이 전 총괄의 부동산 사업과 연결된 욕심"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이 전 총괄은 지난해부터 K팝과 연계된 나무 심기 캠페인 등을 벌이고 있다. 실제로 SM에서 최근 두 달 새 나온 노래 가사 곳곳에는 '나무'가 들어가 있다. 강타 등이 불러 지난해 12월 발표된 '더 큐어'엔 "우리가 심었던 나무가 새롭게 피어날 꽃이 되어"라는 가사가, 프로젝트 그룹 갓더비트가 올해 1월 공개한 '알터 에고'엔 "메마른 무채색 대지에 한 그루의 희망을 심는 일"이란 가사가 각각 담겼다. 환경단체도 아니고 연예기획사가 소속 간판 스타들을 총동원해 '나무 심기'란 키워드가 들어간 노래를 불과 3주 만에 잇따라 내는 일은 이례적이다. 세계를 호령하는 K팝 기획사의 콘텐츠가 누군가의 입김에 따라 얼마나 일관성 없이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불투명, 폐쇄 경영 SM, 윤리문제 YG... 1세대 K팝 기획의 몰락
이 전 총괄은 1995년 SM을 설립한 뒤 소속 연예인을 포함해 모든 직원으로부터 27년여 동안 "선생님"으로 불렸다. YG엔터테인먼트 설립자인 양현석이 "사장님"으로, JYP엔터테인먼트를 만든 박진영이 "프로듀서"로 불린 것과 비교하면, 이 전 총괄은 SM 직원들에게 말 그대로 구루(Guru·스승)였다. 그러나 그를 향한 전폭적인 믿음에 금이 가면서 이 전 총괄은 SM에서 배척당했다. 208명으로 구성된 SM 평직원 협의체까지 최근 이 전 총괄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냈다. 경영권 분쟁 중인 SM을 하이브와 카카오 중 어느 회사가 차지하든 SM에서 이 전 총괄의 퇴진은 불가피한 수순이다.
"내 녹 받는 너희" '황제 권력' 만들어지기까지
K콘텐츠 시장에서 창업자의 황제 권력은 회사가 창업자의 사람들로 채워지는 등 폐쇄적으로 운영되면서 더 힘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이수만 SM 왕국'의 공신은 바로 이성수 SM 현 공동대표였다. 이 대표는 이 전 총괄의 처조카로 프로듀싱본부장 등을 지냈고, 매니저 출신 탁영준 대표는 2001년부터 이 전 총괄과 함께했다. 이 대표는 불과 1년 전까지 "셰프라고 다 똑같이 급여를 받아야 하나?"(2022년 3월 '삼프로TV')라며 이 전 프로듀서의 라이크기획을 되레 감쌌다. "SM의 현 위기는 신구 창작 권력 모두에게서 비롯됐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 대표는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직 사임을 밝혔지만 그 역시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SM 출신의 K팝 아이돌그룹 제작자는 "이 전 총괄을 처음 만났을 때 '나의 녹(祿)을 받는 너희'라고 말해 조선시대 상감을 만나는 느낌이었다"며 "프로듀서의 음악적 업적은 후배로서 높이 평가하지만 권위적 모습에 깜짝 놀랐고 그런 조직 문화가 바뀌지 않은 게 이런 위기로 이어진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서정민갑 음악평론가는 "SM 사태로 '선생님'의 이면과 그 과정에서 절대권력의 위험함과 K팝 산업의 비효율성이 드러났다"며 "성장 단계에선 1인 중심의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겠지만, K팝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한 사람이 경영과 창작 등 모든 영역을 통제하고 조율하는 방식은 이제 한계에 달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매출 6% 수익 차지... K팝 1세대 권력의 그늘
이 전 총괄은 K팝 전성시대를 연 선구자였다. H.O.T.를 시작으로 S.E.S., 보아, 동방신기, 소녀시대, 샤이니, 엑소 등을 줄줄이 제작해 K팝 세계화에 앞장섰다. 그의 영향력은 SM뿐 아니라 K팝 시장에서 막강했다. 그랬던 이 전 프로듀서의 추락은 K팝 1세대 권력의 그림자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창립자의 입김에 기획사는 독립성을 잃었고 경영은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졌다. SM 지분 약 1%를 보유한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사에 따르면, 이 전 프로듀서 회사인 라이크기획을 통해 프로듀싱 명목으로 SM 매출의 6%를 떼어갔다. 그 금액은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1,600억 원에 달한다.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 10여 년이 지난 창업주가 회사를 따로 차려 모회사에서 매출액 기준으로 수수료를 챙겨가는 건 국내 자본시장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 이런 불투명한 경영 시스템은 SM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SM만 위기에 처한 것은 아니다. '버닝썬 사태'로 실형을 선고받은 승리 등 소속 연예인들의 일탈행위가 불거진 YG엔터테인먼트도 "비윤리적 매니지먼트"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한때 벼랑 끝에 몰렸다. YG는 이 전 총괄과 함께 K팝 1세대의 대표적 기획자인 양현석 프로듀서가 세웠다.
김상화 음악평론가는 이번 사태와 관련 "이 전 총괄의 감각이 SM의 기반을 닦은 것은 맞지만 그가 근래 주도해 온 에스파 '광야' 등의 세계관 구축 등은 대중과 SM 음악의 거리를 더욱 멀게 했다"라며 "하이브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하고 JYP엔터테인먼트가 재무적으로 탄탄한 실적을 보이는 상황에서 SM의 고전이 지속되자 이수만 중심 프로듀싱 체계에 대한 불신이 커진 것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고 짚었다. 이 과정에서 K팝의 혁신을 이끈 이 전 총괄 중심 중앙집권적 프로듀싱 체제는 개혁의 대상이 됐다는 것이다. 김성환 음악평론가는 "SM의 위기는 창립자 주도로 운영을 이끌어갔던 K팝 기획사의 구시대적 경영 방식이 결국 부메랑을 맞은 것"이라며 "덩치 커진 K팝 산업의 체질 개선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라고 말했다. K팝의 성공 신화를 이어가기 위해 새로운 리더십이 절실해진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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