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일본 전범기업의 선택적 사죄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과거 노동자들에 대한 역사적 책임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일본 미쓰비시 머티리얼즈(구 미쓰비시광업)는 2차대전 강제 징용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사죄하며, 배상금으로 피해자나 가족에게 1인당 1만5,000달러를 지급했다. 지난 2016년의 장면으로, 대상은 중국 강제 징용 피해자다. 이런 미쓰비시가 현재 한국 법원에서 진행 중인 강제 징용 손해 배상 소송에 대해서는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 강제 징용 노동자들에게 사과 배상한 기업은 미쓰비시뿐이 아니다. 일본 도쿄고등재판소의 중국인 피해자에 대한 화해 권고에 따라 2000년 가지마 건설이 희생자 위령비 건립 비용 5억 엔을 중국 홍십자회에 기탁한 것이 시작이다. 이어 2007년 일 최고재판소가 화해를 권고하자, 니시마츠 건설은 소송 당사자도 아닌 피해자 전원에게 배상하는 적극성을 보이기도 했다. 왜 일본 기업은 중국 피해자에게만 고개를 숙이는 걸까.
□ 일본이 한국의 강제 징용에 대한 사과와 배상 요구를 거부할 때마다 꺼내 드는 카드가 “1965년 한일협정으로 민간 청구권이 해결됐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중국도 배상 청구권을 포기했다. 결국 일본 기업이 중국 피해자에게만 사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상대 정부의 태도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협정으로 포기한 것은 정부 청구권이며, 민간인의 청구권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고, 중국인 피해자가 일본 법원 손배소에서 패소할 때마다 강한 비판 성명을 내놓았다.
□ 2018년 한국 대법원이 “미쓰비시 등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한 것을 계기로 한국 정부도 민간 청구권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후 한국 법원 판결이 엉뚱한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서울중앙지법이 2021년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배소를 “개인 청구권이 소멸되지는 않았으나, 소송으로 행사할 수는 없다”는 이해하기 힘든 논리로 각하했다. 지난 14일 비슷한 소송에서도 “배상 청구권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판결이 나왔다. 한일 관계 개선을 서두르는 한국 정부로서는 반가운 판결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 판결로 배상 책임을 모면한 기업이 바로 니시마츠 건설이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