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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약, 동물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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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경옥고’와 ‘견(犬)옥고’, ‘임펙타민’과 ‘임펙타민펫(pet)’, ‘인사돌’과 ‘캐니(canine)돌’. 요즘 사람 약 이름에 동물을 뜻하는 영어나 한자를 붙여 동물 전용 약으로 출시된 제품이 여럿이다. 이유가 있다. 기존 약이 쌓아온 인지도와 신뢰도를 바탕으로 반려인에게 어필할 수 있으니 마케팅에 유리하다. 경쟁사를 견제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치료제 아닌 영양제는 사람용을 동물용으로 변경할 때 별도 허가를 받지 않아도 돼 제조사로선 부담도 없다.
□ 반려동물 영양제는 국내법상 사료로 분류된다. 사료는 사람이 먹는 식품보다 세균 수 허용 범위가 넓다. 이를테면 반려동물용 습식 사료는 1g당 대장균이 10마리까지는 들어 있어도 판매 적합 판정을 받지만, 사람 식품은 한 마리도 허용되지 않는다. 사람 영양제를 동물 영양제로 바꾸면 법적으론 사료지만 동물 아닌 사람 기준을 적용해 만든 제품이 될 수 있다. 반려인이 반길 만한 ‘휴먼 스탠더드’ 약이다.
□ 사람 약을 동물 약으로 변경할 땐 성분에 신경 써야 한다. 가령 프로바이오틱스를 동물용으로 만들려면 자일리톨 성분을 뺀다. 사람과 달리 대부분의 동물, 특히 개는 자일리톨을 먹으면 혈류로 빠르게 흡수돼 췌장에서 인슐린이 다량 분비된다. 개 몸무게 1㎏당 자일리톨을 0.4g 이상 섭취하면 저혈당증이나 급성 간부전이 생길 수 있다. 사람이 음식으로 섭취해야 하는 필수 아미노산은 9개인데, 개는 10개, 고양이는 11개다. 개는 아르기닌, 고양이는 아르기닌과 타우린이 추가된다. 비타민C는 사람과 달리 개와 고양이에겐 필수 영양소가 아니다. 몸에서 스스로 만들 수 있어서다.
□ 반려동물 식품 사업에 진출했던 기업들이 줄줄이 발을 빼거나 고전 중이라고 한다. 제약업계는 의약품 사업은 오랜 업력과 전문성을 토대로 하는 만큼 식품과는 다를 거라 기대한다. 코로나19가 잦아들면서 주기적 예방접종이 논의되고 있다. 대유행이 한창일 때 업계가 앞다퉈 내놨던 백신·치료제 개발 계획은 슬그머니 사라졌고, 외국 백신에 의존해야 할 처지다. 사람 약을 선도하지 못하고 동물 약으로 비켜가는 듯한 모습에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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