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 위에 다시 꽃 피고 새가 울 그날

입력
2023.02.13 22:00
27면
7일 튀르키예 남동부 카라만마라슈의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한 주민이 잔해 속 숨진 15세 딸의 손을 붙잡고 있다. AFP 연합뉴스

7일 튀르키예 남동부 카라만마라슈의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한 주민이 잔해 속 숨진 15세 딸의 손을 붙잡고 있다. AFP 연합뉴스

온기 잃은 아이의 손을 만졌을 때 아버지는 알았을 것이다. 열다섯 살 딸이 이미 숨졌다는 걸. 하지만 아버지는 딸의 손을 놓을 수 없었다. 딸은 무너진 건물 잔해에 몸이 깔린 채 손만 겨우 나와 있고, 아버지는 그 식어버린 손을 잡고 멍하니 폐허에 주저앉았다. 어떤 위로의 말도 닿을 수 없는, 이 슬픔의 시간이 너무 잔인하다.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의 참상을 담은 한 장의 사진에 눈가가 뜨거워진다. 이 장면을 찍은 사진기자 역시 "(촬영이) 엄청난 고통이었으며,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

일곱 살 소녀가 동생의 머리를 감싼 채 콘크리트 더미에 깔려 있다. 그렇게 17시간을 버티다 극적으로 구조됐다. 세상의 풍파라고는 몰랐을 이 어린 것들이 서로를 의지해 절망을 이겨냈다. 어린 누나는 동생을 보호하느라 제 고통을 돌볼 겨를이 없었고, 동생은 그런 누나가 있어 고통을 참을 만했을 것이다. 이 대견한 아이들이 또 나를 울린다.

붕괴된 건물 속에서 갓 태어난 아기도 있었다. 건물 더미에 깔린 만삭의 엄마는 사력을 다해 아이를 낳고 숨졌다. 아이를 발견했을 때 탯줄이 엄마와 이어져 있었다. 한 생명이 떠난 곳에서, 그를 닮은 한 생명이 태어났다. 폐허를 뚫고 피어난 한 송이 꽃이다. 죽음과 삶이 엉켜버린 이 거대한 재앙 속에서 태어난 아이는, 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라고 모두를 일깨우는 듯하다.

골든타임이 이미 지났지만 지진 현장에서 기적의 생환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생환자를 맞을 때마다 현장에서 환호가 터져 나온다. 구조대원은 말할 것도 없고, 슬픔을 채 추스르지 못했을 생존 주민들도 함께 환호한다. 주민들이 맨손으로 돌 하나라도 걷어내고, 먼지를 뒤집어쓴 채 구조대원들과 힘을 합친다. 무력한 인간이 운명에 맞서는 방식이다. 그리고 기어코 폐허 속에서 생명 하나를 구해내고, 다시 삶의 투지를 다진다. 당신이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니 살아만 있어라. 이 간절한 마음이 슬픔을 앞섰을 것이다.

재앙은 모든 것을 빼앗아 갔지만, 인간의 헌신과 용기는 뺏지 못했다. 자신의 슬픔보다 남의 절박함에 먼저 손을 내미는 이 거룩한 마음들이 기적을 만들었을 것이다. 폐허 위에서 인간의 이름으로 꽃들이 핀다. 더 이상 절망으로 무너져 내리지 말라고, 그 꽃들이 향기를 전해온다. 이 꽃들이 번져 언젠가 폐허를 다 덮으리라. 그때 떠나간 새들도 돌아와 아름다운 화원에서 다시 노래하리라.

12년 전 일본 도호쿠대지진 때, 시인 정호승은 한 일간지에 이렇게 시를 실었다. "빌딩 위에 얹힌 여객선이 다시 푸른 바다로 떠나고 / 폭발된 원전이 다시 안전하게 전기를 공급하고 / 당신은 지하철을 타고 다시 일상을 즐기며 출근할 수 있을 것이므로 / 일본 열도여 울지 마소서." 원전은 아직 복구되지 않았지만, 쓰나미에 떠밀려 빌딩 위에 얹혔던 여객선은 푸른 바다로 떠난 지 오래다. 배는 먼 바다의 소식을 실어 이제 어느 봄의 항구에 도착했으리라.

시인의 마음을 빌려와 나의 작은 위로를 전한다. 튀르키예여 울지 마소서. 갈라진 도로가 당신들의 땀과 눈물로 메워지고, 무너진 건물들이 용감한 당신들 마음처럼 다시 우뚝 설 테죠. 아이들의 웃음이 거리를 가득 채우고, 어느 날 착하고 따뜻한 봄바람이 거짓말처럼 당신들 슬픔을 거둬갈 거예요. 그러니 튀르키예여 울지 마소서.


이주엽 작사가·JNH뮤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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