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끼, 민망해할 필요 없다

입력
2023.02.12 20:5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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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 프리즘] 김성권 서울대 명예교수(서울K내과 원장)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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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잊혀 가는 말들이 많은데, ‘자리끼’도 그중의 하나일 것이다. 중ㆍ장년 이상 세대에게도 어릴 적 할아버지의 방 머리맡에 놓여 있던 물그릇, 즉 자리끼가 희미한 추억 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60대 환자 P씨는 진료 중에 이렇게 말했다. “밤에 자다가 일어나 입이 마르고, 갈증이 나서 침대 옆 탁자에 물컵을 두고 있는데, 아내가 ‘어릴 적 할아버지 방의 자리끼가 생각나 기분이 이상하다’라고 말해 민망하네요.”

요즘 대부분의 집 안에는 침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냉장고나 정수기가 있어 몇 발짝만 움직이면 물을 마실 수 있다. 하지만 밤에 잠을 깨서 물을 마셔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곳에 자리끼를 둘 필요가 있다.

야간뇨나 잔뇨, 과민성 방광 등을 포함하는 배뇨장애나 코골이, 입 마름 등이 있는 사람들은 밤에도 소량의 물을 섭취해야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나이 들면 밤에 잠자다 한두 번 이상 깨서 소변을 봐야 하는 ‘야간뇨’ 증상이 나타난다. 심지어 서너 번까지 깬다는 사람들도 있다.

야간뇨 원인은 남성은 전립선비대증 때문일 때가 많지만, 여성에게도 나타나므로 다른 요인들도 찾아볼 수 있다.

첫째, 나이가 들면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항이뇨호르몬(ADH) 분비량이 감소한다. 밤에 잠자는 동안 항이뇨호르몬이 나와 콩팥에서 소변을 못 만들게 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이 호르몬 분비량이 줄어 잠자는 동안에도 계속 소변을 만들어 방광으로 보낸다. 그러면 잠을 푹 못 자고 도중에 깨서 소변을 봐야 한다.

둘째, 콩팥 기능의 변화다. 콩팥은 혈액을 걸러 소변을 만드는 과정에서 물은 다시 흡수해 농축된 소변만 내보낸다. 그런데 나이 들면 물의 재흡수 능력이 떨어져 소변이 묽어지고 양은 증가한다.

셋째, 다리 부종이다. 나이가 들어 다리 근육이 약해지면 정맥에 가해지는 압력이 줄어든다. 그래서 심장에서 멀리 떨어진 다리 쪽 체액이 정맥을 통해 원활하게 되돌아가지 못해 부종이 잘 생긴다. 이 체액이 잠자리에 들면 혈관으로 들어오는데, 콩팥은 이를 혈액량 증가로 인지해 소변을 만든다. 밤에 자주 소변을 보면 몸의 수분이 부족해지며, 심하면 갈증도 생긴다.

또한 몸 안에 물이 부족하면 저혈압도 발생할 수 있다. 잠자는 도중 소변을 보려고 침대에서 일어날 때나 아침에 기상하다가 기립성 저혈압으로 쓰러지거나 낙상을 입는 노인들이 적지 않다. 수분을 포함한 체액이 부족하면 기립성 저혈압 발생 위험이 증가한다.

코를 심하게 골거나, 노화에 따라 침 분비가 줄어 입 안이 쉽게 건조해지거나 목이 칼칼한 사람들에게도 자리끼는 도움이 된다.

별 게 아닌 것 같은 자리끼가 의외로 쓸모가 많음을 알 수 있다. 배뇨장애가 있거나 기립성 저혈압을 경험한 사람 등 밤에 적절한 수분 섭취가 필요한 사람들은 침대 머리맡에 물컵을 두는 것이 권장된다.

잠결에 일어나 냉장고나 정수기 쪽으로 가다가 낙상을 입을 수도 있으므로 마실 물은 가까이 두는 편이 바람직하다. 물컵 재질도 깨지기 쉬운 유리는 피하는 게 좋다.

중국의 고대 의학서인 ‘황제내경’에도 ‘노인이 되면 소변량이 증가한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 티 난다고 쑥스러워할 필요 없다.

김성권 서울대 명예교수(서울K내과 원장)

김성권 서울대 명예교수(서울K내과 원장)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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