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김광석이 살린 방천시장, 먹거리 핫플로 대구 3대 시장 명성 되찾는다

입력
2023.02.27 05:00
10면

[우리동네 전통시장]<14>대구 방천시장
김광석 · 양준혁 고향 대봉동 위치
서문시장·칠성시장과 3대 전통시장 위상
1990년대부터 쇠락하기 시작
인근에 김광석길 생기면서 변화
60개 점포 맛집들 늘면서 사람들 찾아

편집자주

지역 경제와 문화를 선도했던 전통시장이 돌아옵니다. 인구절벽과 지방소멸 위기 속에서도 지역 특색은 살리고 참신한 전략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돌린 전통시장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20일 대구 중구 대봉동 방천시장 입구 모습. 대구=류수현 기자

20일 대구 중구 대봉동 방천시장 입구 모습. 대구=류수현 기자

대구 대봉동은 가수 고 김광석의 고향이다. 지금은 해설가로 활동 중인 야구선수 양준혁도 이 동네 출신이다. 이들이 태어난 1960년대 대봉동에서는 서문시장, 칠성시장과 함께 대구 3대 전통시장으로 꼽히던 방천시장이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점포수만 1,000여 개에 이를 정도였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전통시장 쇠락의 흐름을 방천시장도 피해 가지 못했다. 그랬던 방천시장이 최근 대구의 '핫 플레이스'로 부상하고 있다.

60개 점포 상당수 음식점으로 변신

대구 대봉동 방천시장 내 음식점이 손님들로 가득 차 있다. 대구=류수현 기자

대구 대봉동 방천시장 내 음식점이 손님들로 가득 차 있다. 대구=류수현 기자

대구 수성동에서 달구벌대로를 타고 신천을 동서로 잇는 수성교를 넘어오면 제일 먼저 맞닥뜨리는 동네가 대봉동이다. 지난 20일 저녁 수성교 끝자락을 지나 대봉동에 들어서자 좌측으로 방천시장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시장 입구부터 연탄구이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왁자지껄한 손님들의 목소리가 가게 문을 넘어 흘러나왔다. 이날 지인들과 저녁 약속을 잡았다는 이원희(41)씨는 "족발과 참치 등 맛집이 많아 방천시장을 즐겨 찾는다"며 "노포가 많아 전통시장의 정취를 느끼기에도 그만"이라고 추켜세웠다.

방천시장은 5,785㎡ 규모로 60여 곳의 점포가 영업 중이다. 1,000여 곳의 점포를 보유했던 전성기 때와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하지만 다양한 음식점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사람들이 몰려 '작지만 강한' 시장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대구 중구 대봉동 방천시장 위치. 그래픽=김문중 기자

대구 중구 대봉동 방천시장 위치. 그래픽=김문중 기자

1945년 해방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신천 제방을 따라 장사하는 사람이 늘면서 방천시장이 형성됐다. 방천시장은 특히 싸전으로 유명세를 탔다. 한창 때는 새벽 4시면 8~10톤 트럭이 80㎏ 호남미를 가득 내려놨다. 경북 봉화나 영주에서 쌀을 직접 구입해 오는 쌀집도 많았다. 40년 넘게 쌀집을 운영하는 박경숙씨는 "수수 등 잡곡이 유명한 봉화와 영주, 영천에서 농사지은 것을 직접 보고 사 온다"며 "가장 좋은 물건을 당당하고 솔직하게 팔다 보니 40년간 고정거래처를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 쌀집 말고도 건어물 가게와 방앗간 등 40년 넘게 명맥을 이어 온 점포 10여 개가 과거 '대구 3대 시장'의 흔적을 증명하고 있다.

방천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상인들은 전성기의 영화를 잊지 못한다. 경북 경산과 청도 등 대구 바깥에서도 손님이 쇄도했고, 점포 사이 통로에 난전만 3열 종대로 펼쳐져 있을 정도였다. 한 80대 상인은 "당시는 가만히 서 있어도 밀려나가고, 무쇠 덩어리를 갖다 놔도 팔리는 시절이었다"며 "젊은이들이 스스로 자경단을 꾸려 소매치기를 잡아 빼앗긴 돈을 손님들에게 되찾아 줬다"고 회상했다.

"먹거리골목으로 특화하자" 목소리도

대구 중구 대봉동 김광석다시그리기길 전경. 대구=류수현 기자

대구 중구 대봉동 김광석다시그리기길 전경. 대구=류수현 기자

방천시장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주변 동아백화점과 대구백화점 등 대형 쇼핑센터에 밀렸고, 온라인 마켓 등장으로 어려움은 가중됐다. 방천시장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건 2009년이다. 대구 중구의 '별별시장 프로젝트'를 계기로 가판대를 정비하고, 미술 작가를 시장에 입주시키면서 다시 주목을 받았다.

'김광석'은 방천시장 부활의 기폭제였다. 지난 2010년 방천시장에서 신천 쪽으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이 조성됐다. 350m 거리의 골목길에 김광석 동상과 벽화 40점, 조형물 12점이 들어섰고, '서른 즈음에', '바람이 불어오는 곳' 등 김광석 노래가 흘러나오면서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대봉동에는 2015년 159만 명으로 정점을 찍었고, 대구를 중심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된 2020년에도 71만 명이 찾았다. 2021년 115만, 지난해 118만 명이 찾는 회복세로 올해는 더 많은 이들이 찾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6일에도 김광석 27주기 추모제가 열려 전국에서 그를 추모하는 많은 사람들이 대봉동에 모였다.

대구 대봉동 방천시장의 한 라이브 카페에서 시민들이 공연을 즐기고 있다. 대구=류수현 기자

대구 대봉동 방천시장의 한 라이브 카페에서 시민들이 공연을 즐기고 있다. 대구=류수현 기자

대봉동 출신 김광석 효과는 방천시장 변화로 이어졌다. 문을 닫은 시장 점포에는 라이브 카페와 복고풍 식당들이 들어섰다. 라이브 카페를 운영하는 이유진(49)씨는 "김광석길 영향으로 지역 가수들을 초청해 오후 9~10시에는 꼭 라이브 공연을 한다"고 말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김정한(60)씨는 "옛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냉동삼겹살로 장사를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넘어 코로나19 사태가 닥쳤지만 앞으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방천시장이 밤만 되면 음식점마다 가득 들어찬 청년들의 공간으로 변신하면서 상인들은 "먹거리골목으로 특화하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흑설탕소스에 찹쌀떡을 재운 대구의 상징 '대구꿀떡'도 방천시장에서 더 빛을 발하고 있다. 시장에서 떡집을 운영하는 이해영(50)씨는 "김광석길을 지나는 관광객들에게 대구꿀떡의 인기가 많다"면서 "김광석길과 방천시장을 연계하는 다양한 시도가 늘어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방천시장 상인회는 이르면 다음 달 출입구를 산뜻하게 새단장을 하는 등 상인들의 요구에 하나씩 부응할 예정이다. 정춘남(65) 방천시장 상인회장은 "생선과 채소, 과일가게가 사라진 방천시장을 이제 먹거리골목으로 변신시키는 과정"이라며 "이에 맞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대구= 류수현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