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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 한 벌과 '개무시'

입력
2023.02.10 04:30
수정
2023.02.10 14:1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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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효 광주FC 감독이 8일 제주 서귀포의 빠레브호텔에서 열린 K리그 동계훈련 미디어캠프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이정효 광주FC 감독이 8일 제주 서귀포의 빠레브호텔에서 열린 K리그 동계훈련 미디어캠프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수면시간을 다 합쳐도 채 10시간이 되지 않는다. 새벽을 뜬눈으로 지새울 때가 많다. 축구 때문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부터 스페인 라리가, 이탈리아 세리에A, 프랑스 리그1, 독일 분데스리가 등 유럽 5대 축구 리그를 거의 다 챙겨 보는 편이다. 특히 좋아하는 팀의 경기는 휴대폰에 알람을 맞춰둘 정도로 열성적이다. 거짓말 조금 보태자면 이런 생활을 지난 1년여 동안 해 왔다.

그래서일까. 지난해 EPL '직관'을 위해 영국으로 휴가 갔을 때도 시차 적응이랄 게 없었다. 이미 모든 신체리듬이 유럽 시간에 맞춰져 있었던 거다. 최적의 그라운드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펼치는 '90분 쇼'를 어찌 마다할 수 있단 말인가.

그에 반해 국내 리그에는 관심이 없던 것도 사실이다. EPL 등 유럽 리그는 1년 치 시청권을 유료 결제해 휴대폰 등으로 찾아보면서 K리그에는 그런 열성을 보이지 않았다. 자세히 들여다보지도 않고 '재미없다'고 치부했다. 수준이 낮다고 깔봤다면 깔봤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반성문을 쓰는 이유는 이정효 광주FC 감독이다. 지난 8일 제주에서 열린 K리그 동계훈련 미디어캠프에서 그는 멋진 슈트 차림으로 취재진과 만났다. 지난달부터 진행된 미디어캠프에서 운동복이 아닌 슈트 차림의 감독은 본 적이 없다. 그에게 양복을 차려입은 이유를 물었다. "저에겐 큰 꿈이 있습니다. 편하게 입어도 되죠, 하지만 편하다 보면 어떤 일에 있어서 절대 최고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 감독은 2부 리그로 강등된 광주를 1부 리그로 승격시킨 주역이다. 탁월한 지도력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행복한 표정은 아니었다. 이유는 이랬다. "저는 계속 잘해야 합니다. 아직 우리 정서는 서울대 학생은 서울대 나온 교수가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큽니다. 그러나 (서울대 나오지 않아도) 능력이 있으면 가르칠 수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이 감독의 슈트는 자존심 그 자체였다. 그는 팀을 승격시키고 참석한 1, 2부 리그 감독과 선수, 언론이 만나는 첫 미디어데이 당시를 떠올렸다. "참 아이러니한 게 '개무시'당하는 느낌이었다"고 고백했다. '초짜 감독' '듣도 보도 못 한 감독'이라며 멸시에 가까운 시선을 받았다고 한다.

이 감독은 2부 리그 코치로 유명해졌다. 2012년 아주대에서 감독생활을 시작한 그는, 2016년부터 광주와 성남, 제주에서 '남기일(제주유나이티드 감독) 사단'으로 활동하며 맡았던 팀들을 1부 리그로 승격시키는 데 공헌했다. "선수들이 감독보다 더 따르는 코치"로 평가받을 정도로 인성까지 갖춘 지도자였다. 그러나 1부 리그에서 광주는 그저 '2부 리그 승격팀'일 뿐이었다.

하지만 축구 전용 연습구장도 없이 승격한 광주를 그저 '하부리그 출신'이라고 깔볼 수 있을까. 광주 월드컵경기장과 광주 축구전용구장, 광주 축구센터 등을 전전하고, 경기장도 사용이 제한돼 정해진 시간을 초과할 경우 쫓겨나기 일쑤였다고 한다.

이 감독은 올 시즌 무조건 '공격 축구'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특유의 공격 축구로 1부 리그에서 매운맛을 보여주겠다는 거다. 벌써부터 "망신당한다" "내려앉아 수비해야 한다" 등 말들이 나온다. 하지만 의심보다 확신이 앞선다. EPL보다 더 뜨겁고 강렬한 축구를 볼 수 있을 거라고.


강은영 스포츠부 차장


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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