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집 앞에 데이터센터 두고 어떻게 삽니까"…주민들은 왜 'IDC 결사 반대'하나

입력
2023.02.13 04:30
수정
2023.02.13 11:22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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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센터, 수도권 곳곳에서 주민과 갈등
4차 산업 꽃에서 혐오시설로 전락
주민들 "전자파·소음 등 우려"

경기 안양시 호계동 효성아파트에 '데이터센터 결사반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송주용 기자

경기 안양시 호계동 효성아파트에 '데이터센터 결사반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송주용 기자


데이터센터부터 집 앞까지 약 10m 거리입니다. 여기서 도대체 어떻게 삽니까.


겨울 칼바람이 몰아치던 1일, 경기 안양시 호계동 효성아파트에는 '데이터센터 결사반대'라는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었다. 3,500세대 전체가 똑같은 문구를 내걸었는데 주민들이 데이터센터(IDC)를 얼마나 반대하는지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이곳은 효성중공업과 싱가포르 데이터센터 서비스업체 STT GDC의 합작법인인 에브리쇼가 IDC를 지으려는 곳이다. 부지 면적만 1만2,627㎡에 이른다. 계획대로라면 높이 62m에 지하 2층~지상 8층 규모 건물이 들어선다.

주민 김모(72)씨는 "제발 살려달라. IDC를 머리 위에 두고 어떻게 사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IDC를 세우려는 기업과 지역 주민의 충돌이 호계동뿐만 아니라 수도권 곳곳에서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다. 대체 주민들은 4차 산업의 필수품이라 불리는 IDC가 들어서는 것에 왜 강하게 반발하는 것일까.



①IDC 위치…"집, 학교 근처는 절대 안 돼"


경기 안양시 호계동 효성아파트 주민 집에서 찍은 에브리쇼 IDC 건설 부지. 펜스가 둘러싼 곳이 IDC 건설 부지로 아파트 입구와 도로 하나를 두고 마주보고 있다. 송주용 기자

경기 안양시 호계동 효성아파트 주민 집에서 찍은 에브리쇼 IDC 건설 부지. 펜스가 둘러싼 곳이 IDC 건설 부지로 아파트 입구와 도로 하나를 두고 마주보고 있다. 송주용 기자


호계동 주민들은 ①IDC 위치를 문제 삼고 있다. 에브리쇼 IDC가 들어서는 부지 자체가 수천 세대가 거주하는 아파트와 너무 가깝다는 입장이다. 효성아파트 1단지 입구에서 IDC 부지까지 걸어 보니 열두 걸음이었다. 주민들은 약 10m 거리라고 주장한다.

2029년까지 새로 들어설 IDC의 80%가량은 수도권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주거지 인근 IDC로 인한 갈등이 여러 건 발생하고 있다. 20년 전부터 이 동네에서 살았다는 조모씨는 "손자가 다니는 학교와 IDC 부지가 직선 거리 160m"라며 "전문가들은 안전하다고 하지만 백혈병을 앓고 있는 손자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노국천 호계효성아파트 비상대책위원장은 "IDC 위에서 24시간 돌아가는 냉각탑도 문제"라며 "냉각탑이 밤새 돌아가서 소음도 걱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아파트 단지 앞에 대형 건물이 들어서면 일조권이 침해된다"고 날을 세웠다. 주민들은 현재 안양시와 효성그룹 등을 상대로 1인 시위와 단체 시위, 거리집회 등을 진행하고 있다.



