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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성적 지향 따른 차별, 더는 설 자리 없어"... 동성 반려자에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첫 인정

입력
2023.02.21 14:35
수정
2023.02.21 17:5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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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사실혼 개념 동성 결합까지 확대 어려워" 판단
2심은 "본질적으로 사실혼과 같아... 차별대우 안 돼"

동성 부부 피부양자 자격 인정 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소성욱·김용민씨 부부가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동성 부부 피부양자 자격 인정 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소성욱·김용민씨 부부가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실혼과 동일한 정도로 생활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동성 반려자에게는 건강보험 피부양 자격을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동성혼이 법제화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동성 결합 상대가 부부와 같은 사회보장 권리를 사법부로부터 인정받은 건 처음이다.

서울고법 행정1-3부(부장 이승한 심준보 김종호)는 21일 소성욱(32)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낸 보험료 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던 원심을 깨고 “보험료 부과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동성 결합 상대방 집단에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차별대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소씨는 2019년 동성 교제 상대였던 김용민씨와 평생을 함께 살기로 합의하고 양가 가족 및 친척들에게 대외적으로 이를 알리는 의식을 치렀다. 소씨는 이듬해 2월 건강보험 직장 가입자인 김씨의 피부양자 자격을 얻을 수 있는지 건강보험공단에 문의했다. 자격 취득이 가능하다는 직원 답변에 따라 소씨는 자격 변동 절차를 마쳤으나, 이 사안이 언론에 보도되자 건보공단은 같은 해 10월 피부양자 자격을 무효화하고 소씨에게도 보험료를 청구했다.

소씨는 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해 1월 1심에서 패소했다. 법률상 동성혼이나 동성사실혼이 규정되지 않는 이상 피부양자 자격 등의 법적 지위도 부여하기 어렵다는 취지였다. 1심 재판부는 "사실혼의 개념을 민법 등에서와 달리 동성 간 결합에까지 확대해야 할 특별한 사정을 인정하기 어렵다"면서 "동성혼 인정 여부는 개별 국가 내 사회적 수요와 합의에 따라 결정될 일로 원칙적으로 국가 입법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항소심 판단은 달랐다. 이성 관계인 사실혼 배우자에게 주어지는 피부양자 자격을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박탈해선 안 된다고 본 것이다. 2심 재판부는 "소씨는 김씨의 동성 결합 상대방임이 인정된다"며 "소씨에게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에 대한 차별대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2심 재판부는 이에 더해 "세계 각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역시 사법적 관계에서조차도 성적 지향이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없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며 "사회보장제도를 포함한 공법적 관계를 규율하는 영역에서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고 짚었다.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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