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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없는 라이더의 허무했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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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협박하는 겁니까?' 잔뜩 벼려진 말이 무섭기보다는 서글펐다. 지역배달대행사 사장에게 단체교섭을 거부하면 부당노동행위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설명을 한 뒤 들은 말이다. 계약서조차 쓰지 않는 사업장이다. 단체교섭을 알 리 없었다. 지난해 가을 배달플랫폼 바로고에서 앱 접속장애가 벌어졌는데 바로고는 무책임하게 배달대행사에 보상금을 주고, 사장이 알아서 보상금을 배분하라 했다. 피해를 본 건 라이더들인데, 보상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알 수 없었다. 조합원들은 이를 바로잡기 위해 배달대행사에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사장 기분이 상하지 않게 조심스레 설명했지만 말은 통하지 않았고, 결국 노동위원회에 시정명령을 신청했다.
노동위원회 심문회의에선 날선 말이 오고 간다. 사장은 라이더와 자신은 아무 관계가 없고 음식점과 라이더를 중개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진심은 아니었을 거다. 라이더가 없으면 음식점 배달을 대신해 주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없다. 사장은 라이더들을 알뜰살뜰히 챙겼을 거다. 문제가 있으면 술과 밥을 먹으며 인간적으로 해결할 일이지, 노조와 협상할 일은 아니라고 믿었을 테다. 이렇게 노동자의 대부분은 기업과 일대일 근로계약을 맺거나 위탁계약을 맺는다. 노동자와 기업이 동등한 힘을 가진다면 개별적 계약으로도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다. 그러나 사장님과 회의실에서 일대일 상태로 임금과 노동조건을 협상한다고 상상해 보라. 그래서 국가는 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보장하여, 기업과 노동자 집단이 계약을 맺을 수 있게 하여 노사 간 힘의 균형을 맞추려고 했다.
현실에선 노동자가 노동3권을 행사하기 쉽지 않다. 노동위에서는 배달대행 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행사할 자격이 있는지를 계속 물었다. 일하려면 사장의 허락을 받아 플랫폼에 등록해야 하고, 사장이 확보한 음식점 배달을 수행하며 사장이 정한 배달료를 받고, 산재·고용보험료를 사장이 절반 부담하고, 배달노동자가 타인에게 배달을 시키거나, 음식점과 별도의 계약을 맺을 수 없다는 점을 일일이 입증해야 했다. 한 시간만 해 보면 옆에 앉은 사장이 내 사장이라는 걸 알 수 있지만, 법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결과는 허무했다. 교섭요구 사실 공고를 하겠다는 합의서를 쓰고 심문회의는 끝났다.
노동위 출석을 위해 조합원들은 하루 일당을 날렸고, 노조는 서류를 제출하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사장은 돈을 주고 법률 자문을 받는다. 노동위원회도 교섭 공고 하나를 위해 시간을 써야 했다. 하루 심문회의에만 수백만 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사실 특고 노동자들의 노조 할 권리는 법원 판단과 노동위 판정으로 논쟁의 여지가 없다. 더구나 한국은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 등을 보장하는 ILO 87호, 98호 협약을 비준했다. 노조에 대한 기본 상식만 있었다면 밟지 않아도 될 절차였다.
최근 정권과 보수언론은 기득권화된 노조를 개혁한다는 명분으로 노조 혐오를 조장하고 있다. 혐오는 아래로 흐른다. 노조를 싫어하는 5인 미만 사업장, 비정규직, 특고 사업장의 사장님들은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해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노조원에게 전화해 고성을 지르고 탈퇴를 종용하는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대통령이 노조를 향해 고함칠수록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권리는 움츠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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