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투자 세제지원책 국회서 막혀
사활 걸린 글로벌 경쟁서 낮잠 자는 격
‘이재명 대치’ 속 여야 서로 ‘네 탓’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을 두고 여야의 신경전이 불을 뿜고 있다. 여당은 야당의 ‘이재명 방탄’을 비난하고, 야당은 ‘검찰독재’라며 정권과 검찰을 상대로 전면전까지 벌일 기세다. 하지만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정치가 온통 ‘이재명 정국’에 휩쓸려 버리고 만 지금의 상황이 결코 바람직하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정치꾼’들에겐 이재명 문제에 사활이 걸렸는지 모르지만, 그게 무슨 이순신 장군을 숙청하는 것도 아닌 바에야 국민 다수의 삶이나 나라의 흥망을 좌우할 정도의 문제는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재명 정국에 얽혀 정작 중요한 나랏일이 끝없이 뒤엉키고 있어 개탄스럽다. 결국 여야 대치로 국회에서 발목이 잡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만 해도 그렇다.
이번 조특법 개정안은 반도체 등 국가전략산업 투자활성화를 위해 해당 투자 등에 세액공제 지원을 해주는 게 핵심이다. 지난해 12월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대기업 기준 현행 6%인 세액공제폭을 8%로 늘리는 등의 1차 개정안이 통과됐다. 재석 262명 가운데 찬성 225명, 반대 12명, 기권 25명으로 가결됐으니, 무난히 처리된 셈이다.
하지만 세액공제폭이 주요 반도체 경쟁국에 비해 너무 작다는 반발이 재계로부터 터져 나왔다. 자국에 반도체공장을 짓는 기업에 설비투자비용의 25%를 세액공제해주기로 한 미국 ‘반도체법’, 반도체 등 첨단 기업의 연구개발 비용 25%를 세액공제해주고 첨단 설비투자 비용의 5%도 별도 공제해주는 ‘대만 반도체법’ 통과 사례 등이 거론됐다.
그러자 윤석열 대통령은 부랴부랴 정부에 세제지원폭을 경쟁국 수준에 맞춰 조특법 개정안을 새로 낼 것을 지시했고, 기재부는 세액공제율을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8%에서 15%로, 중소기업은 16%에서 25%로 올리는 2차 조특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문제는 안 그래도 이재명 정국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2차 조특법 개정안 논의가 제대로 이뤄질 리 없다는 것이다. 당장 정부부터 뻘쭘해졌다. 애초에 여야가 제시한 세액공제폭은 대기업 기준 1차 정부안 8%를 훨씬 웃도는 각각 20%, 10%였다. 그걸 기재부가 재정 상황을 들어 거부하면서 8% 안을 강행했던 것인데, 불과 2개월 만에 입장을 180도 번복하려다 보니 국회 설득 논리가 궁박해질 수밖에 없게 됐다.
여당 역시 아무리 윤 대통령이 나섰다고 해도, 애초에 정부 입장에 맞춰 8%(대기업 기준)로 처리했던 걸 졸지에 15%로 늘리자고 나서자니, 당이 청와대 장단에 맞춰 춤추게 되는 꼴이 되게 됐다. ‘이재명 공세’에 몰두한 채, 정부가 해결하라는 식으로 사실상 팔짱 낀 채 한발 물러선 배경이다.
이런 상황에 야당이 진지한 논의에 나설 리는 만무하다. 안 그래도 정권을 벼르고 있는 민주당은 “세액공제폭이 지나치게 크다. 왜 2개월 만에 15%까지 공제폭을 늘려야 하는지 충분한 설명이 없다”는 식으로 2차 개정안을 사실상 일축하고 있다. 와중에 이재명 대표는 “재벌, 초부자들에게는 수십조 원에 이르는 감세를 해주고 있다”며 예의 ‘재벌특혜론’을 재차 부각시키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요즘 곤혹스러운 빛으로 연일 국회에 2차 조특법 개정안을 처리해 달라고 읍소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2월 국회 처리는 물 건너갔고, 3월 국회도 이재명 정국 대치로 장담하기 어려운 상항이다. 일찍이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우리 정치를 ‘4류’로 칭한 바 있지만, 국운을 가를지도 모를 시급한 입법 현안에 고작 ‘재벌특혜’라는 낡은 구호만 떠다니고 있다. 어느 한쪽의 책임이 아닌, 여ㆍ야ㆍ정 모두의 ‘못난 정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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