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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더미 된 집터에 '생연탄'만 뒹굴어... 구룡마을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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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달 20일 새벽 서울의 '마지막 판자촌' 구룡마을에서 큰불이 났습니다. 전기 합선으로 시작된 불은 순식간에 43가구를 집어삼켰고 주민 60여 명이 삶의 터전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11일이 지난 31일 구룡마을은 아직 '폐허' 그 자체로 방치돼 있었습니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주민 장원식(70대)씨가 온전한 집기 하나 남지 않은 집터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구룡마을에서 35년째 살고 있다는 장씨와 함께 집터를 살펴보니, 겨울을 나기 위해 창고에 고이 보관해 두었던 연탄 수십 장이 잿더미 속에서 나뒹구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마저도 화재 진화를 위해 뿌린 물에 젖어 한 개도 건질 수 없었습니다. 장씨 집뿐 아니라 옆집도, 그 옆집도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장씨는 이 상황이 막막하기만 합니다. 구청에서 제공한 숙소에서 임시로 지내고 있지만 화재 후 2주가 되는 2일이면 퇴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장씨처럼 당장 갈 곳도, 먹을 음식도, 입을 옷도 해결이 안 되는 이재민이 60여 명, 다들 한숨만 늘고 있습니다.
구룡마을은 1980년대 오갈 곳 없는 철거민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집단 촌락입니다. 주택 대다수가 합판이나 샌드위치 패널 등 가연성 소재로 만든 데다, 집과 집 사이 공간도 성인 한 사람 겨우 지날 수 있을 정도로 촘촘한 탓에 화재가 끊이지 않고, 한 번 불이 나면 피해 규모가 엄청납니다. 하지만 무허가 건축물이다 보니, 화재로 당한 피해를 하소연할 곳도 없고, 지자체 등에 정비 책임을 묻기도 어려운 실정입니다.
장씨는 "현장에는 대책위원장, 부위원장, 총무가 항상 있는데 시청이나 구청에서 와 본다고 해도 일대일로만 살짝 만나거나 새벽에나 슬쩍 왔다가 그냥 가버리는 상황"이라고 푸념했습니다. 주민들이 처한 상황을 세세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커 보였습니다. 그는 또, "SH공사 직원들은 와서 임대 이야기만 하는데, 사실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라 한 달에 임대료 30만 원, 40만 원씩 낼 형편이 안된다. 설령 얼마간 낸다고 해도 오래 살 수도 없는 일이고, 임대료를 못 내면 쫓겨나야 하는데..."라며 또 한숨을 지었습니다.
주민대책위는 화재 현장에 컨테이너로 임시 거처를 마련해 달라고 지자체에 요구했지만 아직 답변은 없습니다. 장씨는 "컨테이너 박스라도 해주면 추워도 여기서 살겠는데, 어떻게 될는지 모르겠다"며 집터만 바라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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