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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쇠락·약탈 견딘 8000년 역사의 시리아 '알레포', 이번엔 지진으로 찢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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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 7.8의 강진이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강타했다. 시리아 최대도시 알레포의 유적도 큰 피해를 입었다. 인프라는 내전으로 이미 무너진 상태였다. 툭하면 정전에 콜레라마저 돌고 있었다. 그런 곳에 지진이 겹쳤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영상에는 건물이 무너져 주민들을 덮치는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AFP통신은 가족 12명을 잃은 남성의 절규를 전했다. "잔해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구출할 방법이 없다. 구해줄 사람도 없고 장비도 없다." 얼어붙은 날씨와 비바람마저 구조를 방해한다. 내전 기간 도시에서 공방이 벌어지는 동안 어떤 이들은 20여 차례나 피란길에 올랐다 돌아오길 반복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는 난민이 아닌 지진 이재민이 됐다.
자국민을 학살한 바샤르 알 아사드 독재정권은 지진 발생 직후 국제사회에 도움을 호소했다. 아사드 정부를 지원해온 이란과 러시아는 물론이고, 그간 시리아를 제재해온 나라들도 인도적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지진이 나면 어디든 그렇듯 도로와 전기와 통신망이 무너져 구호에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알레포 북쪽 일부 지역은 이웃한 튀르키예와 작은 도로 하나로만 연결된 오지나 다름없어서 구호품이 가기조차 힘들다 한다. 수천 년 '문명의 교차로'였던 곳이 21세기에 맞고 있는 현실이다.
알레포에서는 지진 얼마 전에도 5층 아파트가 무너져 7가구 17명이 숨졌다. 야권 성향 웹사이트 오리엔트넷은 내전 때 정부군이 폭격을 쏟아부어 건물들이 약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야권은 아사드 정부가 알레포의 '역도들'에게 보복하기 위해 인프라 복원을 미적거리고 있다고 비난한다.
알레포. 수도 다마스쿠스와 함께 시리아의 양대 도시다. 인구는 알레포가 더 많다. '레반트'로 불리는 지중해 동부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다. 동쪽으로는 사막 건너 이라크가 있고, 서쪽으로는 올리브밭이 이어진 구릉을 지나 지중해가 나온다. 해발고도 400m 정도의 고지대에 강둑을 따라 지어진 구시가지가 있다. 이슬람제국 시절의 통치자였던 '맘루크'들이 세운 성벽이 지름 10㎞의 원형에 가까운 구시가지를 에워싸고 있다. 현대에 들어 도시가 커지면서 지금은 190㎢ 면적에 2021년 기준 200만 명이 사는 대도시가 됐다.
아랍어 이름은 '할라브', 프랑스식으로는 '알라프'다. 20세기 초반 프랑스 점령기에 그 이름이 퍼졌다. 이곳에 둥지를 튼 첫 고대 문명의 주역은 아모리인들이었는데 그들 말로 쇠나 구리를 뜻하는 단어에서 나왔다는 얘기가 있다. 고대 중동의 언어인 아람어와 히브리어, 아랍어에서는 할라브가 흰 것이나 우유 따위를 뜻한다. 13세기 북아프리카 여행가 이븐 바투타가 저서에서 소개한 일화에 따르면 유대-기독교-이슬람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이 가난한 사람을 먹이려 이곳에서 양의 젖을 짰기 때문에 양젖을 뜻하는 이름이 붙었다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원이 어찌됐든 중동과 지중해의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겐 살면서 꼭 한번은 가보고 싶은 도시일 수밖에 없다. 커피빛 외관의 환상적인 구시가지와 아름다운 수끄(가게)들, 아라베스크 타일로 장식된 모스크, 파란 하늘 아래 우뚝 솟은 시타델(성채). 알레포를 검색해보면 나오는 사진들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의 하나'라는 수식어가 이 도시엔 늘 따라붙는다. 8,000년 전부터 사람들이 살았다. 5,000년 전 메소포타미아의 쐐기문자 점토판에도 이 도시가 언급돼 있다. 여러 무역로가 만나는 알레포는 히타이트, 아시리아, 아카드, 그리스, 로마, 우마이야, 아유브, 맘루크,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으며 기나긴 세월을 보내왔다. 그러니 거의 전역이 문화재나 다름없다. 알레포 구시가지를 1986년 세계유산으로 지정한 유네스코 설명에 따르면 "시타델과 12세기의 모스크와 16, 17세기의 마드라사(이슬람 학교)들과 주택들과 대중목욕탕들, 살라딘이 십자군과 싸워 승리한 뒤 세운 요새, 아랍 최전성기의 군사시설인 방어벽과 도랑과 관문 등은 (...) 인류의 보편적인 유산으로서 두드러진 가치를 지니고 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서 마녀들에게 시달리던 선박 '타이거'호가 영국을 떠나 향했던 곳이 알레포였다. '오셀로'의 주인공 오셀로의 마지막 대사에도 이 도시가 나온다. "한 가지 더 전해 주오, 내가 한때 악독한 튀르키예인이 알레포에서 베네치아인을 때리는 것을 보고 그의 목을 찔렀노라고." 셰익스피어가 이런 구절을 쓰고 있던 시절에 알레포는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과 이집트의 카이로에 이어 오스만제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였다.
