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던 디지털 노마드로 살고 있습니다

입력
2023.02.15 22: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디지털 노마드란 단어를 처음 접한 건 7년 전이었다. 2016년 첫 스페인 여행 이후 어떻게 하면 연차와 주말을 이어 만든 일주일의 여행으로 그치지 않고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곳에 좀 더 길게 머무르며 생계를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시기에 우연히 책을 통해 세상에는 디지털 장비를 이용하여 원하는 장소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디지털 노마드라 불린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미 스페인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탐색하는 과정에서 한국과는 다른 행정 처리방식과 비자 발급의 제한,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에 의해 낙담하게 된 사례를 수도 없이 접한 후여서 꼭 한곳에 머물러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고 살아갈 곳을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 운명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렇게 살기 위해선 정해진 곳으로 출근하지 않고도 생계유지가 가능한 직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게 우선이었지만 일이야 찾으면 되지 않겠냐는 무모함으로 5개월 뒤에 출발하는 스페인행 표를 예약하고 퇴사와 함께 신혼집을 정리한 뒤 제주로 내려갔다. 조금만 찾으면 어렵지 않게 내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졌던 나는 회사 밖 작디작은 나와 대면하면서 아름다운 제주 바다를 앞에 두고도 두 달 동안 막연함 속에 허우적거리며 좌절하고 꿈꾸기를 반복했다.

이러다 정말 여행만 다녀오고 끝나게 될 것 같아 출국까지 보름 남짓 남은 상황에서 사업자 등록을 하고, 구매대행 온라인 쇼핑몰을 개설했다. 항상 월급쟁이가 제일 좋다며 정년까지 회사에 다닐 거라고 외치던 두 사람이 얼떨결에 사장으로서 모든 일을 직접 하게 됐다. 예상보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한 새로운 일을 시도하면서 다음 목적지를 정하고 숙소와 교통편을 예약하는 일은 녹록지 않았지만 적어도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눈앞에 있었기 때문에 꾸준히 밀고 나갈 수 있었다.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거치는 동안 여행에 대한 능숙함과 체력 배분, 시간 관리같이 업무를 위해 판단하고 행동해야 하는 부분에 대한 내공이 쌓여갔다. 집 대신 사무실을 등에 지고 느리게 여행하는 삶을 달팽이 라이프라 자칭하며 경험담을 공유했더니 사람들이 우리를 디지털 노마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물가가 저렴하고 따뜻한 날씨의 환경을 찾으면서 추운 계절엔 동남아시아로 넘어갔고, 봄여름엔 동유럽으로 날아갔다. 이동비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한 대륙 내에서 나라를 옮겨 다니며 몇 개월씩 체류하는 방식이 우리에겐 더없이 잘 맞았다. 인건비가 저렴한 도시에선 식사부터 빨래까지 타인의 손을 거쳐 해결하며 그 시간만큼 일과 여행에 집중했고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비싼 곳에선 살림에 시간을 써야 하는 만큼 여행에 대한 강도를 줄이면서 균형을 맞춰 나갔다. 반복해서 방문하는 도시가 생겼고, 그곳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수록 더 부담 없이 체류할 수 있었던 것 모두 디지털 노마드로 살기로 결심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많은 고민과 고단함 속에서도 우리가 선택한 방향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은 언제나 큰 원동력이 되어주고 미래를 기대하게 만들어 준다. 여전히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길을 걷고 있지만 말하는 대로, 꿈꾸는 대로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이 마음과 시간이 조금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오늘도 최선을 다해 즐겁게 살아가자 다짐해 본다.


모아람 디지털 크리에이터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