경기 안양시 호계효성아파트 주민들이 데이터센터 건립 반대 시위에 나선 모습. 주민 제공

경기 안양시 호계효성아파트 주민들이 데이터센터 건립 반대 시위에 나선 모습. 주민 제공



②특고압선 문제…"특고압선 전자파 위험"


경기 안양시 평촌동 부림초등학교와 부림중 사이 왕복 4차로 길 밑으로 LG유플러스 IDC에 전력을 공급할 특고압선이 들어가고 있다. 주민 제공

경기 안양시 평촌동 부림초등학교와 부림중 사이 왕복 4차로 길 밑으로 LG유플러스 IDC에 전력을 공급할 특고압선이 들어가고 있다. 주민 제공


안양시 평촌에는 LG유플러스 제2 IDC가 들어서고 있다. IDC 입지는 주거 지역과 떨어져 있지만 ②IDC에 전력을 공급하는 특고압선을 둘러싼 갈등이 심각하다. IDC는 24시간 가동되는데 내부 온도와 습도 조절이 중요하다. 데이터센터 1개가 쓰는 전력량은 1년에 25기가와트시(GWh)로 6,000세대가 1년 동안 사용하는 양과 맞먹는다.

평촌 IDC 현장을 가 보니 부림초등학교, 부림중 사이를 관통하는 왕복 4차로 도로 밑으로 IDC에 전력을 공급하는 관로 공사가 이뤄진 상태였다. 주민 안동일(51)씨는 "많은 전력이 들어가는 특고압선이 초등학교와 중학교, 주거지역을 뚫고 가고 있다"면서 "이 위를 매일 걸어다녀야 할 아이들 건강이 제일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곳 주민들은 특고압선 문제를 지적하는 전단지를 만들어 아파트 세대마다 붙이고 한 달에 한 번 촛불집회도 갖고 있다. 주민들의 단체 대화방에는 IDC 공사 현장 사진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지난달 31일에는 감사원에 감사청구서도 냈다. 김정아 안양 특고압 반대 시민모임 대표는 "IDC 허가 과정에서 시와 구청의 행정 절차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달라는 내용"이라며 "주민 3,500여 명의 서명을 받았다"고 전했다.



"아파트 베란다와 특고압선 매설지 5m"


경기 용인시 죽전동 한 아파트 단지 앞에 '주민건강 위협하는 초고압선 결사반대'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송주용 기자

경기 용인시 죽전동 한 아파트 단지 앞에 '주민건강 위협하는 초고압선 결사반대'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송주용 기자


용인시 죽전동도 IDC 특고압선이 문제가 됐다. 이곳에는 '퍼시픽 써니 데이터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연면적 3만6,130㎡ 규모로 지하 2층~지상 6층 규모다. 거리 곳곳에 '주민건강 위협하는 초고압선 절대반대', '데이터센터 결사반대 허가취소 당장하라'는 대형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주민들은 지방자치단체와 기업이 밝힌 특고압선 매립 위치가 아파트 베란다와 불과 5m 떨어진 곳도 있고 초·중·고등학교 9개와 유치원 등 교육시설이 밀집했다고 주장했다.

주민 강모(42)씨는 "근처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14년 동안 특고압선 근처에서 살아야 한다""암 같은 큰 병에서 겨우 건강을 되찾은 주민들도 불안해한다"며 눈물을 쏟았다. 또 다른 주민 조모(42)씨도 "아이들을 위해 특고압선 매설 위치라도 바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죽전동 시민들은 학부모 1,400여 명의 서명을 받아 IDC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민협의체 구성을 준비 중이다.



"전자파 위험·소음 피해 적을 것"


경기 안양시 평촌 한 아파트 단지에 붙은 데이터센터 반대 전단지. 주민 제공

경기 안양시 평촌 한 아파트 단지에 붙은 데이터센터 반대 전단지. 주민 제공


다만 IDC업계는 주민들과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 업계 전문가는 "지하에 매설된 전선의 전자파는 인체에 특별한 영향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IDC에 올라가 보면 냉각탑 소리는 에어컨 실외기에서 나는 정도"라며 "주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시끄러움을 느끼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지자체도 IDC 설립에 법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안양시 관계자는 "IDC 허가를 낼 때 절차적으로 문제가 없었고 측정되는 전자파도 기준치 이내이기 때문에 하자는 없다"고 설명했다. 용인시 관계자도 "행정 절차나 관련 기준에 어긋난 점은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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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르포] "집 앞에 데이터센터 두고 어떻게 삽니까"…주민들은 왜 'IDC 결사 반대'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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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용인= 송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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