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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원짜리 컵라면 최고 인기"… 탑골공원 앞 '어르신들의 당근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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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전 11시 서울지하철 1ㆍ3호선 종로3가역 1번 출구 앞. ‘노인들의 성지’로 불리는 탑골공원으로 가는 길목이다. 이곳에선 매일 이맘때가 되면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천이나 비료포대, 박스 등으로 좌판을 깐 노인들이 주섬주섬 물건을 하나둘씩 꺼내놓는다. 신발부터 모자, 가방, 시계, 전자기기, 망원경, 컵라면까지, 말 그대로 없는 게 없는 만물시장이다. 시끌벅적한 모습이 영락없는 ‘오프라인 당근마켓’을 연상케 한다.
고물가의 여파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최근 거리두기 해제까지 겹치면서 7080 어르신들마저 살림에 조금이라도 보태려 거리로 나서고 있다. 인근 도매 시장에서 물건을 떼어다가 싼 값에 되파는 이들도 있지만, 집에서 안 쓰는 물건을 가져와 흥정하는 노인들도 적지 않다. 그만큼 폭등한 물가를 버텨내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종로구 사직동 주민 김모(75)씨는 탑골 마켓 최강 셀러(판매자)다. 주력 상품은 컵라면. 식료품 회사에서 일하는 아들이 이따금 집으로 가져오는 제품을 개당 500원에 판다. 시중 판매가의 3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이라 금세 동이 난다. 김씨는 “먹지도 않고 집에 한 가득 쌓아둔 라면이 늘 골칫거리였는데 바람도 쐬고 용돈도 챙기니 일석이조”라며 웃었다.
경기 일산에서 온 김모(82)씨도 집에서 안 신는 구두와 향수 등을 들고 나왔다. 김씨는 “우리는 인터넷 등 온라인 거래에 익숙하지 않아 여기로 온다”고 했다.
시장이라고 해봤자, 가격이 저렴한 물건만 사고팔다 보니 큰돈을 버는 사람은 없다. 점심 값이나 차비를 해결하는 정도다. 더구나 노점이 열리는 시간은 오후 1시까지로 딱 두 시간이다. 오후 1시 30분이 되면 구청에서 예고 없이 단속을 나와 그 전에 자리를 정리해야 한다. 집 창고에 보관하던 중고 군용 가방과 중절모를 팔던 신모(80)씨는 “요즘 경기가 말이 아니지 않느냐. 자식들이 주는 용돈으론 부족해 나와 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인네가 벌면 얼마나 번다고 구청에서 단속까지 하며 과태료를 물리는지 모르겠다”며 마뜩잖다는 표정을 지었다.
구청도 나름의 사정은 있다. 엄밀히 말해 탑골공원 일대 노점은 무허가라 통행에 방해가 되는 데다, 좌판이 있는 대로변의 귀금속 상가 상인들이 영업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수시로 민원을 넣어 마냥 두고 볼 수는 없다. 한 상인은 “어르신들끼리 싸움을 하거나 흉기 같은 위험한 물건을 팔 때도 있다”고 불평했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요즘엔 하루 한 번꼴로 민원이 들어온다”며 “몇 차례 계도 조치에도 해결이 안 되면 판매 물품을 수거하는데, 과태료 10만 원을 안 내려 물건을 찾아가지 않는 분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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