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감성을 전하는 글꼴

입력
2023.02.18 04:30
수정
2023.02.18 18:54
22면
튀르키예 안타키아에 설치된 한국긴급구호대 숙영지 텐트에 한 튀르키예 시민이 한국어로 "고마워 형"이라고 쓴 문구가 남아있다. 연합뉴스

튀르키예 안타키아에 설치된 한국긴급구호대 숙영지 텐트에 한 튀르키예 시민이 한국어로 "고마워 형"이라고 쓴 문구가 남아있다. 연합뉴스

'대한민국 긴급구호대'의 텐트에 한 튀르키예인이 남긴 인사가 화제이다. 1차 활동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한 지역민이 구호대를 찾아와서 텐트에다가 '고마워 형'이라고 쓴 것이다. 처음에는 한국말 좀 하는 현지인인가 보다 싶었는데, 보도사진을 보니 글씨체가 디지털 기기에서 정성스레 옮겨 쓴 모양이었다. 자로 잰 듯 반듯반듯한 자음과 모음, 'ㅎ'의 첫 두 획이 나란히 누워 있는 것은 결정적 증거였다. 문득 영국 축구장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현지인 관중이 '손흥민, 티셔츠를 주시겠어요?'라고 쓴 종이를 들고 있었는데, 그때의 'ㅎ, ㅈ, ㅊ, ㅆ'도 번역기가 보여준 디지털 글씨였기 때문이다. 한국말을 모르지만 진심을 전하고픈 이들이 번역기를 돌려 만나는 한글, 이것이 그들의 인생 첫 한글이다.

한글을 가르치다 보면 'ㅈ, ㅊ, ㅎ'에 대한 질문이 많다. 책이나 컴퓨터의 인쇄체와, 선생님이 칠판에 써 주는 손글씨가 다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소리가 같은 글자가 모양이 달라도 되는지, 어느 것이 더 표준형인지 등을 묻곤 한다. 오늘날 쓰기란 종이에 쓰는 것뿐만 아니라 기기로 치는 행위도 포함한다. 한때 한글은 획일적이고 딱딱하다는 평을 받았다. 책에는 명조체만 나오고, 옥외 간판에는 고딕체로만 적힌 탓이다. 그런데 디지털 화면에 예쁜 서체를 써 볼까 싶다가도 글씨체 저작권에 걸릴까 봐 여간 불안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한글은 국경을 넘어다니는 온라인 환경에서 여전히 교복을 입고 있는 셈이다.

종이와 화면이 나란히 쓰이는 이때, 누구나 쓸 수 있는 다양한 한글 서체가 있어야 한다. 네이버는 2022년 한글날을 기념하여 새로운 '나눔글꼴'을 공개하고 무료로 배포했는데, 메시지 주목도는 높이고 필기감이 주는 친근함은 살리려 했다고 한다. 같은 때, 창립 10주년 기념으로 세종학당재단은 '세종학당체'를 무료로 배포하며, 교육용으로 적절하면서도 따뜻한 손글씨 느낌을 살리려 했다는 취지를 밝혔다. 이보다 앞서 2020년에는 '칠곡할매글꼴'이 나왔다. 성인문해교실에 와서 처음으로 글을 깨우친 할머니들의 벅참과, 70년 만에 세상에 나를 전하는 설렘이 한 획 한 획 꼭꼭 채워져 있지 않은가? 한글은 더 이상 메시지만 전달하지 않는다. 튀르키예인이 쓴 서툰 네 글자처럼 한글은 한국에 대한 인상과 감성을 담고 오늘도 랜선을 타고 흐른다.

이미향 영남대 글로벌교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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