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해외 임무…‘톱도그’ 토백이의 이유 있는 붕대투혼

입력
2023.02.14 16:0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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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최정예 구조견 토백이 이야기
수색 중 오른 앞발 다쳐 붕대 감기도
사람 나이로 30대, 내후년 은퇴 가능성

지난 10일 오전(현지시간) 튀르키예 하타이 안타키아 시내에서 전날 구조작업 중 부상을 입은 구조견 '토백이'가 발에 붕대를 감은 채 수색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하타이=연합뉴스

지난 10일 오전(현지시간) 튀르키예 하타이 안타키아 시내에서 전날 구조작업 중 부상을 입은 구조견 '토백이'가 발에 붕대를 감은 채 수색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하타이=연합뉴스

켜켜이 쌓인 콘크리트 더미 사이로 희미하게 공간이 보인다. 깡마른 사람조차 비집고 들어가기 어려운 너비다. 남은 구조물마저 언제 무너질지 모를 위태로운 상황. 하지만 비좁은 틈 사이로 지체 없이 뛰어든다. 무언가 발견한 모양이다. 취기(사람의 체취)를 향해 달려드는 건 본능이다. 튀르키예 대지진 현장에 파견된 '대한민국 긴급구조대(KDRT)' 인명구조견 토백이의 이야기다.

토백이와 친구들, '8명 구조' 기적의 조력자

토백이는 중앙119구조본부 소속 최정예 구조견 3마리(티나·토리·해태)와 함께 7일 밤 군 수송기에 올랐다. '친구의 나라' 튀르키예에서 매몰자를 구조하라는 특명을 받았다. 현지에서 가장 피해가 큰 하타이주 안타키아 구조 현장에 투입됐다. 구조견들은 대원들을 도와 일주일 새 돌무더기 속에서 생존자 8명을 구해냈다. 잔해 밑을 투시할 수 없는 구조대원들에게 인간보다 최대 1만 배 뛰어난 후각능력을 갖춘 구조견은 천군만마나 다름없다.

4마리의 '구조견 특공대' 중 유독 토백이가 조명을 받은 건 붕대 때문이었다. 지난 9일(현지시간) 콘크리트와 유리 파편, 나뭇조각이 나뒹구는 현장에서 날카로운 물체를 밟아 오른쪽 앞발을 다쳤다. 부상은 구조견의 숙명이다. 토백이를 다룬 뉴스에는 '왜 신발을 신기지 않았느냐'는 타박 섞인 댓글이 달렸다. 중앙119 구조단의 정소애 훈련사는 "눈이 오는 등 미끄러운 환경에서는 신발을 신기는 게 더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다행히 꿰맬 정도는 아닌 터라 응급조치를 마친 뒤 토백이는 다시 구조 현장에 투입됐다.

토백이에게 튀르키예 대지진 매몰자 구조 작업은 매우 특별하다. 마지막 해외 임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나이 6세. 사람으로 치면 30대 중반쯤 된다. 구조견은 보통 8세가 되면 은퇴하고 새 주인을 찾아간다.

10일 오전(현지시간) 튀르키예 하타이 안타키아 시내에서 전날 구조작업 중 부상을 입은 구조견 '토백이'가 발에 붕대를 감고 구조작업 투입을 기다리고 있다. 하타이=연합뉴스

10일 오전(현지시간) 튀르키예 하타이 안타키아 시내에서 전날 구조작업 중 부상을 입은 구조견 '토백이'가 발에 붕대를 감고 구조작업 투입을 기다리고 있다. 하타이=연합뉴스


골든타임 넘어가도 희망 놓지 않고 맡는다

어리지만, 토백이는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다. 2020년에는 소방청 119구조본부 소속 전국 35마리 베테랑 구조견 가운데 '톱도그'(Top dog·최고 인명 구조견)에 뽑혔다. 그해 구조 실적이 최상급이었고, 건물이 무너진 가상 상황 등에서 빼어난 매몰자 인지 능력을 발휘했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무려 140번이나 현장에 투입됐다. 건물 붕괴 현장, 산악 실종자 수색 등 열악한 재난 현장에는 늘 토백이가 투입됐다. 특히 2021년에는 세계 구조견 경진대회에 나가 건물 잔해 밑에 숨어 있던 외국인 요원을 찾아내는 경험을 했다. 소방청 관계자는 "한국인과 외국인은 취기가 달라 경험이 없으면 해외 현장에서 구조하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토백이의 최대 무기는 붙임성과 침착함이다. 정 훈련사는 "재난 현장에는 워낙 많은 사람과 구조견이 몰리다보니 당황하는 개가 많다"면서 "토백이는 친화력이 좋고 겁도 안 먹으며 무엇보다 어떤 환경에서도 흥분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누군가는 '골든타임'(매몰자의 생존 가능성이 높은 사고 후 72시간 내)이 이미 지났다고 말한다. 우리 구조대는 지진 발생 후 130시간이 흐른 지난 11일 생존자 3명을 연달아 구조해 내기도 했다. 토백이는 기적을 믿는다. 끝까지.

유대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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