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 한국대사관의 '질문 없는' 간담회

입력
2023.02.16 04:30
25면
구독

'실명 보도' 두고 정재호 대사-특파원단 간 갈등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가 지난해 12월 1일 중국 수도 베이징의 외교부 청사에 마련된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 조문소를 방문해 전날 사망한 장 전 주석에 대한 애도의 뜻을 방명록에 적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가 지난해 12월 1일 중국 수도 베이징의 외교부 청사에 마련된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 조문소를 방문해 전날 사망한 장 전 주석에 대한 애도의 뜻을 방명록에 적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중국 베이징의 한국대사관 이야기다. 지난 6일 이곳에서 열린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와 한국 언론 특파원단 간 간담회에서는 기자들의 질문이 허락되지 않았다. 사흘 전 이메일을 통해 접수한 질문에 준비된 답변만을 내놓은 뒤 "오늘 브리핑은 여기까지"라는 멘트로 자리가 마무리됐다. 주말 사이 발생한 '중국 정찰풍선 격추 사건' 같은 급박한 이슈는 다뤄지지도 못한 이날 간담회는 20분 만에 종료됐다.

이런 촌극은 정 대사와 특파원들 간의 갈등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9월 정 대사 부임 뒤 첫 간담회에서 그는 "대사 공개 일정을 공유해 달라"는 특파원들의 요구에 "대사를 처음 해 봐서 잘 몰랐다"는 다소 성의 없는 답변을 냈다.

간담회 관례를 따라 '대사관 고위 관계자' 발언으로 표현하기로 했던 이 대목은 일부 매체에 정 대사 실명과 함께 보도됐다. 대사관은 '재발 방지' 조치를 요구했으나 특파원단은 '숙고' 끝에 이를 수용하지 않았고, 이에 정 대사는 더 이상 현장 질문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익명성이 보장되기 전까진 언론 소통에도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익명을 전제로 했던 자신의 발언이 실명으로 보도된 데 대한 정 대사의 황망함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국민의 알권리' 충족을 존재 근간으로 삼는 언론으로선 정보 전달이 먼저지만, 취재원과의 약속 또한 가볍게 여길 순 없다. 발언 하나하나가 주재국에 '관찰당하는' 외교관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정 대사의 재발 방지 요구도 무리는 아니다"라는 특파원단 내부 의견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언론과의 불협화음이 국민 알권리를 제한할 근거가 되긴 어려워 보인다. 한중 관계 개선과 교민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고위 관리인 정 대사는 자신을 포함한 대사관의 활동을 설명할 충분한 책임이 있다. 대사의 익명성도 중요하지만 알권리에 앞설 리는 없다. 대사 이하 공사·참사관과의 간담회에선 질문해도 되고 대사 간담회에서는 할 수 없는 상황도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소통 과정의 갈등은 어쩌면 필연일 수 있다. "더 많은 소통으로 갈등을 극복하시겠습니까, 갈등 때문에 소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간담회에서 못다 한 질문이다.

베이징= 조영빈 특파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