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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뗏목 유람, 자연에 차린 공연... 이만하면 도연명의 이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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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가 물길을 따라간다. 복숭아꽃 만발한 숲을 헤치고 동굴을 지나니 마을이 나타난다. 땅은 넓고 집은 가지런하며 기름진 논밭과 아름다운 연못, 사방으로 연결된 길과 닭과 개 우는 소리가 들린다. 남녀노소 평화롭게 살아가는 지상낙원이다. 한동안 대접받고 돌아왔다. 다시 갔으나 찾을 수 없었다. 동진 시대의 시인 도연명이 ‘도화원기’에서 그린 이상향 이야기다. 세상 밖 낙원인 세외도원(世外桃源)이라 했다. 구이린 남쪽 양숴(陽朔)에 인공으로 조성한 관광지가 있다.
입장료가 100위안(약 1만9,000원)이니 비싼 편이다. 1,600년 전 언어를 빌려 돈을 벌고 있다. 카르스트 봉우리가 한몫 단단히 한다. 봉긋한 동선이 배경인 테마공원이다. 입구로 들어가 유람을 시작한다. 물길이 전혀 없어 호수 같다. 모터 소리와 배의 속도만 분위기를 깬다. 양쪽으로 누각이 여러 개다.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한다. 양숴는 좡족(壯族)의 땅이다. 소수민족 아가씨의 청아한 목청이 보드랍게 물결을 일으키는 장향루(壯鄉樓)를 지나친다.
도화원으로 들어가는 동굴이 있다. 물줄기를 끼고 있는 자그마한 산자락의 연자암동(燕子巖洞)으로 들어선다. 약 50m 정도지만 어둠에서 벗어나니 도화원기의 어부가 된 느낌이다. 조금 지나니 생화인지 조화인지 모를 복숭아꽃이 울긋불긋하다. 잘 가꿔진 나무다. 화사한 꽃잎이 반갑게 반겨주는데 향기가 돋는지는 모르겠다. 도화도(桃花島) 팻말이 걸려 있다.
섬을 끼고 좁다란 물줄기로 조용조용 들어선다. 다소 조잡하게 꾸민 원시부락이 나온다. 이상향 도화원이라 믿고 싶다면 상상을 발휘해야 한다. 돌아 나오는 길에 회룡교(回龍橋) 아래를 지난다. 소꿉장난 같은 유토피아 유람이다.
카르스트 봉우리가 있어 그나마 입장료가 덜 아깝다. 계림산수와 도화원이 어울릴 거라는 상상력이 만든 관광지다. 30분 정도 유람으로 도연명의 마음을 알기는 어렵다. 그저 시원하게 바람 쐬고 온 기분이다.
출구에 소수민족 문화거리가 있다. 비와 바람을 막아주는 다리인 풍우교(風雨橋)가 길게 이어져 있다. 사람 손때가 많이 묻은 테마공원이다. 성수기가 되면 1시간 이상 줄을 서기도 한다. 기다리는 시간보다 짧은 유람이라면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닌가 싶다.
세외도원에서 30분가량 산길 도로를 달린다. 이강 풍광을 멋지게 바라볼 수 있는 장소가 있다. 계림산수가 바로 이런 느낌이구나 실감할 수 있다. 상공산(相公山)에 도착한다. 등산로는 내리막 하나 없이 가파른 편이다. 정상까지 오르는데 20분이면 된다.
조금 숨이 차지만 절경을 보는 순간 씻은 듯 잊힌다. 첩첩이 쌓인 봉우리 사이로 유유히 강물이 흘러간다. 지금은 관광객도 많이 오지만 사진작가들이 숨겨놓았던 공간이다. 운해, 일출, 노을까지 날씨가 좋으나 나쁘나 모두 장관이다. 계절마다 다른 풍광을 선사한다. 모두 볼 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크고 작은 유람선이 강을 따라 오르내리는 모습이 한눈에 보인다. 갑판에 나온 사람까지 수직으로 내려다보인다. 구이린에서 출발한 유람선이 거의 종점에 다다르는 지점이다. 모터보트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오르는 유람 코스이기도 하다. 왼쪽으로 바라보니 상류 쪽 봉우리도 여전히 우후죽순이다. 날씨와 상관없이 강을 내려다보기만 해도 환상이다. 눈높이에 카르스트 봉우리가 있다. 맑아도 좋고 운무가 많아도 운치가 넘친다. 봉우리를 전부 감싸기도 한다. 강물이 푸른 날도 있다. 우기가 되면 황토 빛깔로 물든다.