그러나 19세기 말 수에즈운하가 개통되면서 무역항으로서 알레포의 번영기는 끝났다. 1차 세계대전 뒤 오스만제국이 무너진 뒤로는 더 쇠락했다. 드넓은 북부 배후지는 튀르키예 땅이 됐고 알레포는 떨어져 나와 시리아에 귀속됐다. 지금은 해안선에서 120㎞ 떨어진 내륙도시다. '바그다드 철도'로 이어져 있던 이라크와의 사이에도 국경선이 그어졌다.
다마스쿠스가 독립한 시리아의 중심이 된 것도 알레포에는 불운이었다. 현대 시리아는 다마스쿠스 권력과 그에 밀려난 알레포 세력의 갈등 속에 형성됐다. 당초 독립 시리아의 수도는 알레포였는데 다마스쿠스 세력의 힘이 커지면서 수도가 바뀌었다. 결정적으로 알레포 세력이 힘을 잃은 것은 1970년대 하페즈 알 아사드 집권 이후였다. 쿠데타로 전권을 장악한 그는 다마스쿠스 유력자들의 지지를 발판 삼았다. 다마스쿠스는 정치의 중심이 됐고 알레포는 반란의 도시가 됐다. 1970~1980년대 군부정권에 맞선 이슬람 진영의 봉기가 알레포에서 몇 차례나 일어났으나 무참하게 짓밟혔다. 하페즈의 아들이 바샤르 알 아사드 현 대통령이다. 독재에 맞선 알레포의 투쟁과 탄압의 역사는 '아랍의 봄' 이후에 시작된 게 아닌 것이다.
권력에서 밀려난 것이 알레포의 유적과 전통이 살아남는 데에는 도움이 됐다. 오래전부터 아랍 무슬림, 쿠르드, 유대인, 유럽인, 아르메니아인, 정교도와 가톨릭 신자들이 함께 살아온 곳이라 다채로운 언어와 종교와 문화가 공존해왔다. 개발에선 뒤처졌지만 성채와 모스크와 교회당들이 도시의 존재 증명이 되어줬다. 2006년 유네스코로부터 '이슬람의 문화 수도' 타이틀을 얻었고 문화유산 복원 바람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2011년 아사드 독재 정권에 맞선 민주화 운동으로 시작된 내전은 시리아를 피투성이로 만들었다. 아사드 정부는 반군을 몰아낸다며 알레포까지 폭격하고 구시가지 골목들에 '통폭탄'을 투하했다. 2012~2016년 격렬한 교전으로 3만 명 이상이 숨졌다.
알레포 역사와 문화의 중심인 시타델은 역사가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르메니아, 그리스, 비잔틴, 아유브, 맘루크, 오스만 등등의 건축물이 쌓이고 모여 오늘날의 문화유산이 됐다. 내전이 잦아들고 시타델도 2018년 다시 문을 열었는데 이번엔 지진이 들이닥쳤다. 시리아 유물관리국은 페이스북을 통해 시타델의 13세기 구조물 일부가 무너졌고 아유브 모스크와 성채 입구도 손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1822년에도 알레포에서 대지진이 일어났었다. 그 재난을 견뎌낸 시타델이 100년 만에 다시 충격을 만난 것이다.
