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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칼협 시대, 다정함이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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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아이씨, 좀 일어나라고!" 이어폰을 찢을 듯한 날 선 짜증에 걸음이 절로 멎었다. "평생 술로 살거야? 그만 쫑알대. 시끄러우니까!" 걱정이라 하기엔 연민이 실종됐고, 설득이라고 하기엔 존중이 결여된 비난과 경멸이 쉴 새 없이 귓전을 때렸다.
지난 연말 출근길, 서울역 3번 출구 지하도에서 맞닥뜨린 한 장면. 개찰구 주변에 자리 잡은 노숙인을 남성 두 명이 끌어내려 애를 쓰고 있었다. 시민들 통행에 방해될까, 행여나 노숙인이 다칠까 싶어 서둘러 상황을 정리하고자 그들은 일부러 더 센 말만 골라 쏘아붙이는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그 험한 말들이 울려 퍼지는 동안, 희끗한 머리의 노숙인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 아닌 당장이라도 세상에서 치워져야 하는 존재로 규정됐다. 동시에 그를 둘러싼 수많은 질문들도 지워졌다. 왜 별안간 거리에 나앉게 됐는지, 복지 시설의 도움은 받고 있는지 구조적 문제를 따지려는 노력은 설 자리가 없어 보였다. 노골적인 멸시와 하대도 의지박약한 노숙인이라면 마땅히 감내해야 할 몫처럼 주어졌다.
나부터 살아남는 게 지상 과제가 된 각자도생 사회, 나 아닌 남은 힘이 아닌 짐이 되는 시대다. 지난해 온라인 세상에서 가장 유행했던 밈인 '누칼협'(누가 칼 들고 협박함의 준말)은 "내 알바 아니다"의 조롱 버전으로 통했다. 소소한 일상 투정부터 불합리에 억울하다는 하소연까지, 다른 사람의 입을 틀어막을 때마다 누칼협은 소환됐다. "네 선택에 따른 책임이잖아, 그러니까 징징대지마."
누칼협은 이제 겨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약자들에게도 무참히 휘둘러졌다. 평생 갇혀 살 수만은 없다며 세상 밖으로 나오려는 장애인들의 정당한 외침과 국가의 무능에 스러져 간 자식들을 애도하겠다는 부모들의 마땅한 절규 앞에도 등장했다. 누가 장애인이 되래? 누가 사람 많은 데 가라고 등 떠밀었어? 혐오의 '무(無)논리'는 인간의 바닥을 또 한번 끌어내렸다.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누칼협 세상에서 가장 득을 보는 이들은 정치인이다. 그릇된 사회 구조와 제도를 뜯어고쳐야 할 사명을 다하지 않고도 모르쇠로 버틸 수 있어서다. 멀찌감치 서 팔짱 낀 구경꾼이 된 정치인들은 게으르고 뻔뻔해진다.
급기야 문제를 제기하는 존재를 지우려 든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이태원 참사 유족들의 요구에, 참사 발생 100일이 넘도록 답을 주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꿈쩍도 않고, 야당은 굼뜨니, 서울시는 추모 분향소마저 강제로 없애려들고 있다. 직무유기도 모자라 적반하장이다. "냉소주의는 우리의 적이 제일 좋아하는 것"(故 조세희 작가)이란 경고 그대로다.
누칼협의 비수 앞에서 자유로울 영혼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지금은 남의 고통일지 몰라도, 언젠가 나의 고통이 될 수 있다. 이태원 참사 전엔 세월호 참사가 있었다. 이태원 유족은 세월호 때 남의 일처럼 생각해서 죄송하다 했다. 그러니 서로 할퀴는 냉소 대신 서로 감싸는 온기를 건넸으면 한다. 방송인 이금희씨는 사람의 관계는 'TMI(Too Much Information)'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올해는 누칼협으로 응수하는 대신 당신의 TMI를 들려달라고 하면 어떨까. 누칼협에 맞설 진짜 무기는 다정함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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