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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세대도 등 돌렸다… '죽음의 골짜기' 지나는 정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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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정의당의 월평균 적자 규모는 1억 원이다. 선거비용으로 발생한 43억 원의 빚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고금리 시대로 접어들면서 정의당은 특히 힘겨운 시절을 보내고 있다.
정의당이 빚더미에 앉게 된 건 초유의 참패를 기록했던 2020년 총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선거에 출마한 정의당 대다수 후보자들은 득표율이 저조해 선거비용을 한 푼도 보전받지 못했다. 지난해 대선과 6·1지방선거에서도 연달아 최악의 성적표를 기록하면서 빚은 줄어들 줄을 몰랐다. 진중권 광운대 교수 등 유명한 당원들이 '월 1만 원 특별당비' 모금운동까지 벌였지만 역부족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총선 이후엔 당비를 내는 당원 수도 급감해 한때 1만8,000여 명까지 쪼그라들었다. 당비는 정의당 수입의 60%를 차지한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정의당은 지난해 8월 서울 여의도에 있는 중앙당사(동아빌딩) 사무실 규모를 3분의 1로 줄여 연간 1억 원의 임대료를 아꼈다. 중앙당 소속 당직자 수도 15명가량 줄였다. 노동권 보호에 앞장섰던 정당으로선 뼈아픈 조치다. 당내에선 "2012년 당이 생기고 나서 힘들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지금처럼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는 때는 없었다"는 말이 나온다.
정의당이 이토록 침체의 늪에 빠진 이유는 유권자들로부터 외면받고 있어서다. 특히 진보정당의 전통 지지층인 2030세대의 관심에서 멀어진 영향이 컸다. 지난 3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18~29세의 정의당 호감도는 19%로,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24%)보다 낮았다. 30대에서도 국민의힘(21%)과 민주당(33%)이 정의당(17%)보다 호감도가 높았다. 문제의 심각성은 2030세대의 정의당 호감도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중장년층이 보여준 정의당에 대한 호감도(40대 22%, 50대 25%, 60대 21%)보다도 낮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정의당은 주력 지지층을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일보는 정의당을 바라보는 2030세대의 속마음을 듣기 위해 지난 1일부터 이틀간 서울 대학가와 'MZ세대'가 밀집한 번화가로 나섰다. 현장 인터뷰와 전화통화, 서면 질의응답으로 만난 2030세대 24명은 각자 다양한 이유에서 실망감을 표출했다. 이들의 목소리는 올해 재창당을 통해 환골탈태를 도모하는 정의당의 진로 모색에 적잖은 시사점을 제시한다.
정의당 당원이었던 프리랜서 A(32·남)씨는 1년 전 탈당했다.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A씨는 탈당 이유에 대해 "정의당이 사회적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발굴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 역할은 멈췄고, 정의당만의 담론을 만드는 것도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총선 때까진 정의당에 투표해 왔으나 지금은 지지를 철회했다는 직장인 B(30·여)씨는 "정의당이 무엇을 하고 있고, 누구를 대표하며, 방향성은 어디로 잡고 있는지가 불분명하다"면서 "당이 초창기부터 끌고 간 노동 의제도 희미해졌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정의당의 정체성 논란은 침체 원인 분석에서 '0순위'로 꼽히는 요인이다. 정의당이 지난해 7월 당원 843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당의 호감도가 낮아지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이념 및 정체성이 선명하지 않아서'(29%)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김윤철 경희대 교수는 "유권자들이 정의당을 국회로 보낸 이유는 국민의힘이나 더불어민주당이 돌보지 않는 사회의 빈 곳을 채워달라는 것이었는데, 성과를 보여주는 데 거듭 실패하면서 효능감과 투표 유인을 떨어트렸다"고 평가했다.
정의당이 노동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도 비판이 있었다. 직장인 C(31·남)씨는 "당이 전통적인 노동조합과의 관계는 신경 쓰고 있지만, 그런 노조에 들어가지 못한 노동자의 처우개선에는 힘을 쓰고 있지 않는 듯하다"며 일침을 가했다. 이런 문제의식은 진보진영도 공감하고 있다. '진보정치 1세대'를 이끈 천영세 전 민주노동당 대표는 "진보정당의 소명은 노동자와 빈민 등 민중의 삶을 살피는 것인데, 민중의 형태는 계속 변하고 있다"며 "특히 정규직·비정규직의 구분을 넘어 분화하는 노동계층을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년들은 특히 정의당의 정체성 혼란이 민주당과의 차별화 실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었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앞에서 만난 대학원생 D(20대 후반·남)씨는 '조국 사태'를 계기로 더 이상 정의당에 투표하지 않는다. 그는 "정의당은 당명과 달리 전혀 정의롭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2030세대의 눈에 조국 사태는 공정에 반하는 사건이었는데, 민주당을 편드는 정의당을 보며 손절했다"고 쏘아붙였다. 대학생 E(24·여)씨도 "정의당이 진보 지지층의 표를 의식한 나머지 당이 추구하는 공익적 가치에 반하는 주장을 펼치는 것을 보고 다른 당에 투표하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정의당의 조국 사태 옹호를 위기의 시발점으로 지목한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는 "지난 총선을 앞두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절실했던 정의당은 조국 사태 국면에서 민주당과 공조를 택했는데 결과적으로 '당리당략에 의해 불의에 침묵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지지층을 잃었다"고 분석했다. 정의당 당원 사이에서도 '정의당이 가장 잘못한 일'로 '조국 장관 옹호'(48.7%)를 꼽았다.
