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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 걸려면 음주 측정부터" 오비맥주가 음주운전에 '잠금장치' 하고 나섰다

입력
2023.02.23 04:4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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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 뿌리 뽑기 위해 '시동 잠금장치' 만들어
시범사업 결과 연구자료 제공…정책 마련에 도움

편집자주

세계 모든 기업에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는 어느덧 피할 수 없는 필수 덕목이 됐습니다. 한국일보가 후원하는 대한민국 대표 클린리더스 클럽 기업들의 다양한 ESG 활동을 심도 있게 소개합니다.

오비맥주는 지난해 6월 경기 이천시 공장에서 음주운전 방지 장치 시범사업을 시작하며 이 장치를 설치한 트럭 앞에서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유도준 센텍코리아 대표, 이주민 도로교통공단 이사장, 박영길 화물차주(오비맥주 지부장), 배하준 오비맥주 대표, 윤영채 한익스프레스 상무. 오비맥주 제공

오비맥주는 지난해 6월 경기 이천시 공장에서 음주운전 방지 장치 시범사업을 시작하며 이 장치를 설치한 트럭 앞에서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유도준 센텍코리아 대표, 이주민 도로교통공단 이사장, 박영길 화물차주(오비맥주 지부장), 배하준 오비맥주 대표, 윤영채 한익스프레스 상무. 오비맥주 제공


최근 5년(2017~2021년)간 음주운전 재범률은 44%. 기간과 대상을 좁혀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2019~2021년 두 번 이상 적발된 상습범 열 명 중 일곱 명은 10년 이내에 같은 전과가 있다는 게 경찰청 통계다.

술의 속성처럼, 음주운전에도 '중독성'이 있다고 보는 데는 이런 수치가 근거가 된다. 미국이나 스웨덴에서는 상습범의 차량에 아예 특별한 장치를 해둔다. 시동을 걸기 전 먼저 혈중 알코올 농도부터 측정하고 운전자가 취하지 않은 상태인지 확인하도록 한 것이다. 알코올이 감지되면 시동이 아예 걸리지 않는다.

이런 제도는 실제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도로교통공단의 '음주운전 방지 장치 도입 방안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이 장치는 미국 메릴랜드주에서 64%, 일리노이주에서 81%, 캐나다 앨버타주에서 89%, 스웨덴에서는 95%나 재범률을 줄인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 기업 중 이 연구 결과에 주목한 곳은 다름 아닌 오비맥주다. 주류회사가 '건전하게 술 마시는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술을 마신 사람은 운전 자체를 할 수 없도록 사전에 차단하는 실험에 나선 것이다. 주류를 파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고객이 술을 마신 뒤 운전을 해 화(禍)를 부르지 않도록 판매 이후에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취지다.



입김 아니면 '회피 시도'로 감지… 편법 차단

지난해 9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오비맥주 본사 앞에서 '음주운전 방지 장치'를 설치한 이 회사 임직원들이 기념촬영하는 모습. 오비맥주 제공

지난해 9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오비맥주 본사 앞에서 '음주운전 방지 장치'를 설치한 이 회사 임직원들이 기념촬영하는 모습. 오비맥주 제공



지난해 6월 경기 이천시 공장에서 도로교통공단과 음주측정기 제조업체 센텍코리아, 이 회사 상품을 운송하는 화물차 파트너사 한익스프레스와 함께 '음주운전 방지 장치 시범사업'을 시작한 게 그 첫걸음이다. 먼저 전국으로 맥주를 실어 나르는 화물차주 20명을 대상으로 3개월 동안 이 장치를 차량에 달게 했다. 같은 해 9월에는 본사 임직원 20명도 자신의 차에 설치하고 두 달을 보냈다.

이들에게 효과를 물었더니 거의 모든 참가자가 "음주운전 예방과 술 마시는 습관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고 한다. "아침에 숙취가 느껴지는 날에는 술이 깬 것 같아도 측정기에선 알코올이 감지돼 운전을 할 수 없었다"며 "술을 마실 때 다음 날 운전을 생각하게 돼 과음을 방지하는 효과도 있었다"는 현실적 경험담도 나왔다.

취지는 좋으나 으레 의문이 뒤따른다. 시동을 걸기 위해 '꼼수'를 부리면 별 수 없지 않을까. 예컨대 입김 대신 풍선 바람이나 헤어드라이기를 갖다 대는 식으로 말이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센텍코리아가 만든 이 장치는 온도와 압력 센서를 이용해 사람의 입김인지 아닌지 정확히 알아차린다"며 "다른 바람을 불면 회피 시도를 감지편법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효과적 정책을 만들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지난해 사업 운영 결과를 정부 기관에 연구 자료로 제출했다.



주류회사가 꿈꾸는 '똑똑하게 술 마시기'

지난해 8월 대구 공군 제11전투비행단에서 공군 장병들이 음주운전 시뮬레이터에 탑승해 음주운전의 위험성을 체험하고 있다. 오비맥주 제공

지난해 8월 대구 공군 제11전투비행단에서 공군 장병들이 음주운전 시뮬레이터에 탑승해 음주운전의 위험성을 체험하고 있다. 오비맥주 제공



오비맥주가 꿈꾸는 건전한 음주 문화와 이를 위한 투자 계획은 뚜렷하다. ①알코올 오·남용률 10% 이상 떨어뜨리기 ②건전 음주 프로그램에 10억 달러(약 1조2,000억 원) 이상 투자하기 ③무알코올·저알코올 상품 확대하기 ④알코올과 건강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2015년 글로벌 본사인 AB인베브와 함께 10년 뒤인 2025년까지 달성하기로 한 '글로벌 스마트 드링킹 목표'의 세부 내용이다.

지난해 여름 대구에 위치한 공군 제11전투비행단에선 군인들에게 가상으로 음주운전 체험기에 탑승하도록 했다. 마치 술을 마신 듯 앞이 뿌옇고 초점이 흐릿한 운전대를 잡아본 장교와 부사관, 병사들은 이날 '음주운전 근절 서약'도 했다.

공단과 함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체험 행사도 열었다. 마치 술을 마신 것처럼 착시를 느끼는 고글을 쓰고 걸어보면서 술에 취했을 때 하는 행동의 위험성을 체험해보는 것이다. 전시를 통해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사슬에 묶여 움직일 수 없는 자동차와 전동 킥보드에는 '단 한 잔이라도 마셨다면 차와 킥보드를 운전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담았다.



건전 음주 프로그램에 2025년까지 1조2,000억 원 투자

오비맥주가 시범운영한 음주운전 방지 장치. 오비맥주 제공

오비맥주가 시범운영한 음주운전 방지 장치. 오비맥주 제공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뒤 해방감에 젖은 고3 수험생들의 일탈을 방지하기 위해 지난해 11월에는 '귀하 신분' 캠페인도 펼쳤다. 이 캠페인은 주류 판매처에 구매자의 신분증 확인을 독려해 청소년이 술을 사지 못하게 방지하는 운동으로, '귀한 사람'과 '귀하의 신분'을 확인한다는 두 가지 의미를 중의적으로 표현했다. 또 '음주운전, 실수가 아니라 범죄입니다'라는 슬로건은 올바른 사회적 인식이 자리 잡도록 하려는 이 회사의 연말 캠페인이었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주류업계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선도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음주운전과 미성년 음주, 폭음 등을 줄이기 위한 스마트 드링킹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며 "앞으로 소비자 스스로 올바른 음주 습관을 들일 수 있는 사회적 규범과 건전한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오비맥주 로고

오비맥주 로고


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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