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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에너지 요금을 산으로 보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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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은 소리 들으면서 국민들에게 왜 에너지 가격을 올려야 하는지 열심히 설명했는데...이제 하늘만 알겠죠."
최근 만난 에너지 관련 공기업 관계자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누구도 달가워할 리 없는 요금 인상의 필요성을 설득해 왔다는 그는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15일 열린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전기·가스 등 에너지 요금은 서민 부담이 최소화되도록 요금 인상의 폭과 속도를 조절하고 취약 계층을 더 두텁게 지원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말은 파장을 일으켰다. 당일 유가증권시장에서 한국전력은 전 거래일보다 4.80% 하락한 1만8,250원에, 한국가스공사는 2.34% 떨어진 3만1,350원에 거래를 끝냈다. 올해 에너지 요금 추가 인상을 통해 한전과 가스공사의 적자 문제가 일부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이날 대통령 발언으로 그 가능성이 줄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 정부 주요 인사들은 그동안 에너지 요금을 꾸준히 올리겠다고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국민들이 불편해한다고 해서 장기간 조정해야 할 가격을 시장에 맞서 조정하지 않고 억누르는 정책은 국민들께 더 큰 부담을 드린다"며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는 포퓰리즘 정책에 다름 아니다"라고 했다. 인기영합주의라는 강한 표현으로 문재인 정부를 겨냥할 때는 결기마저 느껴졌다. 공공요금 인상의 키를 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2021년에 (가스 요금이) 300% 이상 국제 가격이 올랐는데 요금은 한 번도 조정을 못 했다"며 말을 보탰다. 이들은 요금 인상으로 부담이 커진 국민들을 돕자며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자는 야당의 요구도 그럴 수 없다며 맞섰다.
그러던 와중에 윤 대통령이 에너지 요금 인상 폭과 속도 조절을 들고나왔으니 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당장 주무부처 산업통상자원부 이창양 장관이 20일 서둘러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원래 계획했던 2분기(4~6월) 요금 인상은 없는 것이냐는 질문에 "동결은 적절치 않다"며 인상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고 못박았다. 그런데 이 장관은 대통령의 속도 조절에는 동의한다고 했다.
이쯤 되면 배가 산으로 간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난방비를 포함해 물가 정책의 핵심 요소 중 하나는 예측 가능성인데 현 정부가 에너지 요금을 올리는 건지, 언제 얼마쯤 인상하는지 헷갈린다. 게다가 산업부 장관의 말대로 되려면 기재부 등 관련 부처와 논의를 거쳐야 하니 앞날도 불투명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난방비 지원 대책도 땜질식 처방만 되풀이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난방비 지원 대상을 중산층까지 넓히라고 했지만 국무총리나 장관들은 하나같이 안 된다고 손사래를 친다. 게다가 가스요금 올리겠다는 이유가 9조 원까지 늘어난 가스공사의 미수금 때문이라면서 정작 난방비 지원 대책에 드는 비용은 정부 예산이 아니라 가스공사 비용 중 수천억 원을 부담하게 했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다.
"에너지 원가 연동제 같은 중장기적 정책 이슈는 다루지도 못한 채 곳곳에 무색(無色)해지는 사람만 늘고 있다"는 한 에너지 업계 관계자의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무색에는 ①본래의 특색을 드러내지 못하고 보잘것없다는 뜻과 ②겸연쩍고 부끄럽다는 뜻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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