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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방산시장은 안 보이는 벽투성이... 차라리 절차 간소한 수출이 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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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방위산업은 전투기ㆍ전차ㆍ자주포 쪽에서 수출 대박을 터뜨리며 전성시대를 맞이했습니다. 높은 가성비, 양산 능력, 검증된 안정성이 국산 무기의 장점입니다. 그러나 정작 기술력을 갖춘 국내 IT기업이 국내 방산에 진출해 국군에 신무기를 납품하는 데에는, 매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신기술이 신무기가 되지 못하는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요? 한국일보가 점검해 봤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군대에 장비를 수출할 때였어요. 직접 만난 적도 없는데, 장비 정보를 확인한 후 물품 대금 100%를 먼저 지급하더라고요. 깜짝 놀랐습니다."
기술기업 C사의 대표 K씨는 사우디 군과의 수출 거래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C사는 군 기지와 공항에 침투하려는 드론을 방어(안티드론)하는 전파교란장비를 만든다. 방위사업법에 따른 지정방산업체(정해진 시설·보안을 갖추고 산업통상자원부 지정을 받은 방산업체)는 아니지만, 정부의 기술혁신형기업 인증을 받았다.
현재 C사의 해외 매출 비중은 75%. 중동을 시작으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을 넘어 유럽까지 거래처를 넓히고 있다. 수출이 최근 급증해 2021년 매출이 150억 원을 넘겼다.
C사가 해외 시장에 더 적극적인 이유는 간단한 납품절차 때문이다. K 대표는 "한 아세안 국가의 군에 장비를 공급할 때, 시험평가 후 성적서를 보냈더니 바로 거래가 성사됐다"고 말했다. 본계약 후 실전 배치까지 1년이 안 걸렸다. K 대표는 "수 차례 성능시험 및 평가를 모두 거쳤는데도 사우디 군에선 5개월, 아세안 국가 군에서는 7개월밖에 안 걸렸다"며 "간소화된 절차를 피부로 느꼈다" 고 말했다.
그러나 C사는 한국 방위사업청이 2020년부터 시행한 신속시범획득사업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국군에 정식으로 납품한 장비도 아직 없다. K씨는 "국내 방위사업에도 관심이 있지만, 해외에 비해 납품 절차가 복잡하다"고 말했다. 그는 "남북 대치라는 특수상황 때문에 군의 요구조건이 엄격한 것은 이해한다"면서도 "그래도 민간 정보기술(IT) 기업의 방산 진출을 위한 맞춤형 제도가 절실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그런 변화 없이 신규 업체가 국내 방위산업에 들어갈 틈이 없다"고 덧붙였다.
절차상 어려움 때문에 '안방' 진출을 주저하는 곳은 C사만이 아니다. 기존에 방사청과 거래하지 않던 업체 입장에서, 국내 방산시장은 넘기 힘든 벽이 곳곳에 산재된 전장이다. 산업연구원이 지난해 수도권 소재 민간 IT기업 40곳 및 관련 전문가들을 상대로 약 3개월간 심층조사한 결과에는, 기술력을 갖춘 비(非)방산업체들이 국내 방산시장 진출에서 겪는 어려움이 잘 드러나 있다. 조사 대상 기업은 지정방산업체에 해당하지 않는 민간기업 중 방산에 적용될 수 있는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 기술을 보유한 업체들이다.
IT기업들은 "기존 업체에만 익숙한 절차 등 보이지 않는 규제 탓에 사업이 지체돼 국내 방산시장 진출을 꺼리고 있다"며 "방산 진출 확대를 위해서는 미국의 신속획득제도를 참고한 별도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민간 IT기업들은 방산시장 참여가 어려운 이유와 관련, “제안서를 쓸 때 기존 방위사업에 이미 참여한 실적을 요구하는 점이 까다롭다”는 지적에 가장 많이 동의했다.
중소기업만 어려움을 겪는 건 아니다. 한 IT 대기업 관계자는 "작년쯤부터 군과 클라우드 기술 도입 협업을 시작해 관련 컨설팅도 하고 있지만, 지금은 어떤 사업을 같이 할 수 있을지 천천히 논의만 하는 단계"라고 했다. 카카오 고위 관계자도 "현재로선 방위산업 진출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민간 IT기업들은 국산 무기가 유럽·중동·동남아에서 잇달아 수출 대박을 터뜨리며 'K방산 전성시대'를 이끌고 있지만, 정작 국내 방산시장은 자국 기업의 신기술 도입에 별로 적극적이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실리콘밸리와 연계해 신무기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미국처럼, 신속획득제도를 신설하고 이를 실행하는 별도 조직을 설치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군이 정한 인증만 받으면 바로 납품할 수 있도록 사업 절차를 개선해 달라는 주문도 있었다. 군에 항공장비 공급을 준비 중인 한 중소업체 대표는 "미국의 경우 국방부가 2020년에 만든 사이버보안성숙도모델(CMMC)에 따라, 해당 인증을 받은 기술기업이라면 군과 계약할 수 있는 제도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에도 이와 유사한 인증제도가 생긴다면 기존 납품절차도 충분히 간소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밖에도 기업들은 신기술 적용이 필요한 방위사업에 대한 정보 공개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업계 관계자는 "신속시범획득사업의 경우 정보가 부족한 민간업체가 군에 먼저 기술 적용 제안을 할 것이 아니라, 군이 요구사항을 확실히 공개한 뒤 그에 맞는 기업을 선정해 민간의 시행착오를 줄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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