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버스 터미널... 지방소멸의 그늘

불 꺼진 버스 터미널... 지방소멸의 그늘

입력
2023.02.18 10:00
수정
2023.02.18 10:08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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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시외버스 수송인원 10년 전 대비 최대 30% 넘게 줄어
최근 3년간 폐업하거나 통합된 버스 터미널 18곳
사라지는 버스 터미널은 지방 소멸의 결과이자 촉진 요인

털모자를 쓴 지역 주민들이 14일 전북 김제시 원평공용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굳게 닫힌 매표소 셔터와 전등 하나 켜지지 않은 터미널의 황폐한 모습은 소멸하는 지방의 모습과 일맥상통한다. 지역이 쇠퇴해 교통도 쇠퇴하고, 교통이 쇠퇴해 지역이 쇠퇴하는 악순환인 것이다.


언젠가는 표를 끊고 안내 방송을 했을 매표소 근무자가 있어야할 자리에는 이제 먼지만 쌓여 있다.


지역 주민 박용철(86)씨가 14일 김제 시내에서 병원 진료를 보기 위해 빛이 바랜 대합실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저 봐, 저렇게 허리가 구부정하고 다리도 불편한데 어디 차 끌고 다니겠어? 여기 오는 사람들 다 그래.”

마을에서 나름 ‘젊은 피’에 속하는 65세 노인이 걸음걸이가 유난히 '느릿느릿한' 노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두 노인은 이날 전등 하나 켜지지 않은 터미널 대합실에 앉아 1시간 가까이 버스를 기다렸다.

지난 14일 전북 김제시 금산면의 원평버스터미널. 지역 노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교통 허브'이지만 터미널은 황폐했다. 음식점과 잡화상 등은 문을 닫은 지 오래고 매표소는 셔터가 굳게 내려져 있다. 어둑어둑한 대합실 구석엔 먼지 쌓인 소파와 폐업 점포에서 버리고 간 주방시설이 나뒹굴었다.

민간이 운영하던 터미널은 2년 전 폐업했다. 그 후 김제시에서 부지만 임차해 간신히 명맥만 유지해 오고 있다. 버스가 올 때까지 잠시 앉아 쉬는 쉼터 역할만 간신히 하는 정도다. 이렇게라도 터미널을 유지하는 이유는 버스가 이곳에서 유일한 대중교통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날 기자가 만난 첫 승객 박용철(86)씨는 “여기는 (이동수단이) 버스 아니면 택시인데 (택시 요금은) 버스보다 10배는 비싸지 않냐”는 말로 버스를 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다리가 불편한 박씨는 정기적으로 병원 진료를 받아야 한다. 자가용이 있어도 직접 운전대를 잡는 것은 '언감생심'. 이날 터미널에서 만난 승객들은 하나같이 자가용이 없거나 있어도 운전을 못하는 고령의 노인들이었다.


박씨가 버스에 탑승하기 위해 대합실을 나서 걷고 있다. 다리가 불편해서 걸을 때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 있다.


14일 전북 임실군 오수공영버스정류장에서 등이 굽은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정류장 벤치를 향해 걷고 있다. 많은 지방 소도시 버스터미널의 주 이용객이 거동이 힘든 노인들이다.

원평터미널처럼 폐업 후 최소한의 기능만 유지하고 있거나 통폐합된 버스 터미널은 지난 3년간 18곳에 달했다. 코로나19로 여객 수요가 반토막 난 것이 결정타였지만 팬데믹 수년 전부터 지방 교통은 꾸준히 쇠락하고 있었다.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가 지난해 발간한 2021 버스통계편람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19년 기준 일부를 제외한 지방의 시외버스 수송인원은 10년 전인 2009년 대비 20%포인트 넘게 줄었다. 강원(22%), 전북(24%), 전남(27%), 경북(31%) 순으로 많이 줄었고, 세종시 출범으로 도리어 수송인원이 증가한 충남을 제외하면 경남(8%)과 충북(12%)의 감소폭이 가장 적었다. 같은 기간 경기 시외버스 수송인원 감소율은 4%에 불과했다.


전북 남원시 인월지리산고용터미널을 운영하는 김희순(66)씨가 14일 매표소 안에서 승객을 기다리고 있다. 김씨는 계속되는 경영난으로 인해 지자체에 폐업을 예고한 상태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김씨는 첫 차 출발 전인 오전 7시부터 막차 시간인 오후 9시까지 혼자 근무한다. 매표소 안에 현금을 내는 고객에게 거슬러줄 동전이 정리돼 있다.


수송인원 감소에 따른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운송업체들은 감차를 단행했고, 터미널 사업자들은 시설 관리 비용을 줄여야 했다. 이 같은 조치들이 다시 승객들의 불편으로 이어지면서 지역 교통을 더욱 열악하게 만들고 있다.

이날 전북 남원시 인월지리산공용터미널. 오후 4시께 서류철을 든 남성이 급하게 터미널로 뛰어 들어왔지만 승차권은 구하지 못했다. 원래 오후 8시까지 운행하던 전주행 직행버스가 이미 1시간 전에 막차까지 끝난 탓이다. 터미널 운영자 김희순(66)씨는 “(승객이) 감차 전 시간표를 보고 왔다. 차편이 이리 줄었으니 사람들이 불편해서 버스를 타겠나...”라며 말끝을 흐렸다. 한때 일일 이용객이 수백 명에 달하던 인월터미널은 현재 하루 이용객이 60명 수준에 불과하다. 사람이 없으니 버스 회사의 매출이 줄고, 매출이 줄면 시설과 차량 편성이 열악해지기 마련이다. 열악해진 교통 여건 때문에 이용객이 더 줄어드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주민들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지자체들은 수익성을 잃고 폐업한 버스 터미널을 매입해 직접 운영하거나 위탁계약을 맺는다. 전북 정읍시 신태인공용버스터미널의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준공영제를 본격 도입하는 수도권과 달리 민간 운영이 대세인 지방 버스 체계 특성상 터미널만 공영화한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지방 소멸이 진행될수록 지방 운송업의 수익성은 계속해서 악화될 일만 남았기 때문이다. 문을 닫는 버스 터미널은 지방 소멸을 앞당기는 교통 소멸의 첫 장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14일 전북 김제시 원평공용버스터미널 매표소 안에 승차권 여러 장이 방치돼 있다. 원평터미널은 더 이상 발권 업무를 하지 않기에 이 승차권들은 끝내 주인을 찾지 못할 운명이다.


사실상 창고로 쓰이고 있는 전북 남원시 반선공용터미널에서 옛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현재 이곳에는 상주하는 직원도 늘어선 버스도 없다.


털모자를 쓴 지역 주민들이 14일 전북 김제시 원평공용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굳게 닫힌 매표소 셔터와 전등 하나 켜지지 않은 터미널의 황폐한 모습은 소멸하는 지방의 모습과 일맥상통한다. 지역이 쇠퇴해 교통도 쇠퇴하고, 교통이 쇠퇴해 지역이 쇠퇴하는 악순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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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이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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