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동물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수의사이자 동물병원 그룹을 이끄는 경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동물과 사람의 더 나은 공존을 위해 지금 필요한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개는 오랫동안 반려동물의 상징과도 같았습니다. 1948년 문교부에서 초등학교 1학년의 국어 교육을 위해 편찬한 교과서의 이름도 '바둑이와 철수'였죠. 이번 달 발표된 농림축산식품부의 '2022년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조사'에서 나온 반려동물 양육 가구 비율을 봐도 개(75.6%)를 반려하는 비율이 고양이(27.7%)보다 2배 이상 높습니다.
그런데 최근 고양이의 추격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2010년에 치러진 같은 조사에서는 개를 반려하는 비율이 고양이보다 7배나 높았습니다. 유로모니터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펫푸드 시장 규모는 약 1조5,000억 원입니다. 그중 반려견의 펫푸드 시장 규모는 8,000억 원, 반려묘 시장 규모가 6,000억 원을 차지합니다. 놀라운 건 2025년이 되면 반려묘 사료 시장 규모가 반려견 시장 규모를 역전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시선을 SNS로 돌려보면 상황은 훨씬 극적입니다. 2,871만(개) vs. 2,959만(고양이). 인스타그램에 강아지와 고양이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게시물의 개수입니다. 고양이 게시물 숫자가 개보다 80만 개 이상 많습니다. 몇 해 전 유행했던 해시태그인 '나만 없어 고양이'는 고양이 반려 문화의 확산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바야흐로 고양이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겨우 20년 전만 해도 동물병원에서 고양이 진료는 선택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이젠 고양이가 빠진 동물병원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고등학생이 고양이가 좋다는 이유로 수의대에 진학하고, 고양이만 진료하는 고양이 전문병원도 자주 보이며, 고양이용품만을 다루는 박람회도 엄청난 인기를 끕니다.
사실 고양이는 인간에게 친절하기만 한 동물은 아닙니다. 가축화의 역사가 짧은 탓에 개에 비해 대체로 인간에게 헌신적이지도 대단히 애교가 많지도 않죠. 반려견 보호자라면 누구나 훈장처럼 가진 에피소드, 가령 새벽녘에 지쳐서 집에 귀가했을 때 혼자서 달려 나와 헥헥대며 반겨줬다는 이야기를 반려묘 보호자에게 듣기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어쩌다 우리는 고양이의 시대에 살게 된 걸까요?
고양이가 가진 귀엽고 신비한 외적인 매력만으로 지금의 현상을 완전히 설명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고양이의 겉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사랑스러웠으니까요. 혹자는 고양이의 성격이 자기주장이 강하고 호불호가 명확한 MZ세대와 통하는 면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특정 세대의 성격을 단순히 재단하기도 힘들뿐더러 지금의 고양이 인기는 보호자의 성격 범주를 뛰어넘은 광풍처럼 보입니다.
제가 보는 고양이, 사실상 고양이 반려 인기의 핵심은 1인 가구의 확산과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있습니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인 탓에 개와 달리 매일 산책하러 나가지 않아도 되고, 배변도 알아서 가립니다. 혼자 모든 돌봄을 처리해야 하는 1인 가구 입장에선 개보다 고양이를 반려하는 편이 부담이 덜한 게 사실입니다. 게다가 크게 짖지도 않으니 소음에 민감한 공동주택 생활에도 안성맞춤이죠. '나만 없어 고양이' 사회는 '나만 있는' 사회에서 기인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고양이의 인기는 계속 이어질까요?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체 가구의 33.4%가 1인 가구이고, 2050년이 되면 무려 39.6%에 달할 것이라고 합니다. 2050년에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가 다시 쓰인다면 첫 장의 제목은 '나비와 철수'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 구조의 변화는 반려동물 양육 형태의 변화를 야기합니다. 또한, 반려동물 양육으로 인해 개인의 삶의 패턴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는, 동물과 사람의 공존을 단지 'One health'라는 공중보건의 개념을 넘어, 사람의 삶과 반려동물의 삶을 하나의 사회로서 이해해야 하는 'one life' 개념을 새롭게 세워야 할 시기가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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