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사랑을 위한 지침서

입력
2023.02.13 21:00
25면

박수빈 지음, '연애도 계약이다'

편집자주

'문송하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건 인문학적 교양입니다. '문송'의 세계에서 인문학의 보루로 남은 동네책방 주인들이 독자들에게 한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요새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인기다. 젊은 층부터 돌싱까지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등장하여 다양한 모습으로 썸을 타고, 또 서로 감정이 엇갈리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등 사랑의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한편으로, 이런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들도 종종 보인다. 일방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는 사람,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드러내는 사람, 이미 거부 의사를 표현했는데도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겠다며 다시 일방적으로 행동하는 사람 등등. 여전히 이런 모습들이 '사랑'으로 포장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가슴이 내려앉는다. 단어만으로도 두근거림을 불러일으키는 '사랑'이지만, 누군가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가한다.

가해자는 물론이고 피해자도 폭력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안전한 연애는 어떻게 가능할까? '연애도 계약이다'는 변호사인 저자가 연애를 법률상 계약에 빗대 연애 시작 전 체크리스트부터 연애의 개시와 소멸과정에서 건강한 관계 맺음과 해소 방법, 나아가 연애의 영역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명백히 범죄인 것들까지 다정하게 알려주는 책이다.

먼저 연애를 시작할 때 주의점이다. 우리가 부동산을 매수하거나 임차하는 계약을 체결할 때 등기부상 다른 권리자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상대의 혼인 또는 연애 상태를 확실히 체크해야 한다. 가장 쉽게는 직접 물어보는 법부터 왼쪽 넷째 손가락에 반지가 있는지, SNS 상황 체크(?)까지 다양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상대방이 혼인한 상태인 줄 모르고 연애를 했다가 상대방 배우자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는 경우도 흔히 있다. 따라서 이러한 것들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연애를 시작할 때 꼭 확인해야 할 중요한 사항이다.

또, 연애 관계는 어떻게 해야 건강할 수 있을까. 연애가 계약이라면, 연애 관계의 당사자들은 서로에게 '채권'적 권리가 있을 뿐, '물권'적 권리가 있다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저자의 비유가 재미있다. 채권은 어떠한 '행위'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인 반면, 물권은 '물건'에 대한 권리이다. 흔히 연인 관계에서 서로를 '내 것', '네 것'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이라는 것이다. 나는 연인과 사귀기로 약속한 것이지 연인을 소유한 누군가와 약속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상대방이 나를 '물건'이 아닌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한편, 연애 관계를 반드시 중단해야 할 때도 있다. 서두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명백한 폭력행위를 '너를 사랑해서'라는 이유로 정당화하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는데, 안 될 일이다. 때리는 것뿐 아니라, 물건 던지기, 소리 지르기, 폭언하기, 상대방을 심리적으로 조종하는 행위(가스라이팅), 성관계 강요 등 연인이라고 하여 이를 견뎌야 할 이유는 없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며, 상대방이 거부 의사를 표현했음에도 계속하여 들이대는 경우는 어떨까. 한때는 이러한 행동이 일편단심 그녀를 위한 사랑이라며 낭만적으로 포장되곤 했지만, 이 역시 명백한 범죄행위다. 2021년 10월 21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스토킹처벌법에 의하면,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접근하는 행위, 주거지 등에서 기다리는 행위, 전화 등을 통해 연락하는 행위 등을 반복적으로 하면 스토킹 범죄에 해당하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제 우리 사귀기로 했다'며 연인 관계에 접어들었다는 사정만으로 아름다운 '사랑'은 보장되지 않는다. 서로를 존중하고 동등한 인격체로 대할 때 그 과정은 아름답다. 무엇보다 사랑은 안전하고 자유로워야 한다.

밝은책방

  • 김소리 대표

밝은책방은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작은 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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