유적도 중요하지만 가장 안타까운 것은 그곳 사람들이다. 19세기 말 중동에서 가장 오래된 상공회의소 중 하나가 설립됐을 정도로 알레포는 뿌리 깊은 상업의 역사를 갖고 있다. 내전 전에 알레포는 산업의 중심지였고 시리아 전체 제조업 고용의 절반을 차지했다. 하지만 2020년에는 빈곤율이 80%에 이르렀다. 정치적 혼란도 계속되고 있다. 알레포 도시 중심부는 정부가 장악했지만 외곽은 다르다. 북부에서는 튀르키예군이 개입하고 튀르키예군이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해 친튀르키예 무장세력을 지원한다. 또 친튀르키예 지방의회를 만들어 쿠르드 자치정부를 견제한다. 튀르키예 물건도 판다. 이탈리아 피에솔레 유럽대학교 연구팀이 알레포 재건 상황을 조사해 2021년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북부 지역은 튀르키예 땅이나 다름없다.
튀르키예를 등에 업은 시리아국민군(SNA)이나 시리아임시정부(SIG) 같은 무장세력은 지방정부인 동시에 약탈자다. 세금을 걷고 전기와 물을 공급하고 치안을 담당한다. 그러면서 밀수를 하고 주민들을 뜯어먹는다. 때론 민가를 쳐들어가는 '타피쉬', 문자 그대로의 약탈도 저지른다. 국제위기그룹(ICG)이 지난해 5월 내놓은 보고서에도 비슷한 상황이 적혀 있다. 정부군 지역에서는 정부군이, 그 주변에서는 친정부 민병대가, 반정부 지역에서는 반군 무장세력이 약탈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전이나 지진보다 알레포를 더 파괴하는 것은 어쩌면 재건이라는 이름의 폭력일 수도 있다. 정부가 인프라를 복원하지 못하자 수도와 전기와 하수처리 등은 민간 기업들에 맡겨졌다. 토지와 주택은 외국인들 손으로 넘어가고 있다. 알레포의 재력가들과 기업인들은 내전 때 대거 외국으로 떠났으며 그들 상당수는 정권의 보복이 두려워 귀환하지 않았다. 그 빈자리를 외국의 큰손들이 메우고 있다. 관리들과 친정부 민병대 출신들이 내전 시기 반정부 활동을 들며 협박해 주민들 재산을 가로채는 일도 흔하다고 한다.
온갖 세력이 도적질에 나서니, 알레포의 재건과 관련해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약탈'과 '포식'이다. 문화유산의 운명도 포식자들 앞에서 흔들리고 있다. 원래는 이슬람 자선기금 '와크프'들이 역사적 건물들의 60%를 소유하고 지킴이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폭탄을 퍼붓던 정부는 이제 알레포를 재건해야 한다며 '외국투자유치'를 내세운다. 중국, 러시아, 레바논, 이란의 투자자들이 시리아 자산을 사들이고 있다.
특히 내전 기간 아사드 정부의 생명줄이었던 러시아는 이제 채권자로 군림하고 있다. 야권 언론 시리안옵저버는 알레포에 전기를 공급할 발전소 건설 계약이 러시아 기업에 돌아갔다고 최근 보도했다. 시리아 유적을 누가 복원할 것인가까지도 러시아가 정한다. 시리아 유물 전문가는 몇 해 전 독일 공영 도이체벨레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우리와 오래 일해온 독일 고고학자들이 아닌 폴란드 전문가들이 팔미라의 유적을 복원해야 한다고 지정해줬다"고 말했다. 그 주변 크라크 기사단 성채는 "헝가리인들 손에 맡기라"고 했다고 한다.
내전 때 참혹하게 파괴된 중부 도시 하마에서는 부서진 유적터에 빌딩들이 올라가고 있다. 알레포도 그렇게 될까. 콘크리트 더미에 깔려 죽어가는 아이들, 추위에 떠는 이재민들, 부서진 성채, 빌딩이 올라가는 도심, 밀수로 돈 버는 장사꾼과 군벌들. 내전이 남긴 난해한 모자이크다. 그래도 수천 년 세월을 살아온 알레포는 이 모든 위기를 이겨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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