대나무를 엮어 만든 배를 주파(竹筏)라 한다. 대나무 뗏목을 타고 즐기는 유람이 양숴 명물이다. 양손으로 움켜쥐어도 잡히지 않을 정도로 굵은 대나무가 쑥쑥 자란다. 습기 많은 지방이라 통이 굵다.
주파는 10개의 대나무를 꽁꽁 묶고 앞부분을 살짝 들어 올려 만든다. 물 위로 잘 미끄러지게 만들었다. 물론 사람을 태울 수 있어야 한다. 샛강인 우룡하(遇龍河)는 주파 유람에 최적화돼 있다. 43㎞에 이르는 강이다. 카르스트 봉우리와 어울려 ‘계림산수’ 분위기를 충분히 드러낸다. 하류에서 상류로 주파를 옮기는 차량이 자주 보인다. 차량을 따라가면 부두가 나온다.
2007년에 처음 갔을 때 1시간 30분을 탔다. 당시는 8월이라 무더웠지만 분위기에 취해 신선이 된 듯했다. 땡볕을 가리는 덮개가 있어 더운 줄 몰랐다. 비를 막아주기도 한다. 날씨에 맞춰 접고 펼 수 있다.
유리처럼 맑은 수면을 따라 부드럽게 떠가는 뱃놀이는 낭만 그 자체였다. 수상 포장마차가 있어 옥수수나 생선을 구워 팔고 있었다. 맥주도 팔았는데 지금은 거의 없어졌다. 사설로 운영할 때의 일이다. 수심이 1m 정도로 깊지 않은데 가끔 사고가 난다. 1년에 한 명꼴로 사망 사고가 나는데 주로 어린 아이들이라 한다. 우기에 비가 많이 오면 위험하다. 통제가 필요했다.
지금은 정부가 관리해 안전한 편이다. 덕분에 바가지요금도 없어졌다. 뱃사공들이 수입이 줄어들자 단체행동을 했다. 계속 저항하긴 어렵다. 뱃사공은 이제 유니폼을 입고 명찰도 패용한다. 표를 사고 입장하면 뱃사공이 지정된다.
뱃사공을 따라가 뗏목 위 고정된 의자에 앉는다. 2인 1조다. 혼자 탄다면 2배의 요금을 내야 한다. 출발 준비 중인 부두가 진풍경이다. 구명조끼를 입어야 하니 울긋불긋하다. 커다란 우산도 뗏목에 실려 있다.
서서히 미끄러지듯 출발한다. 카르스트 봉우리를 바라보며 의자에 누우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노 저을 때마다 물살 가르는 소리가 들린다. 바닥을 찍고 밀면 빠르게 이동한다. 가끔 뱃사공은 노래를 부른다. 관객이 들으라는 듯 고음으로 치솟는다.
아이들은 물총으로 장난도 친다. 물총을 당겨 물을 담아 쭉 쏘면 뻗어나간다. 옆 사람과 물싸움도 하고 누가 멀리 뿜는지 내기도 한다. 강변에 있는 나무를 표적으로 쏘기도 한다. 아무 짓도 하지 않고 그저 몸을 맡기면 된다. 눈을 감고 상상의 나래를 펴도 좋다. 멀리 봉우리로 시선을 옮기면 기분은 더욱더 상큼하다.
