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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포퓰리스트’일까

입력
2023.02.06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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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 전 볼리비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 사진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 전 볼리비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 사진

올겨울 난방비 대란이 다시 한번 ‘포퓰리즘’을 소환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주 “에너지 문제와 연관해서 포퓰리즘은 정말 민주주의를 해치는 가장 큰 해악”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가격 인상을 회피하고, 민주당이 난방비 대란과 관련된 지원을 위해 7조 원 규모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요청한 것을 비판하며 나온 발언이다. 한 총리는 이어 “충분히 할 수 없는 일을 인기만 얻기 위해 하는 것이 포퓰리즘의 본질”이라고 덧붙였다.

한 총리 정의에 따르면 실현 불가능함을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인기를 얻기 위해 정책을 밀어붙이는 정치인이 포퓰리스트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판별법으론 객관적으로 포퓰리스트를 골라낼 수 없다. 우선 그 정치인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어야 그가 ‘실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또 정책 실현 여부는 효과가 드러난 수년에서 수십 년 후에나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부고속도로를 구상하며 “철도망이 남북 중심으로 갖춰져 있으니, 도로는 서울과 강릉, 포항과 광주를 잇는 동서 방향으로 먼저 건설해야 한다”는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보고서를 무시했다. 또 1971년 대선 전까지 완공하기 위해 공기 단축을 서둘렀다. 이런 박 전 대통령을 1970년쯤에 한 총리 판별기준으로 평가했다면, 포퓰리스트란 평가를 피하기 힘들 것이다.

포퓰리스트를 구별하기 위해 정치인과 지지자들의 심리·태도나 정책의 현실성에만 매달려서는 헛다리 짚기나 누명 씌우기에 빠져들기 십상이다. 그래도 한 총리의 포퓰리즘 언급에서 곱씹어 볼 부분이 있는데, 바로 ‘포퓰리즘은 민주주의를 해치는 해악’이라는 것이다. 포퓰리즘은 민주적 법과 제도가 구성원들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때 싹튼다. 포퓰리스트는 그 간극 사이에서 기존 체제를 공격하며 불만 집단의 지도자가 되고, 때때로 집권에 성공한다. 이렇게 출현한 포퓰리스트 지도자라도 지지세력의 요구와 민주적 법 제도의 간극을 좁히려고 노력한다면, 그는 ‘민주적 지도자’로 평가할 수 있다. 반면 자기 지지세력만을 위해 나머지 구성원을 적으로 돌리고 민주적 법 제도를 위축시키려 한다면, ‘권위주의적 포퓰리스트’가 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 전 볼리비아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집권한 권위주의적 포퓰리스트의 명단은 자꾸 늘어나고 있다.

이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을 미 프린스턴대 정치학과 얀 베르너 뮐러는 ‘정치에 관한 특정한 도덕적 상상’이라고 말한다. 포퓰리스트들은 “도덕적으로 순수하고 단일한 국민이 부패하고 비도덕적인 기득권자나 외부자에 대항하는 것을 정치라고 인식”한다. 그래서 이들은 기득권만큼 다원주의와 비판 언론을 싫어한다. 뮐러의 정의로 보면 정치인이 ‘국민 가운데 일부만 진정한 국민’이라고 주장하고 있는지 따져보는 것이 권위주의적 포퓰리스트 판별의 핵심이다.

사회·경제적 어려움은 지난 정권 포퓰리즘 탓으로 돌리고, 같은 당내 정치인마저 ‘방해꾼이자 적’이라는 거친 표현으로 배제하려는 요즘 정부·여당의 행태에서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이 자꾸 보여 우려된다. ‘국민을 대표한다’며 반대세력을 악마화하려는 정치 행태는 단기간에 팬덤을 모으기 쉽다. 특히 민주적 제도가 제대로 작동 안 되고 양극화된 사회에서 더 그렇다. 굳건한 팬덤에 힘입어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은 얼마간 성공한 듯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결말은 정치인 본인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큰 상처를 남기게 된다. 최근 1심 유죄 판결로 일단락된 ‘조국 사태’가 남긴 교훈도 이것이 아닐까.

대체텍스트
정영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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