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장일치가 위험한 이유

입력
2023.02.1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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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줄다리기 장면.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줄다리기 장면. 넷플릭스 제공

1961년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특별 자문위원회는 만장일치로 쿠바의 피그만(The Bay of Pigs) 침공작전을 승인했다. 이는 쿠바에서 미국으로 탈출한 난민들을 훈련시켜 피그만을 침공하여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하게 한다는 계획이었다. 특별 자문위원회는 미국이 지원하는 쿠바 망명자들이 오합지졸인 쿠바군과의 전투에서 쉽게 승기를 잡을 것이고 이를 본 쿠바 주민들은 그들을 해방군으로 환영하여 공산주의 정권에 맞서 들고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은 빗나갔고 미국은 전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미국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는 이 사례를 연구하여 '집단사고'라는 개념을 정립했다. 이는 구성원 간 강한 응집력을 보이는 집단에서, 의사결정 시 만장일치에 도달하려는 분위기가 다른 대안들을 현실적으로 평가하려는 경향을 억압할 때, 구성원들이 왜곡되고 비합리적인 사고방식에 빠지는 것을 말한다. 집단사고에 빠진 구성원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역량을 과도하게 높이 평가하며 타 집단에 대해서 폐쇄적인 태도를 보인다. 위원회에 참여했던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누구나 동의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한 묘한 분위기 속에서 회의가 열렸고, 나는 어이없는 계획이라고 생각했지만 회의 석상에서는 왠지 잠자코 있게 되었다. 그때 내가 소심하게 질문 몇 개를 던지는 것 이상으로 나서지 못했던 이유를 설명하자면, 그 허튼짓을 고발하고 싶은 충동이 당시의 회의 분위기에 눌려버렸다고 할 수밖에 없다."

최고의 엘리트들이 왜 이렇게 어리석은 결정을 했을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구성원들의 높은 유사성 때문이다. 당시 케네디 행정부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미국 명문대를 졸업한 중년의 백인 남성이었다. 이들은 유대감이 강했고 국가 안보문제 담당자들은 사적으로도 매우 친했다. 위 작전의 세부계획을 수립한 미국 중앙정보국(CIA)도 마찬가지였다. CIA는 백인 남성, 앵글로색슨족 출신, 인문학 전공자, 개신교를 믿는 미국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면 집단 간 응집력이 커져 반대 의견을 제시할 수 없게 된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줄다리기 장면을 기억하는가? 오합지졸 기훈 팀이 체력적으로 우세한 상대팀을 이긴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팀의 다양성을 들 수 있다. 상대편은 건장한 남성들로 구성되었지만 기훈 팀에는 남성뿐 아니라 여성, 노인, 그리고 외국인도 있었다. 하지만 다양성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그들은 팀원 모두가 힘을 합쳐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전략을 짜고 경험을 나누었다. 오일남 할아버지는 소싯적 했던 줄다리기 우승법을 알려줬고 상우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기지를 발휘했다. 외국인 노동자 알리는 힘의 중심을 잡아주었다. 이것이 바로 포용성이다. 결국 다양성과 포용성이 성공비결이다.

만장일치와 이구동성은 위험하다. 단합이 잘되는 것이 아니라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속한 조직은 어떠한가? 같은 성별, 같은 세대, 같은 국적, 같은 지역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위험신호다. 속전속결 만장일치로 의견 취합이 이루어진다면 조직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기가 다가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의견을 마음껏 개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할지 고민해보자.


유재경 국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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