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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 뿌리 없는 尹, 대통령 지원할 여당대표 원하는 건 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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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원의 정치행간’은 국회와 정당, 대통령실 등에서 현안으로 떠오른 이슈를 분석하는 코너입니다. 정치적 갈등과 타협, 새로운 현상 뒤에 숨은 의미와 맥락을 훑으며 행간 채우기를 시도합니다.
국민의힘 3·8 전당대회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동력이 걸린 내년 총선을 지휘할 여당 대표를 뽑게 된다. 당원뿐만 아니라 이미 국민적 관심을 끌어모았다. 정당의 미래 비전이나 정책은 사라지고 오직 윤심(尹心)을 둘러싼 격렬한 내분으로 전락하면서다. 윤 대통령이 ‘친윤’ 김기현 후보를 여론조사에서 앞선 안철수 후보를 “국정운영 방해꾼이자 적”에 비유하고, 당 지도부가 안 후보에게 공개 경고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윤 대통령의 의중이 명확히 드러난 것이다. 김 후보를 통한 대통령 친정체제 구축이다. 이 과정에서 효과가 여론조사상 먹혀들고 있다. 물론 판세가 요동칠수록 투표율도 올라갈 것이다. 비윤계의 돌풍이 일어날 수 있을까. 지난해 윤석열 얼굴로 안철수와 단일화를 거쳐 정권탈환에 성공한 보수정당이 집권 후 재편과정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기로에 선 것이다. 이에 대한 친윤 진영의 속내를 들어봤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가 관건이다. 수직적 관계여야 할지, 보완적 파트너가 돼야 할지 상반된 시각이 존재한다. 친윤 핵심 의원은 8일 통화에서 “차기 대권에 도전할 사람이 대표를 맡으면 자기 선거를 위해 당을 이용한다”며 “그래서 대권주자가 당권을 맡지 말라는 게 ‘당권·대권 분리론’이다. 대통령과 당이 소통하면 안 된다는 얘기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10여 년 새 우리당이 극심한 혼란을 겪은 원인은 당청 간 엇박자이고 이 부분에 당원들의 우려가 크다”며 “윤 대통령은 집권 후 안 후보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는 생각을 분명히 가졌지만 인수위 시절도 그렇고 기회를 자기 것으로 못 만들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친윤 핵심 의원은 ’100% 당원룰’에 따라 투표할 책임당원들을 “정치 고관여층”으로 명명하며, 대통령을 어렵게 당선시킨 이들은 정권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이 강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자기 책임을 알고 있다”며 “그런데 이준석 비슷한 사람이 대표가 돼 레임덕에 빠지면 국민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게 된다.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대통령은 파트너가 될 수 있는 사람을 선호한다”고 강조했다. 총선은 대통령 중간평가라 당대표가 누구인지보다 당이 집안싸움을 안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준석 전 대표와 가까운 천하람 후보가 등장하면서 구도가 ‘친윤 대 반윤’으로 잡혔다며 안철수 표를 갉아먹게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면서 “황교안 후보를 지지하는 극우 성향 표가 안철수한테 가긴 힘들지 않겠느냐”며 “광화문 집회 때 가장 많이 상경하는 태극기부대가 대구경북(TK) 사람들이고 책임당원도 TK가 두드러진다. 이들은 김기현 쪽으로 수렴돼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비영남권 친윤 의원은 안 후보에 대한 대통령실의 공격을 “차기 주자가 집권당 대표가 되기는 시기상조”라면서 “아전인수겠지만 지금 벌어지는 정도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규정했다. 당이 미래 권력에 넘어가는 것이야말로 식물정권이 된다는 이유다. 그는 당 주류가 대통령실과 조율 아래 일사분란한 공천을 밀어붙여야 한다고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수도권 출신 대표가 개혁공천을 유별나게 하는 것도 아니다. 19대 총선 때 한명숙 대표가 이끈 민주당은 온갖 야권연대 이벤트를 펼쳤지만 박근혜의 새누리당에 참패했다. 20대 총선은 박근혜-김무성 갈등과 옥새파동까지 다된 밥에 재를 뿌렸다. 야당이든 여당이든 공천의 연착륙이 최고의 총선전략이다. 나경원 배제부터 시작해 좀 거칠더라도 대통령 뜻이 확실하게 전달되고 집권당 프리미엄으로 유능한 인물들을 발굴해 공천만 잘하면 총선은 승리한다.”
