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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난방(衆口難防) 선거 개혁

입력
2023.02.13 00:00
26면

권역별 비례 등 온갖 개편론 난무
정부 형태와 선거제도는 쉽게 바꿀 수 없어
진정한 정치개혁은 정당개혁부터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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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 국회의장이 촉발한 선거제도 개혁이 '중구난방' 양상을 보이고 있다. 김 의장은 소선거구제가 문제가 많다면서 중대선거구제로 바꾸어야 한다고 했으나 국회 회의에 참석한 정치학자들이 중대선거구제가 양당 체제를 타파하는 데 효과가 없다고 했다. 그러자 의원 정수를 늘려서 비례대표 숫자를 늘리자고 하고, 또 뜬금없이 대통령은 4년 중임제가 좋다고 하니 국회의장이 이런저런 주장을 마구 내놓는 자체가 문제다.

선거 제도를 바꾼다고 하자 권역별 비례를 도입해야 한다거나 지역구를 없애고 아예 100% 비례대표로 선출하자는 등 온갖 이야기가 시중에 떠돌고 있다. 권역별 비례는 사회적 갈등이 별로 없고 인구가 적은 의원내각제 국가에서 주로 시행하고 있다. 핀란드는 13개 권역에서 정당 투표로 200명 의원을 선출한다. 10개 정당이 원내에 진출해 있는데, 의원 30~40명을 당선시킨 정당은 4개에 불과해 연립내각을 구성하는 수밖에 없다. 핀란드는 직선 대통령이 있으나 그 권한은 군사·외교에 국한돼 있다.

우리의 경우 비례대표 숫자를 그대로 두고 권역별 비례로 선출하면 제3당 등 작은 정당 의석이 오히려 줄어들게 된다. 권역을 세분화하면 특히 그런 결과가 나올 것이다. 작은 정당은 전국적으로 득표를 합산해야 유리하기 때문이다. 지역구 숫자를 줄이고 비례의원을 늘리는 것도 쉽지 않다. 지금도 인구가 적은 지방은 지역구가 너무 넓은데, 지역구 숫자를 줄이면 6, 7개 시·군이 한 개 지역구가 될 수도 있다. 비례의원은 공천 절차도 불투명하고 근래에는 자질론이 불거진 경우가 많아서 그런 비례의원을 무턱대고 늘리자는 발상은 황당하다.

지역구 선거를 아예 없애고 전국 단위 비례대표로 국회를 구성하자는 주장도 있다. 이스라엘은 그런 방식으로 의원 120명을 선출한다. 건국 후 오랫동안 집권해 온 노동당이 쇠퇴하고 우익 성향의 리쿠드당이 부상함에 따라 이스라엘은 10여 개 정당이 원내에 진입해 있다. 내각은 여러 정당이 참여하는, 불안한 연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서 이스라엘 정치는 혼돈에 빠져 있다. 유효투표 3.25%를 얻은 정당만이 의석을 받을 수 있다고 규정해 그나마 원내정당 숫자가 10개 정도에 그치고 있으니, 비례민주주의는 공허한 이야기이다.

한 나라의 정부 형태와 선거 제도가 정착하면 그것을 뒤집는 변화를 이루기는 어렵다. 의원내각제를 대통령제로, 그리고 대통령제를 의원내각제로 바꾼 경우는 알제리 위기로 드골이 복귀한 1958년 프랑스 5공화국과 4·19혁명 후 들어선 우리나라 2공화국 정도가 있을 뿐이다. 영국 하원과 미국 하원이 소선거구제에 의존하는 것은 그것이 그 나라의 제도이고 전통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제도 중남미의 단임제와 미국과 프랑스의 중임제가 각기 장단점이 있어 각 나라의 전통을 별안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5년 임기 동안에 국정을 제멋대로 운영한 대통령이 연이어 나왔는데, 어떻게 중임제를 하자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 정치가 이 모양이 된 데는 정당에 더 큰 책임이 있다. 매일매일 정쟁이나 하는 정당에 국민세금으로 보조금을 주고 있으니 한심하다. 국민세금으로 비대한 조직을 유지하고 당대표가 공천을 좌우하는 비민주적인 기구가 우리의 정당이다. 당대표가 군림하는 정당은 공화당과 민정당에서 유래한 구태정치의 잔재다. 당대표를 뽑는 선거가 이렇게 시끄러운 나라는 우리뿐이다. 정치는 의회 중심으로 하는 것이기에 시대착오적인 정당을 타파하는 것이 진정한 정치개혁의 출발점이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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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돈중앙대 명예교수·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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