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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을 힘차게 맞이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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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이 시작되었다. '시작'이라는 말이 2월만큼 안 어울리는 달이 또 있을까? 2월과 11월은 참 여러모로 애매한 달이다. 1월은 시작이고 12월은 끝이며, 3월과 4월은 생동하는 봄이고 9월과 10월은 풍성한 가을이다. 6월, 7월, 8월은 불타오르는 젊음의 여름이고 5월은 계절의 여왕인데 이렇게 이름과 색깔을 입히다 보면 2월과 11월만 아무도 팀에 끼워주지 않아 경기장 밖에 오도카니 남은 아이들처럼 서성거리고 있다.
그래도 11월은 단 하루의 국경일도 없이 가득 채운 노력과 성실의 상징이고, 회사도 학교도 눈 돌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시절이니 나름의 미덕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2월은 어떤가? 다른 달보다 이틀, 많으면 사흘이나 적은 '모자란 달'이다. 그나마 일관성도 없어서 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윤년에는 못난 아이 떡 하나 더 받는 느낌으로 '옜다!' 하고 하루가 늘어나는데, 그래봐야 29일밖에 안 되는 주제에 사람 헷갈리게까지 하니 언제나 절뚝거리는 느낌이다.
생각해보면 이런 애매한 느낌의 가장 큰 부분은 우리나라의 학제 탓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9월에 새 학년이 시작되는 미국이나 4월에 시작되는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3월에 새 학년이 시작되다 보니 그 직전인 2월은 모든 일들이 '잠정적'인 상태에 놓이게 된다. 지나간 학년은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상태로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고, 새 학년에서 어떤 학급, 어떤 선생님, 어떤 친구들을 만나게 될지는 모두 미지수인 가운데 학교는 방학도, 방학이 아닌 것도 아닌 상태가 된다. 열흘 남짓 이어지는 애매한 수업과 그 사이에 놓이는 짧은 봄방학에 공중에 붕 뜬 것 같은 미묘한 어지러움은 나만 느낀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더 큰 혼란을 느끼는 것은 중고등학교나 대학교에 새로이 진학하게 되어 자신을 규정하는 신분 자체가 바뀌는 학생들일 것이다. 2월의 학생들은 고등학생도 대학생도 아닌 중간적 신분이 되고 무언가를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에 불안감에 휩싸여 괜스레 책장에 꽂힌 참고서만 뺐다 꽂았다를 반복하곤 했다.
그러고 보니 2월을 맞이하는 이 싱숭생숭한 마음의 정체는 '애매함'이기보다는 '불안'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더 이상 과거의 나로 남아있을 수 없도록 시간의 힘에 강제로 밀려나고 있는 상황에서 다음에 올 무언가에 대해서는 충분히 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깨달음에서 오는 불안감을 그저 2월은 날짜가 적네 많네 하면서 시절의 탓으로 밀어버리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지.
문득 수십 년 전 이즈음, 풀밭에 주저앉아 애꿎은 잔디만 한 움큼 뜯어 공중에 흩뿌리며 친구와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났다. '우리는 왜 사랑을 할 수 없는 걸까?'라는 나의 질문에 그 친구는 '사랑은 어딘가 한 군데 나사가 빠져야 할 수 있는 거래. 삐걱거려야 거길 채워줄 사람을 갈망할 수 있는 거지. 그런데 너나 나나 그렇게 뭔가를 빼내는 것을 두려워하잖아. 우린 아마 안 될 거야'라고 말했었다. 아, 그런 거였구나. 2월은 그렇게 다른 달보다 며칠이 부족해서 처음부터 삐걱거리고 불안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과거'라는 굄돌이 억지로 빠져나가고 '미래'를 채워 넣으려고 갈망해야 하는 시절이기 때문에 그렇게 조바심이 났던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2월은 다른 어느 달보다 더 큰 변화를 꿈꿀 수 있는 역동적인 시간이 아닌가? 그래, 올해는 그런 마음으로 '달라진 나'를 상상하며 더 힘차게 2월을 맞이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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