대통령이 집권 후 여당을 재편한 건 과거에도 익숙했다. 1997년 새정치국민회의로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18대 총선 때 열린우리당이라는 새 집을 지었다. 지금 ‘1위 후보 정리’ 방식으로 진행된 여당 재편 시도를 두고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민주화 전에는 총재인 대통령이 실질적 주주로서 당을 대리인한테 맡겼지만 지금 국민의힘 상황은 권위주의 시절 이상의 퇴보다. 정당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거의 보장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안철수-김기현 양강의 차이는 집권세력의 위계질서가 지켜질지, 당대표가 자기 정치를 할지 여부”라며 “만약 안철수가 되더라도 친윤 측이 대표의 손발을 묶어놓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선 개입’ 논란에 대해 다른 평가도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윤 대통령의 당무개입이라는데 대통령도 당원이다. 행정수반으로서 총선, 대선 같은 선거관리 중립과 1호 당원인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은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정치적 중립을 강조한다면 대통령을 탈당시켜야 맞다. 이준석 전 대표 체제에서 굉장히 힘들었기 때문에 여의도에 뿌리가 없는 윤 대통령이 자신을 지원해주는 여당을 바라는 건 당연하다”며 “‘윤핵관’ 명칭도 핵심 관계자가 없던 역대 대통령이 누가 있냐”고 반문했다. 그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달리 당 장악력이 떨어지는 윤 대통령은 자신의 의사표시를 직간접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며 “다만 과도한 측면이 있고 장기적으로 대통령 지지율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통령실과 당 지도부의 노골적인 안 후보 비난은 경선 판세의 위기감 때문이란 분석이다. 친윤계가 색깔론을 들고 나온 게 대표적이다. 정체성에 대한 공격과 논쟁은 역대 민주당에서도 흔한 풍경이다. 친윤 이철규 의원은 안 후보를 “공산주의자 신영복을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지목했다. 안 의원이 2016년 1월 고 신영복 전 성공회대 교수를 조문하며 “이렇게 맑고 선한 분은 없다”고 한 발언을 문제 삼은 것이다.
안 후보 선대위원장인 김영우 전 의원은 통화에서 이렇게 반박했다. “과거 민주당 쪽에 있을 때 조문 갔다가 한 얘기지 않나. 기업을 경영한 안 후보는 뼛속까지 자유민주주의자다. 보수를 뿌리로 하되 중도로 확장해 가는 데 안철수만 한 재목이 있나. 윤 정부가 성공하지 않으면 안 후보의 정치운명도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정권 초 당대표에 도전한 건 스스로 엄청난 모험이고 십자가나 다름없다. 내년 총선은 전쟁인데 스타성이 있는 안 후보가 수도권에서 한 표라도 더 가져온다. ‘이재명 민주당’에 가장 대비가 잘되는 쪽도 안철수다.”
색깔론의 파괴력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통보수 진영의 지지가 필요한 입장에서 한계에 부딪칠 수 있어서다. 한편에선 안 후보에 대한 보수정체성 검증과 ‘윤핵관’에 대한 비윤 후보들의 부정적 이미지 공략 중 어느 쪽이 파괴력이 클지에 승부가 갈린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 여권의 한 핵심 인사는 “골수당원층도 ‘윤핵관’에 부정적 프레임이 쌓여 분위기가 나빠진 건 확인된다”며 “호남 사람들처럼 TK 일부에서도 안철수가 나은 것 아니냐는 전략적 판단 정서가 있어 놀랐다. 그럴 경우 우리 내부적으로 굉장한 혼란이 생길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런 가운데 비수도권 친윤 의원이 털어놓은 복잡한 심경은 심상치 않게 들린다. 그는 “대통령 입장에선 무리가 따르더라도 지금처럼 밀어붙이는 게 맞다고 생각한 건데 잃는 것도 있다. 특정 후보를 인큐베이팅하는 과정에서 권력투쟁의 민낯을 보이게 돼 우려된다”며 “당원들도 국민이고 당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겠나. 안 후보가 되는 건 상상할 수 없지만 김 후보가 되어도 상처뿐인 승리에 비윤 측이 승복할지도 걱정이다”고 말했다. 전당대회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후유증을 수습하는 일이 간단치 않을 것이다. 친윤과 비윤이 향후 한 달을 어떻게 채워 나갈지 국민이 무겁게 지켜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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