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주주 행동주의’는 주주 개인 또는 집단이 보유 지분의 영향력을 적극 행사해 지배구조나 배당정책 등 경영에 적극 개입해 기업 투명성을 제고하고, 주주 이익의 극대화를 꾀하는 걸 표방하는 투자 행위양식을 말한다. 워런 버핏의 스승인 투자가 벤저민 그레이엄은 1920년대에 이미 행동주의에 나서면서 “당장 사업에 필요치 않은 자금을 회사에 남겨 둘지 여부는 주인인 주주가 결정해야지, 경영진이 결정할 일이 아니다”는 말을 남겼다.
▦ 결코 틀린 얘기는 아니다. 대기업 오너 일가가 극소수 지분으로 경영을 전횡하며 회사에 귀속돼야 할 이익을 사적으로 가로챈다거나, 이익 대부분을 사내 유보금으로 남겨 주주 배당을 외면함으로써 주식가치를 훼손하는 행태는 기업경영의 전형적 부조리라 할 만하다. 하지만 국내에선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타이거펀드의 SK텔레콤 투자나, 2006년 미국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 연합의 KT&G 투자 등 주가 부양으로 막대한 단기 차익만 챙긴 뒤 빠지는 ‘먹튀’가 잇따르면서 행동주의에 대한 시각이 곱지만은 않다.
▦ 단기간 주가 급등으로 수많은 소액주주들 역시 차익을 누리게 됨에도 불구하고 행동주의 투자에 부정적 인식이 만만찮은 건 그런 행태가 자칫 기업의 장기·지속성장 기반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일례로 기업 경영진으로선 향후 혁신이나 시설투자 등에 대비해 이익을 사내유보로 저장해두려 하지만, 단기 주가 부양을 노린 행동주의 투자자들은 ‘금달걀 낳는 거위의 배를 당장 가르자’는 식이 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 최근 국내 증시가 행동주의로 새삼 크게 요동치는 상황이다. 굴지의 K팝 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 주가는 지난해 9월 7만 원대 전후에서 15일 12만 원을 돌파할 정도로 급등하며 증시를 달구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인 ‘얼라인파트너스’가 지난해부터 SM 창업자인 이수만 전 총괄PD의 전횡과 사익추구를 바로잡겠다며 나서고, 최근 경영권 분쟁까지 겹친 ‘덕택’이다. 주식 투자자들은 불구경과 치솟는 주가에 연일 환호성이지만, K팝 본산의 경영이 격랑 속에 표류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은 결코 편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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