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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낯으로 맞설 준비, 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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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낯 세상이 다시 열렸다. 답답했지만 때론 그 안에서 아늑했던, KF94 마스크를 슬슬 떠나보낼 때다.
일회용 백색 마스크는 2020년대 팬데믹 시대의 상징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기괴하게 생긴 새부리 마스크가 유럽 흑사병 창궐기를 연상시키고, 머리 뒤로 끈을 동여매는 거즈 마스크가 100년 전 스페인 독감 대유행을 떠올리게 하듯 말이다.
돌이켜보면 마스크 강제는 민주화 이후 국가권력이 시민 기본권을 장기간 광범위하게 제한했던 유일무이한 사례였다. 장발 금지와 야간통행 금지가 실시됐던 군사정권 시대 이후, 개인이 공동체 이익(공중보건)을 위해 자기결정권(착장과 통행의 자유)을 포괄적으로 반납해야 했던 예외적 사건이다.
마스크는 공익을 위한 개인의 헌신, 공동체를 향한 기꺼운 희생을 가리키기도 했다. 건강한 이들이 불편을 감수하며 썼던 마스크는 수많은 고위험군의 목숨을 살렸다. 바이러스에 대항한 ‘보이지 않는 전쟁’에서, 백신과 더불어 마스크가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다른 한편으론 국가 통제와 행정 만능론을 상징했다. 마스크 미착용은 과태료와 지탄의 대상이었고, 정부는 ‘공적 마스크’를 통해 자본주의 국가에 완벽한 계획경제를 구현했다. 마스크 구매 방법, 생산·유통 주체, 수출 여부, 심지어 1,500원 가격까지 국가가 정했다. 행정의 촉수가 말단까지 정교하게 뻗어 있는 나라답게, 한국은 마스크 착용을 가장 오래, 가장 효과적으로 강제했다.
국가권력은 마스크 강요를 발판으로 국민을 휘어잡으며, 방역 이외로까지 권능을 확장했다. 재정·조세·금융 분야에서 과거엔 상상할 수 없던 비정상적 조치가 정당화됐다. 정부는 매년 수십조 원 추경으로 수요를 창출했고, 지자체는 경쟁적으로 지원금을 뿌렸다. 행정권이 시장질서와 개인의 자율성에 대해 확고한 우위를 점한 ‘행정 만능’ 시대였다. 처음에 어색했던 마스크가 내 살처럼 느껴졌듯, 우린 차츰 행정의 간섭과 예외적 조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일종의 ‘행정 중독’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평생 마스크를 쓰고 살 수 없는 것처럼, 예산 지출이 동반된 이런 한시적 비상조치들도 차츰 거둬들여지는 중이다. 지금은 돈을 풀기 어려운 시점이고, 나라 곳간은 화수분이 아니기에 그렇다. 그래서 마스크 시대의 종말은 단순히 ‘방역 장구를 갖추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일상을 지켜줬고 경제활동을 떠받치던 행정력이 군림을 끝내고 원래 자리로 복귀해야 할 시기가 왔음을 뜻한다. 노 마스크 시대엔 자영업자 피해보상금도 없고, 재난지원금도 존재하지 않으며, 생활비 마련을 위한 저리대출 혜택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중소기업과 취약층에게 꽂아둔 링거줄을 정부가 한꺼번에 뽑아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재정이 허락하는 한 보호장치를 유지하며 연착륙하는 일에 힘을 쏟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마스크 세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듯, 정부 지출과 지원·보조금이 경제를 떠받치던 시대로 복귀하는 일도 당분간 없을 거다.
국가가 빚으로 제공한 버팀목이 사라지는 상황에서 성장률은 낮고 금리·물가는 높다. 각자가 진정 실력으로 승부해야 할 시간, 그 승패의 결과를 온전히 떠안아야 하는 때가 왔다.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세상과 다시 맞서는 일. 마스크 벗기보다 훨씬 어렵고 위험한 과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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