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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4층의 분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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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죽은 자는 지하에 잠들고, 산 자는 지상에서 슬퍼한다. 묘지의 주인들이 ‘양지바른 곳’을 원하는 건, 햇살 부시던 ‘삶’을 기억하고 함께 할 수 있다면 그러고 싶어서일 것이다.
이태원 참사 100일(2월 4일)을 맞아 서울광장에 기습 설치된 분향소의 ‘이사’를 두고 대립이 크다. 서울시는 15일 오후 1시까지 철거를 통보했다. 서울시가 유족에게 제안한 장소는 녹사평역 지하 4층. 추모조차 지하로 들어가야 하는 걸까.
□ 녹사평역이 어떤 곳인지 우선 보자. 2000년 8월 지하철 6호선 개통으로 등장했다. 조선시대 잡초가 무성해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던 곳이어서, 녹사평(綠莎坪·푸른 풀이 무성한 들판)이라 불린 데서 이름을 땄다. 한 신문은 최근 “녹사평역을 찾아가 봤더니 유리돔을 통해 지하 4층까지 자연채광으로 밝게 비치고, 공용공간도 넓다”고 분향소로 괜찮다는 뉘앙스의 기사를 썼다. 지하예술정원이 조성돼 있고, 결혼식 장소나 영화·드라마 촬영지로도 쓰였다.
□ 그러나 지하 공간이 얼마나 ‘멋진 곳’인지는 핵심이 아니다. 이미 지옥 근처의 ‘심리적 지하’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유족들은 ‘지하 분향소’를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지하 4층이라는 어감도 그렇지만 이태원 참사가 조용해질 때까지 너희들도 똑같이 아이들처럼 그냥 지하에 가서 박혀서 죽으라는 얘기이다.” “지하 4층에 분향소를 차리라니··· 숨도 못 쉬고 또 죽으라는 건가.” 서울광장 분향소를 설치할 때 막아서고 실랑이를 벌이던 경찰들을 보면, 왜 참사 당시엔 보이지 않고 여기서 이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 ‘지하 분향소’의 적절성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서울 한복판에서 159명이 희생된 이 기막힌 참사를 왜 서울의 상징적 광장에선 애도할 수 없나. 서울광장에 스케이트장과 크리스마스 트리는 되는데, 분향소는 안 되나. 서울시는 설문조사까지 의뢰해 서울시민 10명 중 6명이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의 분향소를 반대한다고 밝혔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설치할 때도 설문조사를 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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