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는 암탉이 울어야 집안·나라가 흥한다

입력
2023.02.21 22:00
수정
2023.02.22 09:52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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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성차별적 속담을 흔히 듣고 살아왔다. 여성이 정치 무대에서 큰소리를 내면서 국가가 망한다는 의미로도 귀결됐다. 그러나 독일의 메르켈 총리와 북유럽 여러 국가 지도자들은 우뚝 선 여성들이다. 정당정치에서도 여성 비하적 속담이 현실성이 없음을 방증하는 사례가 있다. 바로 독일 녹색당(Die Grüne)이다.

독일 녹색당은 1970년대 서독 환경운동과 신사회운동(평화·인권 등), 여성운동 등에서 부상했고 1980년 1월 13일 카를스루에에서 창당되었다. 독일 통일(1990) 이전인 1989년 민주화와 평화운동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동독의 민권운동 단체들은 1990년 '연합(Bündnis) 90'을 결성했다. 이들은 서독 녹색당과 1993년 통합하여 '연합 90/녹색당'을 형성했다. 그 이전에 이미 동독 생태운동을 대표하는 녹색당은 동독 녹색동맹(die Grüne Liga)과 통합했고, 이들은 이미 1990년 12월에 서독 녹색당과 합병해 전 독일 정당을 출범시켰다.

독일 연방의회 및 주의회 선거에서는 개인이 두 개의 표를 갖는다. 첫 표는 지역구 후보에게, 두 번째 표는 정당에 준다. 직선과 정당명부제를 혼합한 선거제도이다. 녹색당은 출발부터 정당명부제에 여성 할당을 50%로 규정했고 이는 지금까지 시행되고 있다. 지역구 직선에서 후보자가 선출되지 않으면 정당명부제에서 얻은 표만큼 등록된 후보들이 의원이 되는 것이다.

독일 특성상 신당이나 조그마한 당의 후보는 직선에서 선출되기가 어렵다. 연합 90/녹색당은 창당 이후 연방의회 선거에서 2002년 처음으로 직선에서 1명을 배출시켰고, 그 후 4년마다 실시되는 연방의회 선거에서 매번 1명을 배출했다. 처음으로 연방 의회 선거에서 2012년에는 16명이 직선에서 당선되었다. 2012년 선거까지 직선 1명과 정당명부제의 후보들이 의원으로 연방 의회에 입성했다. 연방의회 선거에서 연합 90/녹색당은 2017년 정당명부제(두 번째 표)에서 8.9%를 달성하여 전체 6위에 올랐지만 2021년에는 14.8%를 획득하여 3위로 올랐다. 이들은 다른 당과는 달리 정당명부제를 1번은 여성, 2번을 남성으로 구성했다. 그래서 오랫동안 의원 50% 이상이 여성들이었다.

주 차원으로 녹색당은 1985년 헤센주에서 최초의 '적(사민당)/녹(녹색당)' 연합을 결성했으며, 이는 다른 수많은 주정부 구성의 참여와 연방정부 참여로도 이어졌다. 당초 연방 차원에서 연합 90/녹색당은 기민당/기사당과의 연합을 꺼렸으나 2008년부터는 기민당과도 연정을 개시했다.

2017년 이후부터는 사민당과 연합정권을 꾸리고 있다. 사민당은 2017년 20.5%, 2021년 25.7%를 획득하여 1당 지위에 올랐는데, 2021년 선거 후 사민당은 연합 90/녹색당 및 자민당과 연정을 구성했다. 숄츠(Scholz) 연방 총리(사민당)는 8명의 여성 장관과 8명의 남성 장관을 임명했는데 16명 장관 중에 녹색당 소속이 5명이며, 이 중 3명이 여성이다. 국회의 국무위원(parliamentatarische Staatssekretaere) 차원에서도 여성이 19명, 남성이 18명이다. 여성들의 높은 정치적 참여는 주정부 구성에서도 기대할 수 있다. 여기서도 녹색당은 눈부신 발전을 이끌고 있다.

2023년 2월 주 차원에서 치러진 제19대 베를린 하원의원 재선에서도 연합 90/녹색당은 사민당과 거의 비슷하게 득표했다. 기민당 28.2%, 사민당 18.4%, 연합 90/녹색당이 13.9%이다. 이 선거를 이끈 녹색당 여성은 야라쉬(Bettina Jarasch)이다. 2024년 4월 총선을 앞둔 한국이나 1955년 체제를 고수하는 전근대적 일본 그리고 공산당 일당의 중국에서 독일처럼 여성 정치지도자 비율이 높은 정당은 언제쯤 출현할 수 있을까?


김해순 유라시아평화통합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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