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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 4만1200명 이상… "100년 내 유럽의 최악 참사"

입력
2023.02.15 19:0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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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인 한 대만… 빌고 또 빌어" 애타는 기도만
이재민 최소 600만명... "2600만명이 도움 기다려"

지난 12일 지진 피해자들을 위해 시리아 킬리에 임시로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에서 한 어린이가 과자를 먹고 있다. 킬리=AP 뉴시스

지난 12일 지진 피해자들을 위해 시리아 킬리에 임시로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에서 한 어린이가 과자를 먹고 있다. 킬리=AP 뉴시스

결국 '최근 100년간 유럽에서 최악의 참사' 기록까지 썼다. 지난 6일(현지시간)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한 지 9일째인 14일,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사망자 수는 4만1,000명마저 넘어섰다. 최종 인명피해 규모는 어느 정도일지 가늠할 수조차 없다.

무너진 건물에 깔린 매몰자 구조도, 기적처럼 구조된 생존자 지원도 더디기만 하다. 잔해 더미 아래서 '살려달라'는 외침을 듣고도 정작 장비 부족 탓에 손을 쓸 수 없는 상황 역시 속출하고 있다.

튀르키예선 '에르도안 대통령' 심판론 확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이날 오전 기준 최소 3만5,418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시리아 정부 통제 지역과 반군 점령 지역에서도 각각 1,414명(시리아 국영 사나통신 보도)과 4,400명(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 발표)이 사망했다. 전체 희생자 수는 최소 4만1,232명에 달한다. 한스 클루게 세계보건기구(WHO) 유럽사무소 국장은 이날 "이번 지진은 지난 100년 동안 유럽에서 발생한 최악의 자연재해"라며 "양국에 걸쳐 2,600만 명이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이번 지진으로 붕괴된 건물은 튀르키예에서만 최소 4,700채다. 이곳에 거주하던 주민들은 무려 21만1,000명에 이른다. 자연재해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높은 '골든타임'(72시간)이 훌쩍 지나버리면서 생존자 수색·구조 작업도 막바지로 향하고 있는 분위기다. 이날도 튀르키예에선 △212시간 만에 77세 여성 구조 △208시간 만에 65세 남성·어린 소녀 구조 등 기적 같은 생환 소식이 이어졌으나, 일부 피해 지역에선 구조 작업을 잇따라 중단하고 있다.

14일 튀르키예 카라만마라슈의 한 남성이 지진으로 무너진 주택 잔해 옆에서 기도하고 있다. 카라만마라슈=로이터 연합뉴스

14일 튀르키예 카라만마라슈의 한 남성이 지진으로 무너진 주택 잔해 옆에서 기도하고 있다. 카라만마라슈=로이터 연합뉴스

생존자 구호·지원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이를 위한 장비나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하타이주 안타키아에 사는 케브세르씨도 붕괴된 아파트 잔해 속에서 두 아들의 희미한 목소리를 들었다며 "주변엔 적어도 건물 12채가 무너져 있었지만, 구조대는 없었다. 콘크리트를 들어 올릴 크레인 한 대만 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그러나 기도는 이뤄지지 않았고, 이곳에서 생존자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병원들도 다수 무너졌다. 예컨대 튀르키예 하타이주 이스켄데룬의 데블렛 하스타네시 병원은 폭삭 내려앉아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상태다. 지금도 환자와 병원 직원, 방문객 등 300여 명이 잔해에 깔려 있다. 당국 구조팀은 지진 9일 만인 이날에야 현장에 도착했다. 환자였던 할머니 시신을 수습한 알리칸 케나르씨는 영국 BBC방송에 "이건 모두 정부 잘못"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재난 대응 실패·무능에 분노한 민심은 이제 '에르도안 정권 심판론'으로도 번지고 있다.

강진 발생 9일째인 14일 튀르키예 하타이의 무너진 건물 옆에서 주민들이 모닥불을 쬐며 실종된 다른 가족들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하타이=AFP 연합뉴스

강진 발생 9일째인 14일 튀르키예 하타이의 무너진 건물 옆에서 주민들이 모닥불을 쬐며 실종된 다른 가족들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하타이=AFP 연합뉴스


"산 사람은 살아야"… 도움 절실

운 좋게 살아남은 이들도 고군분투 중이다. 살을 에는 추위와 잦은 눈·비 때문에 거리로 나앉은 이재민은 약 100만 명. 내전까지 겹친 시리아에선 최대 500만 명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물과 식량, 의약품 등 생활필수품은 태부족하다. 안타키아 주민 아슬리한 카바소글루씨는 공원 길바닥에 놓인 매트리스에 앉아서 잠을 자고, 자원봉사자들이 건네는 음식으로 연명하고 있다.

절망 속에서도 지진 피해자들은 삶의 의지를 놓지 않고 있다. 리자 아타한씨는 "30년간 일군 모든 게 이곳에 있다"며 "재건에 3, 4년이 걸리더라도 나는 내 고향, 안타키아를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에니프 야부즈 디스파르 이스탄불시 사회복지국장은 "역대급 재난은 더 많은 지원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혼자 견딜 수 없다. 제발 우리를 잊지 말아 달라"고 도움을 호소했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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