경사가 있는 둑을 통과하기도 한다. 뱃사공이 주의사항을 몸동작으로 알려준다. 풍덩 빠진다. 주파 앞부분이 물에 푹 들어갔다가 솟구친다. 신발이 젖지 않으려면 발을 높이 들어야 한다. 놀라는 모습이 제각각 재미있다. 멀리서 표정을 찍고 사진을 사라고 한다. 자신도 몰랐던 장면이라 웃고 떠들다가 구입한다. 사지 않아도 된다. 거꾸로 올라가는 배가 있어 이상하다 생각했다. 배를 올려주는 컨베이어 장치가 있다. 둑을 올라타고 넘어간다.
끊임없이 반영을 선보인다. 빨래하는 아주머니는 물오리와 한 화면에 잡힌다. 나무와 집도 물속으로 들어온다. 봉우리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봉우리 모양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추월하고 있는 뱃사공과 여행객도 반영된다. 대화를 나눌 정도로 가까워지면 서로 사진도 찍는다. 사진 주고받을 일이 없는데도 말이다. 우룡하 유람에는 초상권도 물속으로 사라진다. 거리에 따라 1시간에서 2시간까지 유람할 수 있다. 물론 요금은 차이가 난다.
부두에 도착해도 뱃사공은 근무복을 벗지 못한다. 얼마나 더웠을까?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다. 고맙고 안쓰러운 마음에 팁을 주기도 한다. 남모르게 슬쩍 주면 미소가 훨씬 은밀하다.
뱃사공에게는 주파를 끌어올리는 일이 남았다. 부드럽게 달리던 주파를 차량에 올린다. 합심해 끙끙거리는 모습이 힘겨워 보인다. 생각보다 긴 주파다. 순서대로 차곡차곡 쌓는 일이 벅차 보인다. 차에 걸친 후 노를 이용해 영차 소리를 내며 밀어 올린다. 노 젓는 일보다 훨씬 힘겨운 노동이다. 주파를 원래 위치로 이동시켜야 다시 일당을 받을 수 있다.
양숴 번화가인 서가(西街)로 간다. 중국 3대 풍물 거리로 꼽힌다. 유럽 배낭 여행자가 꼽았다. 수십 년 전부터 서양인들이 많이 찾는 거리라 양인가(洋人街)라고 부른다. 예전에는 숙소가 많았는데 이제는 식당, 술집, 나이트클럽, 공예품 가게로 붐빈다. 자동차나 자전거가 진입하지 못하는 보행 거리다. 10년 전에 1㎞ 남짓했는데 점점 넓어지고 있다.
밤이 되면 춤추고 노래하는 여행객으로 붐빈다. 현란한 환락가로 변한다. 거리를 거닐다 보면 쉽게 피주위(啤酒魚) 간판과 만난다. 맥주인 피주(啤酒)를 먹인 물고기 요리다. 양숴 일대는 온통 ‘맥주 물고기’다.
강에서 잡아 올린 물고기를 손질한 다음 토마토를 넣고 익힌다. 물 대신 맥주를 붓는다. 생강, 마늘, 버섯도 함께 넣는다. 생선 비린내를 확실히 잡아준다. 누가 언제 착안했는지 모르나 신기한 아이디어다. 맥주가 물보다 저렴한 중국 아닌가. 담백한 향이 난다. 양숴만의 특색 요리다. 한 집 걸러 모조리 피주위 식당이다. 안주로도 훌륭하다. 맥주와 곁들여 먹어도 나쁘지 않다.
서가에서 10분 거리에서 실경무대극이 열린다. 인상류싼제(印象劉三姐) 공연이다. 총감독이 유명한 영화감독 장이머우다. 젊은 두 명의 감독 왕차오거와 판위에가 연출을 담당했다. 2004년 3월 처음 무대가 열렸다.
봉우리를 배경으로 호수 위에 소수민족 전설을 담아냈다. 실제 경치를 배경으로 만든 무대는 대성공이었다. 중국 전역에 실경무대라는 장르를 열었다. 장족 전설의 아가씨인 류싼제가 테마다. 어려서부터 총명해 경전을 술술 읽고 노래도 잘 불렀다. 공동체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거의 20년이나 지났는데도 여전히 만원이다. 약 70분 동안 공연한다. 좌석이 2,000석이 넘는다. 성수기에는 두세 차례 공연한다.