정의당의 페미니즘 정치는 특히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거부감이 심한 '뜨거운 감자'였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에서 만난 직장인 F(36·남)씨는 "정의당이 '래디컬(급진) 페미니즘' 정책에 힘을 싣는 듯한 인상을 받으면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겼다"고 털어놨다. 지지를 철회한 대학생 G(21·남)씨는 "성평등이 중요하다는 주장에 공감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의당이 보편적인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젠더 이슈를 1순위에 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대학생 H(21·남)씨도 "노동운동가를 대표하는 노회찬 의원이 사망한 뒤 정의당은 노동 이슈에 집중하기보다 젠더 문제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천 전 대표는 "진보정당이라면 모름지기 그 어떤 당보다 페미니즘을 지향해야 하지만, 당의 전통적 가치인 노동자 중심성은 굳건히 세운 상태에서 균형감 있게 다뤄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역과 현장에서 정의당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많았다. 풀뿌리 정당으로 상향식 민주주의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일보가 만난 청년들도 10명 중 9명꼴로 "누가 우리 지역의 정의당 정치인으로 활동 중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서울 구로구에 사는 대학생 I(24·남)씨는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홍보 플래카드는 길거리에서 자주 보이는데 정의당 이름이 들어간 현수막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취업준비생 J(27·남)씨는 "정의당이 지방선거에서 기초단체장조차 한 명도 당선시키지 못한 이유는 원내 정치에 집중하는 과정에서 소도시, 지역 주민들과 멀어졌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A씨도 "선거 때 정의당 후보들의 공약집과 토론회 발언을 보면 지역 의제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고 거들었다.
지역 기반의 취약성은 정의당의 고질적인 약점으로 꼽힌다. 지금도 '여의도 중심 미디어 정치 정당' '비례의원 정당'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문정은 정의당 광주시당위원장은 "진보정당의 무기였던 지구당 제도가 폐지된 이후 지역 정치 활동에 제약이 커졌고, 낙선이 거듭되면서 지역의 차세대 정치인을 발굴하는 일도 어렵다"고 전했다.
이런 현실 탓에 당내에선 "지역 풀뿌리 단계부터 기초체력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비등하고 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수도권 지역 유일한 당선자인 김종호 인천 동구(가) 구의원은 "정의당 간판을 달고 첫 출마를 했을 때 당선은 쉽지 않았다"며 "최소 10년을 잡고 기초의원 단계부터 주민들에게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한울 한국리서치 전문위원도 "정의당은 유권자 입장에서 국정운영 경험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면서 "기초의회와 기초단체장부터 섭렵해 나가며 실력을 쌓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번에 만난 2030세대는 정의당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이구동성 심상정 의원을 지목했다.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에서 만난 대학생 K(24·남)씨는 "정의당이라고 하면 심상정 의원 말고는 '네임드(유명) 정치인'이 떠오르지 않는다"며 "걸출한 인물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정의당=심상정 1인당'이라는 냉소적 반응도 적지 않았다. 그만큼 '포스트 노회찬·심상정 시대'를 이끌 차세대 리더가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인물난은 정의당 침체의 핵심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서 만난 대학생 L(21·남)씨도 "'6411번 버스 연설'로 큰 울림을 줬던 노회찬 의원이 돌아가신 뒤로는 정의당 소식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됐다"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정의당 당원들도 "전략의 부재와 함께 전력(인물)의 고갈도 심각하다"는 진단에 동의한다. 한 지역위원장은 "스포츠로 따지면 주전 선수가 없는 상황인데도 당은 평소 선수 발굴이나 육성에 관심이 없다가, 선거가 임박해서야 출마자를 물색하는 행태를 10년째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정의당이 총선 때 화제성 인물을 낙하산 방식으로 영입하다 보니 지역에서부터 단련된 큰 정치인을 배출하지 못하는 악순환을 밟고 있다"고 지적했다.
청년들이 이렇듯 정의당에 실망했다고 해서 제3당 필요성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거대 양당 중심의 정치구조는 다양한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에서 만난 대학생 M(24·여)씨는 "한국의 거대 양당(국민의힘·민주당)은 모두 우편향돼 있어 다양한 의제를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좌파, 진보 계열 정당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연세대생 N(21·여)씨도 "정의당이 의석이 적어 국회에서 큰 역할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거대 양당을 견제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서는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 길을 넓히기 위한 선거제도 개편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제도 개혁만큼이나 제3당 스스로가 경쟁력 확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주문이 적지 않다. 정의당 지도부 출신 관계자는 "선거제도가 개선될 것이라는 식으로 나무에서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정당은 존립이 불가능하다"며 "오직 민생 능력을 입증할 때 당의 기반도 강화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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