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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간토대지진 때 일본 군대가 조선인 학살”… 일본 정부 문서 나왔다

입력
2023.02.09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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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일본 중앙방재회의 작성 보고서에 살상자 수 기록
간토 학살 다룬 국내 다큐 영화 '1923'이 문서 존재 확인
일 정부는 개입 부인이 공식 입장... 책임 인정, 사과 목소리

스즈키 준 도쿄대 교수가 일본 도쿄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1923' 제작진을 최근 만나 자신이 집필한 간토대지진 보고서를 설명하고 있다. 김태영 감독 제공

스즈키 준 도쿄대 교수가 일본 도쿄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1923' 제작진을 최근 만나 자신이 집필한 간토대지진 보고서를 설명하고 있다. 김태영 감독 제공

1923년 일본 간토대지진 당시 발생한 조선인 학살 사건에 일본 정부가 개입했음을 인정하는 공식 보고서의 존재가 확인됐다. 일본 정부는 조선인 학살 사건과의 연계성을 그동안 부정해 왔다. 간토 학살 사건 발생 100년을 맞아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더 높아지게 됐다.

8일 국내 다큐멘터리 영화 ‘1923’ 제작진이 한국일보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09년 일본 정부 중앙방재회의가 발행한 '간토대진재(대지진)' 보고서에 일본 군대에 의한 조선인 피살자 수가 명시됐다. 일본 군대의 조선인 학살은 정설로 받아들여지나 일본 정부 문서에서 이를 인정하는 내용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간토대지진 보고서는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 발생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과거 재해에 관한 사실을 정리해 다시 재해가 발생했을 때 참고하자는 취지였다. 보고서는 3권으로 나누어 발행됐고, 스즈키 준(일본 근대사 전공) 도쿄대 대학원 인문사회계연구과 교수가 주도해 집필한 제2권 보고서에 군대의 조선인 학살 내용이 담겼다.

스즈키 교수가 ‘1923’ 제작진에게 공개한 보고서에는 군대에 의해 살해(보고서는 살상으로 표기)된 조선인이 도쿄에서 27명, 지바에서 12명, 총 39명으로 기록돼 있다. 스즈키 교수는 “숫자는 ’계엄업무상보(戒厳業務詳報)'라는 계엄사령부의 문서를 조사한 결과 나온 것”이라며 “등사판 인쇄로 당시 관계기관에 배포된 문서 사료”라고 제작진에게 밝혔다. 그는 “당시 군과 경찰의 여러 자료들을 인용해 군과 경찰에 의해 살해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며 “자료에 나오는 숫자가 모든 희생자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서에 썼다”고 덧붙였다. 군대가 조선인 학살을 한 것은 맞으나 실제 피살자 수는 기록보다 더 많다는 이야기다.

스즈키 교수는 “군과 경찰, 시민이 함께 예외라고 말하기 어려운 규모로 무력과 폭력을 행사했다”며 “조선인 박해라는 문제를 정부 보고서에 확실하게 적어 넣어 교훈의 하나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점은 의미가 크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스즈키 준 도쿄대 교수가 2009년 발행된 간토대지진 보고서에서 일본 군대의 조선인 학살자 수가 명시된 지점을 손가락으로 짚고 있다. 김태영 감독 제공

스즈키 준 도쿄대 교수가 2009년 발행된 간토대지진 보고서에서 일본 군대의 조선인 학살자 수가 명시된 지점을 손가락으로 짚고 있다. 김태영 감독 제공

간토 학살은 1923년 9월 1일 도쿄 등 간토 지역에서 발생한 규모 7.9 대지진 이후 일본인들이 재일조선인과 재일중국인, 사회주의 계열 자국민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한 사건이다. 일본 정부가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조선인이 방화한다’는 식의 유언비어를 퍼뜨리면서 자경단과 경찰, 군인에 의해 많은 조선인이 죽임을 당했다. 당시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은 조선인 6,661명이 학살된 것으로 추산했으나 피살 조선인 수가 2만3,058명(1924년 독일 외무부 사료)이라는 주장이 있기도 하다.

2003년 일본변호사연합회가 자체 조사를 통해 일본 군대와 자경단에 의해 자행된 학살 책임의 인정과 사죄, 진상조사를 일본 정부에 권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개입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축이 돼 간토 학살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추진되고 있다.

‘1923’은 간토 학살 100년을 맞아 기획된 영화로 올해 개봉 예정이다. 간토 학살 당시 조선인 생존자가 생전 일본 시민단체 봉선화 관계자를 만나 남긴 육성 증언, 한국과 일본 시민단체의 진상규명운동, 일본 내 추모 움직임 등이 담긴다. ‘1923’의 김태영 감독은 “간토 학살은 위안부와 강제징용에 버금갈 한일 간 주요 사안이나 식민시절 일본에서 벌어진 사건이라 관련 증거가 미약하다”며 “40년가량 진상을 밝히기 위해 투쟁해 온 한일 시민단체에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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