400여 명이 배우로 출연한다. 대부분 현지 소수민족 주민이라 출연료를 줄인다. '인상' 시리즈가 성공한 요인이다. 공연이 시작되면 소수민족이 등장해 인사말을 한다. 전설을 간략하게 설명하는데 자세한 내용은 몰라도 된다. 어둠 속에서 계림산수 경치를 담은 영상이 나온다. 영상이 사라진다. 조명 하나가 툭 켜지고 한줄기 빛처럼 아리따운 좡족 아가씨가 등장한다. 노래하는 여신 류싼제다. 배를 타고 나타난다. 관객은 일제히 환호성을 지른다. 조명을 받은 아가씨는 마치 머나먼 전설 속 선녀인 듯하다. 호수에 반사된 모습까지 아름답기 그지없다.
횃불을 들고 소수민족 아가씨들이 관객을 향해 손을 흔든다. 붉은 조명이 서서히 등장한다. 붉은색 천을 드리운 뱃사공의 향연이다. 호수 양쪽을 연결한 천으로 재주를 부린다. 뗏목에 누워 재롱도 피운다. 사공이 수놓는 붉은 천 사이로 류싼제가 배를 타고 떠나간다. 배가 서서히 사라지면 조명은 호수 건너편을 비춘다. 평화롭게 살아가는 마을이 등장한다. 소를 몰며 농사짓고 비단으로 옷을 만들며 서로 모여 춤추며 살아가는 모습이다. 마치 도화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듯하다.
아이들이 호수 위를 걸어가고 소를 탄 사람도 따라간다. 소와 아이들이 사라지면 조명이 켜지고 초승달 장면이 펼쳐진다.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무희가 아슬아슬하게 춤을 춘다. 초승달 끝으로 가면 기울어지고 반대로 이동하면 다시 반대쪽으로 기운다. 조명에 비친 초승달은 꿈을 상징한다. 좌우로 움직이는 것은 애달픈 사랑의 마음을 상징한다. 공연의 백미다.
하늘에서 빛나던 초승달에서 무희가 사라진다. 땅에서도 사랑을 갈구하듯 조용히 기도하는 아가씨가 나타난다. 아가씨들이 날개 옷을 걸치고 춤을 춘다. 순간적으로 다 벗더니 전통 옷으로 갈아입는다. 한 아가씨가 류싼제에게 자신들의 전통 옷을 입혀준다. 류싼제는 기다리던 연인과 함께 배를 타고 멀리멀리 떠난다. 사랑을 이뤘는지 아리송하다. 해석하기 나름이다.
순식간에 암흑으로 변한다. 잠시 후 가장 먼 곳부터 하얀 조명이 하나씩 반짝거린다. 온몸에 전구를 걸치고 아가씨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빛이 켜지고 꺼지기를 반복한다. 스위치를 눌렀다 뗐다 반복하는 느낌이다.
지그재그로 호수에 만든 길을 따라 점점 무대 앞으로 접근한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전구 인형이 선명하게 깜박인다. 하얀 전구만이 아니다. 노랗고 빨갛다. 색깔이 서로 다른 아가씨다. 무슨 장치를 사용하는지 아무리 봐도 신기하다. 빛의 소리는 함성에 묻혀 더욱 진한 색채를 발한다.
붉고 노란 몸을 두른 아가씨들이 나란히 서니 대단원의 막이다. 멋진 마무리다. 아가씨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가 무대를 벗어나면 마을 이름이 적힌 깃발을 들고 뱃사공들이 무대 앞을 지나간다. 수백 명의 주민이 참여하고 계림산수 풍광과 소수민족 전설이 함께 녹은 공연이다. 공간도 시간도 점멸하는 빛처럼 가슴 깊숙이 꽂힌다. 인상 공연을 관람한 후에도 밤은 여전히 길다. 수렁에 빠질 듯한 공연 뒷맛이 남았으니 어찌 뒤풀이를 마다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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